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부만 연재로 올렸다가 '잘못'되어 이곳에 다시. . .
정원상 회장의 별장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달 없는 가을밤, 하늘에는 별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주원의 귀국연주회. 미국의 가장 오래된 명문 음대인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NEC) 기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그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것이다. 바이올린 전공.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경기광주 JC를 통해 광주원주고속도로로 들어가 북여주 IC, 중부내륙고속도로, 서여주 IC 그리고 42번 국도를 거쳐 세종대교를 지나 현암 IC에서 내려 북쪽으로 현남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쪽 남한강변에 근사한 펜션이 나오고,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정 회장의 큼직한 별장이 지어져 있다.
정 회장은 별장 이름을 딸 이름에서 따와 심주원(深宙園)이라 지었다. ‘깊은 우주 속 정원’이라는 뜻이다. 딸의 원래 이름은 한자로 주원(珠媛)이었으나 한자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우주의 정원’이라는 뜻의 ‘지아르디노 델로 스파지오(Giardino dello Spazio)’로 정해 대리석에 새겨넣었다.
심주원
Giardino dello Spazio
深宙園
이름은 이렇게 거창하게 지었으나 이탈리아어 이름 가운데 소유격에 해당하는 단어를 따서 간단히 ‘델로’라고 불렀다. 딸이 미국에서 공부했는데도 별장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지은 것은 부인의 고집 때문이었다. 부인인 남궁정 여사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했기에 딸도 이탈리아로 유학 가기를 원했으나 딸 주원이 미국을 고집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였던 셈이다.
그러나 주원은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그저 시큰둥한 얼굴만 했을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주원은 귀국연주회 자체도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주원이 원하는 공부를 다 마치지 않고 잠시 한국에 왔기에 박사후과정을 비롯해서 아직 여러 가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마흔이 넘어 얻은 무남독녀인지라 딸을 자신 가까이 두기 위해 몇 번을 부탁하다시피 해서 불러들였다. 게다가 남궁정 여사의 감춰둔 의도도 한몫했다. 그러나 주원은 여러 일정 때문에 들어올 수 없다고 버티다가 결국 3개월만 한국에 가기로 타협하고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번 귀국연주회 파티를 만든 면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남한강변 가을밤은 화려하게 막이 오르게 되었다.
별장 저택의 넓은 정원에는 20개의 8인용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넓은 연주무대가 마련되었는데, 그 네 귀퉁이에는 그리스식 기둥이 세워졌다. 무대 위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올려져 있고, 관현악 실내악단이 무대 아래쪽과 정원 끝 양쪽에 각각 한 팀씩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고성능 마이크와 대형 스피커가 정원 곳곳에 설치되었다. 또한 어머니 남궁 여사의 후배를 통해 소개받은 국립교향악단의 한 부지휘자가 사회를 맡았다. 이밖에 남궁 여사가 단장으로 있는 한 어린이합창단에서 온 중창단이 무대 옆에 별도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음식과 손님 서비스는 서울의 한 유명호텔에서 맡았으며, 별장 주변의 경비와 차량안내는 전문업체에게 맡겼다. 사진과 비디오 역시 전문가들이 맡았고.
이뿐만 아니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행사단체에 가장(假裝) 퍼포먼스를 맡겨서 10여 명이 각종 형태로 분장하고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해주기로 했다. 표범이나 사자와 같은 동물의 바디페인팅, 중세유럽풍 복장과 인디언 차림 등등. 게다가 다섯 명으로 구성된 한소리라는 국악단도 초청했다.
