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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May 16. 2022

하느님은 나를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걸까?


 

‘신이 나를 정말 편애하나 보다! 이 귀한 기회를 나에게 주시다니!’

‘신은 정말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한가 보다! 이 엄청난 미션을 나에게 감당하게 하시니!’     



요즈음 아이들과 저녁 시간에 줌으로 독서를 하고 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8시에 줌 열어서 9시면 닫습니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니라 작년 제자들과 함께요. 5학년 아이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삶에 기다리고 있었는지 생각만 해도 아이러니합니다.     



아이들의 사인이었습니다. 어쩌면 신의 사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네가 이 일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을 통하여…….     







작년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집에서도 매일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 책이 좋아서 읽는 사람?”

한 사람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 그날은 한 명도 손들지 않는 그 일이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처럼 아프게 다가왔을까요? 내가 교사로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였을까요? 이대로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뼈저린 후회와 무거운 책임감을 지어주었을까요?      



‘이 아이들 어떻게 하면 독서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까?’

‘재미있어야 오래 할 수 있을 테고 또 생각이 자라게 하는 독서방법이면 좋겠는데…….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그날 저녁은 독서습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가 내 머릿속에 들어가서 알려주듯이 일사천리로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이렇게 하면 꼭 될 것 같은. 거의 확신과도 같은. 그날 저녁 내 손에 내가 만든 나만의 독서법이 쥐어졌습니다.      



그 독서법을 가지고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들이기 위한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예감이 적중했습니다. 

“선생님 독서하는 것 너무 재미있어요. 독서록 쓰는 것은 더 재미있어요.”

첫날부터 아이들이 주는 피드백이 너무 고맙고 신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독서하며 독서습관을 길렀습니다. 종업식 하는 날까지도요. 이 정도로 독서에 재미를 들였는데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이 왔습니다.     



 





올해 3월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복도에서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독서하는 시간인 줄 뻔히 아는데, 무슨 볼일이 있나 싶어 급하게 나갔습니다. 



“선생님, 우리 다시 4학년으로 내려오면 안 돼요? 선생님이랑 독서하고 싶어요.”

거의 울상을 하면서 불가능한 일을 부탁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교하는 시간에는 여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우리 독서 어떻게 할까요? 혼자서는 도저히 안 돼요.”

그냥 해 보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 가슴에 남아서 아프게 자꾸 떠올랐습니다.      




딱 그 시기에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으로 독서토론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책 속의 한 문장을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꽃들로 가득 차려면 수많은 나비가 필요합니다.’     


‘내가 나비라는 거야? 독서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를 나비로 만들어 준 건 꽃들에게 꿀(희망)을 날라다 주라고 그런 거야?’

‘지금 당장 꽃들에게 가서 나비가 할 일 하라는 말이야?’     



눈물을 흘리며 작년 학부모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아이들 돕고 싶다고, 아이들과 줌으로 독서하고 싶다고, 한 명이라도 한다면 하겠다고. 아이들의 도움의 손길을 잡아 주는 거지만 사실 내가 더 도움을 받는 일이라고( 아이들 덕분에 매일 저녁 규칙적으로 독서를 할 테니까 )      



자발적으로 모인 16명의 작년 제자들과 행복하게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17일째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 진로를 다 알 것 같아요”

“커서 아주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다시 독서를 하게 되니 아이들에게서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제가 왜 신이 나를 엄청 편애한다고 생각하는지 아시겠지요? 

제가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아이들은 제 덕분이라고 말해 줍니다. 자기들이 온 마음 써서 독서하고 자신들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제 도움이라고 말해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이 저를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위해 매일 독서시간을 확보해 주는 셈입니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저입니다.     



“선생님은 하늘만큼 땅만큼 멋진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멋지다고 말하고도 남아서 어떻게 표현이 안 돼요.”

독서 며칠 함께 해 주었다고 이런 찬사를 쏟아내어 줍니다. 제가 얼마나 이익입니까!!!    


 


더 고마운 신의 배려가 숨어 있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저녁에도 혼자 외로울까 봐 사랑하는 제자들과 독서하라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내 손자 챙기는 것 같고 내 가족과 함께 독서하는 시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 정성껏 돌볼 때 가장 에너지 생기는 사람이 저라는 걸 어떻게 파악하시고 제게 꼭 맞는 미션을 주셨는지……. 이렇게 의미 있고 행복한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행복감이 차고 넘칩니다.     



“선생님, 우리 6학년 되어도 함께 해 주실 거죠? 중학생 되어서도 해 주셔야 해요. “

“당연하지. 이렇게 행복한 일 어떻게 멈출 수가 있는지 그게 고민이야.”

진심으로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멈추자고 하면 멈출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매일 저녁 내 시간이 없으니 불편하지 않느냐고? 피곤하지 않느냐고? 


참 신기합니다. 정말 하나도 안 피곤하고 오히려 엔도르핀 뿜 뿜 나와서 정말 중독됩니다. 제가 더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교직생활 3년 남았네요.

이제야 교사로도 좀 의미 있게 살아지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왜 내가 교사로 살아가는지 그 깊은 의미를 알겠습니다. 어린 생명 제대로 돌보는 것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는 일인지 알겠습니다. 중한 책임이지만 제게 감당할 능력까지 세트로 주시니 염려 말고 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신이 나를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고 싶은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신의 의도를 전혀 못 알아차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의 더 큰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신은 제게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신에게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요. 제가 신에게 제대로 찜 당했다는 것을요. 그래서 더 안심되고 미리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신은 선함을 실천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되게 하니까요. 이렇게 부족한 내게도 넘치는 능력을 퍼부어 주실 테니까요.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제대로 신의 트레이닝을 받을 기회입니다. 다음 어떻게 나를 쓰게 될지는 신의 몫이니까요. 내가 기꺼이 온 정성으로 감당하는지는 정확하게 보고 있을 테니까요.

행복하게 감당할 에너지까지 신이 채워주시니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신의 축복이라고 하지요? 신의 축복을 제대로 입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크리스찬도 이단종교도 안 믿는 사람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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