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건지는 깨달음 하나
오늘 아침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두 번째로 독서토론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플라톤 전집 1을 끝까지 읽고 독서토론을 마친 후 한 번으로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의 깊이를 1/10도 헤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시 독서토론을 해 보자는 제안을 누군가 했고 모두 찬성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하고 재판이 열리기 전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내용이 주로 나옵니다. 배심원의 표결에 따라 사형이 확정되고 나서 결과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부분도 짧게 나옵니다.
소크라테스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변론을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이 있기 전 이런 질문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가 고발까지 당하고 사형 집행까지 되면서
그렇게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가 가족을 등한시하고 자식도 돌보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삶이었을까?'
소크라테스가 아내를 악처로 만들었다고 아내 편을 들거나 소크라테스의 행동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처음에 [소크라테스 변론]을 읽을 때 우리들도 이런 점에서 반기를 들고 싶기도 했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당신 가정부터 먼저 잘 돌보세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인 것 같아서 나는 동의할 수 없어요. 설득하려면 해 봐요."
이런 반항 내지는 뻗대고 싶은 감정이 들기도 했었지요. 솔직히.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사랑은
혼의 최선의 상태에 머물도록 정성을 쏟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테나이인들에게 깨우쳐주는 일이었습니다. 전혀 못 알아차리고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하라고 신이 보내준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테나이인들에게는 신의 선물과 같은 존재가 자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신이 맡긴 역할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인 것이었지요. 그것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신이 맡긴 일, 시민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낸 것이 그 일이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은 전혀 돌보지 않고,
그처럼 여러 해 동안 집안일이 방치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러분을 일일이 찾아가 미덕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아버지나 형처럼 조언하며 줄곧 여러분 일을 보아왔는데,
이것이 과연 인간이 해 내는 일인가요?
이 문장에서 소크라테스의 그동안의 깊은 고뇌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아빠, 남편, 집안일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그 일을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꺼이 그 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과 같은 마음으로 조언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요.
그 당시 시대상황으로 아버지와 형이라고 표현하지, 핏줄로 이어진 어머니와 같은 존재, 그런 사랑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해 봐요. 핏줄 이어진 사람에게 쏟는 사랑의 의미는 일반 사람들에게 쏟는 사랑에 비유가 안됩니다. 핏빛 같은 사랑입니다.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왔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너무나 깊어서 자식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경지까지 도달합니다. 어쩌면 아테나이인들을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랑, 내 자식 같다는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이 전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랑의 마음이었기에 신이 시킨 이 일을 기꺼이 감당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이 일이 자신이 하지만 신의 도움으로 해 내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의 마음도 세상 사람들을 한 없이 사랑하는 그 마음이니 자신도 신의 마음 세팅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일을 기꺼이 잘 해 내려 온 마음을 다 기울인 것이고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신의 부름을 받고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일을 하라는 신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그 일을 해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심으로 고소당해서 재판을 앞둔 변론 과정에도 온 마음을 다 기울여 변론을 했습니다. 사형으로 확정되고 나서 까지 죽음이라는 공포에 휩싸인 게 아니라 끝까지 자신이 하던 그 일을 주어진 상황에서 해 내었습니다.
참 거룩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삶에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구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나 사랑하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 구해내겠다고 하는 건 어쩌면 오지랖이든지 자신의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무지의 상태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일, 내 삶에 끝까지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가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점검할 일은 나를 온 정성으로 사랑하며 살아내고 있는지? 신과 같은 선한 마음(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가려 정성을 기울이는지를 매 순간 챙겨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사랑의 마음(선한 마음) 챙기는 훈련이 갈수록 더 섬세해지고 세련되면 살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겠지요. 마음의 길이 나 있는 대로 반응하고 결정하고 살아가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