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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Sep 09. 2021

Sense 8

21.07.25.


원치 않은 이별을 겪어야 했던 아이슬란드 출신 런던의 DJ와 서울 재벌 집안의 무술인 맏딸. 지내온 삶 자체가 곧 투쟁이던 캘리포니아 트랜스여성 해커와 베를린 뒷골목 금고털이 파이터. 본인의 찐 속내를 감춰야 했던 뭄바이의 신앙심 깊은 화학자와 멕시코인 게이 영화배우. 불확실하더라도 끝내 정의를 믿는 케냐의 용기있는 버스기사와 시카고의 듬직한 경찰관.

국적도 문화권도 모국어도 다른 이들. 직업이나 재능•기술도 천차만별. 하다못해 성격과 신념, 성 정체성과 사고방식 마저 각양각색. 도무지 이어질 수 없으리라 생각하던 존재들이, 무한히 증폭되고 발휘되는 공감각과 연대감 속에서 차츰 정말로 '하나된 우리'가 되어간다. 처음에는 이 끈끈한 연결이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지만, 몇 차례 이어질수록 그 진득한 관계들에 오히려 의지하게 된다. 고통의 기억, 행복의 감정, 사랑의 순간을 생생하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기대고 또  위로받는다. 모두가 가지는 차이점도 이상한 틈이나 잘못된 흠으로 여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이해한다.

자칫하면 중구난방 난잡해져서 스토리 진행에 집중이 안 될 수도 있음에도, 전혀 지장받는 것 없이 오히려 캐릭터들의 무수한 다채로움을 작품 본연의 특색이자 강점으로 소화시킨 부분이 참으로 대단하다. 많은 장면 속에서 8명의 주인공들은 동지들과 형제들을 몰살하려는 적에 맞서 각자의 스킬대로 각자가 선 자리에서 전략을 짜고 저항을 해간다. 마치 차원을 넘나드는 초인들처럼 경계와 장벽을 부수고 함께 힘을 합친다. 위 과정에서 벌어지는 센세이트들의 숨 막히는 콜라보레이션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강한 희열을 느끼게 할 정도로 치밀하게 경이로우며 박진감 넘친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이토록 탄탄한 SF 세계관을 창조하고 구축해낸 워쇼스키 자매 감독들의 기법과 노고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시즌은 다 끝났지만 애착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에는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할 것이라고, 어디서든 함께 한다는 걸 느끼기에 겁낼건 없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 실존하면 어떨까 하며 상상하게 된다. 지독하고 험준하고 메스꺼운 세상살이이지만, 그들의 메시지처럼 깊은 공감과 짙은 연대의 힘을 여전히 믿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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