가장 화려한 것은 테이블 장식이었다. 무대 앞에는 가족 세 사람이 손님들 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메인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식탁은 보라색조로 장식해 놓았다. 꽃과 식탁보, 식기 등이 모두 보라색 계열로 준비되었으며, 주인공인 주원이 한가운데, 그 양쪽에 부모가 앉게 되어 있었다. 또한 20개의 테이블은 네 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각각 아이보리, 핑크, 라이트그린 그리고 파스텔 블루로 장식했다. 의자나 식기는 물론 음료수와 냅킨, 꽃장식, 조명까지 모두 테이블 색에 맞추었다. 또한 초청된 손님들에게도 미리 테이블을 정해 주면서 특히 여자들은 드레스나 한복 등 기타 복장도 가능하면 그 색에 맞추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자의 경우는 정장을 입되 넥타이와 양복 윗주머니에 꽂는 행커치프를 테이블 색과 조화를 이루게 해달라고 미리 알렸다. 그리고 혹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네 가지 색의 행커치프를 준비해 두었다. 물론 어린이 손님의 경우에도 위와 같이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그리고 네 가지 테이블 색에 어울리는 프랑스제 고급 양산과 우산을 모든 손님 자리에 마련해 두어 그것으로 선물 겸 깜짝 퍼포먼스를 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그리고 식탁 주위에는 테이블 색에 맞는 조명등이 설치되었으며, 정원 주변도 역시 네 가지 색의 조명으로 밝혀놓았다.
손님들은 정 회장 가족의 친지들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의 여러 인사 및 거래 사업체 고위간부들과 외국인도 있었고, 남궁 여사 쪽 학교와 단체는 물론 주원 주변의 인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한국에 돌아와 있는 주원의 미국 학교 동문들은 초대하지 않았다. 주원이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를 비출 스포트라이트와 무대조명은 전문업체에게 맡겼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것, 그것은 네 가지 색으로 정원의 보도블록을 깐 것이었다. 그 넓은 정원을 네 가지 색, 그리고 무대 주위는 연보라색으로. 또한 정원 주변을 그 보도블록 색에 맞춘 서양란 화분으로 둘러놓았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폭죽을 다섯 가지 색으로 준비해서 각양 형태로 쏘아올려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을 이 방면 최고 권위자인 ‘Jun Art of Celebration’의 대표인 스텔라 준 김에게 맡겨 진행토록 했다.
주원의 바이올린 독주, 그리고 피아노와 실내악단의 반주에 맞춘 협주곡 등이 한동안 이어졌다. 한 곡이 시작되기 전마다 곡에 대한 해설은 어머니 남궁 여사의 제자이면서 서울의 한 명문대학에서 기악을 가르치는 교수가 맡았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약간 수줍어하는 주원의 답례.
그리고 그때마다 남궁 여사가 등장해서 꽃다발을 하나씩 안겨주었다. 가볍게 어깨를 끌어안고 입맞춤하는 것도 잊지 않고 곁들였다. 그때도 역시 휘파람과 박수 소리.
“잘 했어.”
한 곡마다 남궁 여사는 귓속말로 속삭여 주었다.
그리고 한 곡이 끝나고 새로운 연주가 시작되기 전마다 주원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별들도 많구나…….
너무 곱다.
주원은 청명한 가을 하늘밤 은하수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별들과 함께 흐르는 자신의 미래, 꿈, 낭만…….
주원은 자신이 마치 하늘에 올라 별이 된 느낌이었다.
주원의 순서가 끝나자 특별 초청된 저명한 테너 가수가 감미롭게 부르는 이탈리아 가곡 토스티(Tosti)의 이상(Ideale)이 가을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먼저 한국어 번역으로. 뒤이어 이탈리아 원어로.
