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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가치 Nov 25. 2024

시럽은 필요 없다

나는 초등 교사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업은 아니다. 사회에서 성공 기준은 높다. 부모 기대치도 높다. 내 부모도 그렇다.


누나는 중, 고등학교 때 계속 전교 1등을 했다. 동생은 의사다. 둘 다 공부를 잘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누나와 동생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동생이 재수를 해서 의대에 갔다. 나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학교를 중퇴할 용기는 없었다. 졸업을 하고 바로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은 서대문 정일학원이었다. 여자친구가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여자친구가 재수학원에 찾아왔다. 중간에 나갈 수 없어서 창문으로 손을 흔들었을 정도로 애틋했다.


1년이 끝나고 의대에 못 갔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다. 송파 대성학원을 갔다.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다. 엉덩이에 이명래 고약을 붙이며 공부했다.


의대에 못 갔다.


송파 대성학원을 더 다녔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냐고 못마땅해하셨다. 아버지의 비아냥을 참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간다고 했다. 어머니가 허리를 붙잡고 매달리셨다. 엄마는 가녀렸다. 내가 한걸음 걸을 때마다 어머니가 끌려왔다. 매달린 어머니가 무겁게 느껴진 날이었다.


그 해, 이명래 고약을 두 번 붙였다. 의대에 못 갔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 집에 혼자였다. 성적표를 받고 짐승처럼 울었다. 3년이 끝났다.


그 후 아버지의 권유로 교대를 갔다. 초등 교사라는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 학생들은 어리지 않았고,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난 참 거절을 못 했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음료를 시킬 때도 사람들이 많이 시키는 음료를 시켰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러 가도, 먹고 싶은 안주를 고르지 못했다. 


커피숍을 가도 남들이 마시는 음료를 시켰다. 보통 아메리카노를 많이 시킨다. 난 달달한 음료가 좋다. 커피를 받으러 가서 내 음료에만 시럽을 탄다. 펌핑을 2번 해도 부족하다.

Handmrt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5357864/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를 믿지 못하니 남들에게 의지하고 남들이 말하는 개념대로 살아간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길이 존재했다. 몰랐다. 얼마를 버는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나를 믿고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나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교사를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다. 40대 후반,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겠다. 더 이상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아들은 되지 않겠다. 인생의 전반기는 충분히 따랐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겠다.


요즘은 커피숍에 가면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마신다. 시럽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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