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크락 데 슈발리에, 오래 버티는 것에 대하여
하마를 떠나 산길을 따라갈 때
버스 창문 너머로 성 하나가 먼 능선 위에 보였다.
처음엔 돌덩이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버스가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그 돌덩이는 형태를 띠고 구조를 드러내는 성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성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리서부터 그 존재는 조용하고 단단했다.
크락 데 슈발리에는
원래 비잔틴 제국의 요새였고,
이후 성 요한 기사단(호스피탈러 기사단) 이 확장하여
십자군 시대 동안 가장 중요한 군사 요새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성은 겹겹으로 지어졌다.
바깥을 감싸는 외벽,
그 안쪽을 한 번 더 보호하는 내벽,
둘 사이에 깊게 파인 해자,
그리고 성 내부로 이르는 좁고 경사진 진입 동선.
이 구조는
지도에서 보는 것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직접 걸으면 몸이 먼저 이해한다.
성은
쉽게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어떤 방향으로 접근하든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건축이었다.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길은 곧장 이어지지 않고
한 번 꺾이고, 또 한 번 돌고,
빛이 거의 닿지 않는 통로로 이어졌다.
나는 말하지 않았고,
성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곳은
오래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여기서 깨어났고
여기서 잠들었고
기도했고
기다렸고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 시간은
돌과 바람과 냄새 속에
아직 남아 있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바람이 달라졌다.
하마의 바람은
천천히 오고 천천히 지나가는 바람이었다면,
여기서의 바람은
깊고 오래된 바람이었다.
산과 들과 전쟁과 계절을 건너온 바람.
바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시간의 층이 있었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바라보았다.
들판, 골짜기, 먼 길,
그리고 그 모든 위에 놓인 아주 오래된 침묵.
성 내부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좁은 방들,
돌로 된 침상,
작지만 분명한 예배 공간,
그리고
화장실로 추정되는 석조 구조까지.
이 성은
전쟁만을 위한 성이 아니라
하루가 이어졌던 성이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은
시간이 지나도
사람의 온도를 남긴다.
그 온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진다.
나는 성 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동하려 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깨닫으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성의 크기가
조용히 내 마음을 밀어내고
또 천천히 받아들이는 느낌이 있었다.
오래 버티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굳이 말로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그냥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