하늘 위에 무지개와 같이
그대를 사모하며
오늘밤에 황혼이 깃든 이 밤
그대를 동경하네
내 님이여 그대는 내 빛
고운 꽃바람에 그대를 그리며
홀로 있는 쓸쓸한 나의 밤에
그대 모습 가득 찼네
꿈결과 같은 사랑의 속삭임이
내 마음에 들리니
지난날의 근심걱정 사라지고
한숨마저 갔네
내 사랑이여, 돌아오라
웃음의 수레를 사뿐히 타고
당신의 얼굴 장밋빛 그윽한 향기
새벽의 맑은 하늘 거룩한 나의 님이여
돌아오라 나의 이상이여
돌아오라
돌아오라
Io ti seguii come'iride de pace
Lungo le vie del cielo
Io ti seguii come un'amica face
De la notte nel velo
E ti senti ne la luce, ne l'aria
Nel profumo dei fiori
E fu piena la stanza solitaria
Di te, dei tuoi splendori
In te rapito, al suon de la tua voce
Lungamente sognai
E de la terra ogni affanno, ogni croce
In quel giorno scordai
Torna, caro ideal, torna un istante
A sorridermi ancora
E a me risponderà nel tuo sembiante
Una novell'aurora
Torna, caro ideal
torna
torna
이 가곡 뒤로도 여러 순서가 이어지고 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원의 어머니 남궁 여사의 독창에 뒤이어 한국 바리톤의 보배인 소중화 교수가 주원에게 바치는 노래를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로 열창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요란한 박수 소리.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그러나 소 교수는 앙코르를 사양하며 무대에서 내려가 박수를 치고 있는 주원에게 다가갔다.
소 교수는 주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원은 무릎을 살짝 굽힌 뒤 그 손을 잡았다. 소 교수는 주원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이끌었다.
소 교수는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갖다달라고 했다.
마이크를 잡은 소 교수는 손을 들어 주원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주원 양은 어릴 때 성악을 할 것이냐 바이올린을 할 것이냐 갈등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제가 영광스럽게도 이 집안을 자주 드나들며 그 고민에 함께 참여했지요. 저는 성악을 고집했습니다만, 주원 양은 저를 버리고 바이올린을 택했습니다. 제가 왜 주원 양에게 성악을 권했는지 오늘 보여드려야겠습니다. 고개를 들어서 저 하늘의 별들을 보십시오. 잔별 가득한 저 우주, 저 별들이 모두 주원 양을 축하하기 위해 저렇게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 제 부탁이 주원 양에게는 무례하게 여겨지기는 하겠습니다만…….”
소 교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다시 주원을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주원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 힘차게 말을 잇는다.
“그래도 감히 부탁드립니다. 주원 양이 저 별들과 같이 곱고 감미로운 음성으로 이 밤을 빛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우우우우 함성과 함께.
주원은 두 손을 맞잡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약간 난감한 표정.
박수가 계속되었다.
발 구르는 소리.
휘파람 소리.
소 교수는 주원의 얼굴 가까이로 두 손을 올리고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약하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리고는 왼손을 아랫배에 대고 살짝 허리를 굽히며 오른팔을 주욱 휘두르면서 고개를 숙인다.
손님들은 더욱 강하게 박수를 쳤다.
“이 가을밤 저 화려한 별들을 보십시오.”
소 교수가 하늘을 쳐다보고 말한다.
“그러나 저 뭇별보다 더 밝은 별이 여기 우리 앞에 있습니다. 자, 다 같이 격려 부탁드립니다. 주원, 주원, 주원…….”
소 교수의 선창에 따라 모든 이가 따라서 합창을 한다.
주원, 주원, 주원, 주원, 주원…….
주원의 이름이 떼창처럼 남한강변에 울려퍼졌다.
주원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살짝 굽혔다.
우와 하는 함성과 함께 요란한 박수, 휘파람 소리.
주원은 피아노 반주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실내악단 쪽을 돌아다보았다.
피아노를 연주했던 남궁 여사의 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쪽으로 나왔다.
실내악단도 긴장한 듯 주원을 바라본다.
그때 남궁 여사가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주원 옆으로 다가왔다. 소 교수에게서 마이크를 달라고 하며 건네받는다.
“아, 저……, 우리 주원이가 어렸을 때부터 소프라노가 아주 고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메조에 가깝게 되었는데, 아까 소 교수님 말씀처럼 성악으로 나갈 생각도 했었죠.”
남궁 여사는 이렇게 말하며 주원을 돌아다본다. 자랑스럽다는 표정.
