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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Sep 04. 2021

스무고갯길

21.07.15.

그 시절의 나는 철 없고 겁 많은 어느 치기 어림이었어
사소한 점에 쉽게 떨리고 조그만 금에 자주 무너졌어
어른이 되어가던 스무고갯길에서 헤맸고 또 헷갈렸어
느낀 바를 똑바로 판가름 하는 일에도 마구 서툴렀고
알맞는 차림이 뭔지도 모른 채 부끄러워했고 부러워했어

갑자기 드넓어진 생활의 범위에 휩싸여
주위와 겨우 합을 맞춰 어울리는데 벅차서
진솔한 감정을 들이기엔 마냥 어리숙했고
무르익은 관계를 맺기엔 진중함이 적었어

혹여나 애써 쌓은 소중한 정을 어색하게 놓쳐버릴랴
깊이 아끼는 인연과 멀찍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어
평소와 다른 포근함을 품어도 마저 드러내진 못했지
뭐든지 쑥맥이었으니 부풀어 차오른 호흡들에 있어
대범하게 대처하지 못하며 선뜻 불어낼 수 없었고
겪어보지 못한 세계란 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

만일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어떤 기억으로 우리는 지금 머물렀을까
외면 않고 정성스레 공들여 덧댔더라면
지나온 기록은 몇 장을 더 머금고 있었을까

더 이상 재생되지 않을 어렸던 날을 다시 짐작하니
그 계절 그 골목에서 못 다하고 삼킨 마음이 떠올랐어
역시 착각이었겠지, 라며 후회없는 체하려 했지만
여기 남은 찝찝한 흔적은 오늘도 그림자 더북하지
언덕뿐인 스무고갯길에서 난 여태 방황 중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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