남궁 여사는 피아노 반주자와 실내악단을 돌아보면서 준비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얘,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곡 그거 있잖아. 슈베르트의 데어 리블리헤 스테른(Der Liebliche Stern, 사랑스러운 별)…….”
주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 여사에게서 마이크를 받아든다. 그리고는 알았다는 듯한 눈빛을 어머니에게 보낸다.
남궁 여사는 몸을 돌려 피아노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
남궁 여사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다보았다.
주원이 고개를 가로로 흔든다.
남궁 여사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물었다.
“반주…….”
주원은 다시 고개를 흔든다.
남궁 여사는 금방 알아차렸는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피아노 반주자를 향해 돌아서서 고개를 흔들었다.
피아노 반주자 역시 알아차렸는지 스툴에서 일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남궁 여사도 테이블로 돌아가서 앉았다.
주원은 마이크를 손에 든 채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좌중은 침묵에 잠긴 채 모든 시선을 주원에게 향했다.
주원이 잠시 입을 열지 않고 앞만 바라본다. 초점 없이.
그러더니 마이크를 입에 가져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저……, 저를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
주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참 아름답네요…… (음) …… 별을 노래하겠습니다.”
주원이 사회 보는 교수에게 마이크를 가져가라고 내밀었다.
누군가가 ‘슈베르트의 저녁 별’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요란한 박수. 휘파람 소리.
주원은 두 손을 모으고 말없이 서 있었다.
박수소리가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잠시 후 은하수 흐르는 남한강변 파티 정원은 가을 풀벌레 소리 외에는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주원이 입을 열었다.
그 입술 사이로 맑고 고운 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애타도록 보고파도……
가수 이미자님의 ‘그리움은 가슴마다’가 찬란한 별들로 가득한 가을 밤하늘에 울려퍼져 나갔다.
주원의 눈은 밤하늘로 향했다.
밤하늘의 은하수 옆으로 흩어져 있는 무수한 잔별들 쪽으로.
밤하늘의 잔별 같은……
[이곳부터 제2화]
남궁 여사는 사흘째 두문불출했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카톡과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았다. 이메일은 보지도 않았다.
침대 옆 쓰레기통에는 여러 명함이 찢어진 채 뒤섞여 있었다.
손님들이 남궁 여사에게 준 명함들을 모두 받아서 모아놓았던 것들이다.
비뇨기과 전문의 정…….
한국은행 국제협력실 손…….
대전지검 검사 안…….
수원지법 판사 송…….
금융위원회 김…….
미국중앙은행 FRB의 한국지부 이…….
법무법인 기성의 변호사 표…….
회계사 전…….
국무총리실 사무관 평…….
삼성전자 비서실 윤…….
서울대학교 조교수 류…….
한국방송공사 편성국 이…….
재성그룹 둘째 아들 임…….
하버드 대학 연구교수 박…….
반면에 정 회장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괜히 혼자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흥얼흥얼 ‘밤하늘의 잔별같이 수많은……’ 노래를 나직이 읊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노래 좋아’ 하며 미소 짓는다.
정 회장에게도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파티 좋았어. 딸 언제 치울 거야? (마누라한테 물어봐.)
골프 한번 치지. (난 골프 안 치네. 운동에 소질이 없어.)
찜질하러 가세. 좋은 데가 있어. (에이, 뭔 찜질. 집에서 샤워나 하면 되지.)
파티 잘 먹었으니 내가 한번 사지. 언제 시간 나나? (요즘 소화불량이라…….)
김 박사가 영국에서 공부하던 둘째 아들이 들어왔다며 만나자고 하는데……. (우리 마누라한테 얘기하게.)
저번에 초청장 보내준 우리 딸 발표회에 오겠나? (마누라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서…….)
과기부 차관하고 만날 일이 있는데 같이 가세. (만나봐야 골치 아픈 얘기겠지.)
동문회에서 초청하고 싶다는데……. (봉투 하나 보내지 뭐.)
민 교수 출판기념회……. (못 간다고 말해 두었네.)
김 회장이 집에다 노래방 기막히게 설치했다는데……. (난 음치라서…….)
무슨 재미로 사나……. (마누라에게 들볶이는 재미.)
사람 참…….
에구, 관두세…….
주원은 우울했다.
남궁 여사는 1층에서, 주원은 2층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흘 동안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주원은 하루빨리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아직 마치지 못한 공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한국에서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 남궁 여사의 과잉반응에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렇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집구석에만 있으면 남자가 튀어나오니?”
“네 아버지 나이가 지금 몇인지 알아?”
“아빠 사업체 그냥 다 날려버리고 싶어? 아빠 평생 고생해서 이뤄놓은 거 죄다 남 주고 싶냔 말야…….”
“내 소리 듣기 싫으면 네가 참한 사람 하나 데리고 와 봐. 미국에 10년이나 있었으면서도 그런 재주 하나 없어?”
“민 사장 댁 딸은 얘…….”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잔소리와 닦달.
게다가 남궁 여사는 하루가 갈수록 주원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날카로워져 갔다. 그리고는 사흘이 멀다 하고 이 남자 저 남자 사진과 프로필을 들고 와서 주원을 들볶았다. 주원이 직접 만난 사람도 여럿이었다. 호기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달리기 싫어 나가주었던 것이다. 그들 중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주원은 기본적으로 그들 모두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 나이에 연애 한번 안 해보고 여자 소개받는다는 것이 웃기는 것 같았다. 오죽 못났으면, 아니면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너무 바쁘셨는지 모르지만, 또한 연애하다 찼거나 차였거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들 과거를 싹 지우고 순진무구한 듯 자신 앞에 나오는 남자들.
하긴 저쪽에서도 주원에 대해 똑같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외국 나가 공부하면서 남자 한번 만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서로가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끼리 마주앉아 상대방 탐색하는 짓,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남궁 여사는 딸을 공개석상에서 선을 보이기로 한 것이다. 귀국연주회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래서 주변의 힘 있고 돈 있고 멋들어지게 보이는 사람들 죄다 초청해서 경매 붙여보려 한 속셈이었다.
그런 야무진 의도를 주원이 다 망쳐버렸으니…….
주원은 왜 하필 자신이 그 노래를 불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노래를 어릴 때 몇 번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 가사나 음도 평소에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그 노래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주저 없이 구성지게 뽑아버렸으니.
음악성이 있긴 있군. 어릴 때 들은 노래를 가사까지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니.
주원은 씁쓸하게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다가 주원은 갑자기 명함이 하나 생각났다.
파티에서 받은 명함은 모두 어머니 남궁 여사가 챙겼다. 그러나 하나만은 어머니에게 주기가 뭣해서 자신의 드레스 레이스 틈에 밀어넣었다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원은 혹시나 해서 정리도 하지 않고 옷장에 집어던져 놓은 드레스를 들춰보았다.
없었다.
피―.
어딘가에 떨어져 버렸군.
잘됐어. 그런 거 찾아봤자…….
옷장 문을 닫으려는데 바닥에 조그만 종이가 하나 떨어진 것이 보였다.
저것인가……?
맞다. 주워보니 바로 그 명함이었다.
인간에서 탈출하다
Body Art
웃겨. 뭘 탈출한다는 거야?
표범으로 바디페인팅을 한 사람.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상반신을 모두 바디페인팅으로 장식했고, 그 아래 바지도 그에 맞게 얼룩덜룩한 것으로 입었었다. 구두는 흰색.
가을밤이라 윗도리 안 입으면 꽤 추웠을 텐데 괜찮았을까? 괜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고생 참 많이 하는구나.
그런데 표범 바디페인팅 위에 금박을 뿌려놔서 그런지 온몸이 반짝반짝했었지. 머리 뒤가 좀 튀어나왔던 것 같은데, 머리칼을 뒤로 묶어서 그런가……. 장발이었던 모양이네.
주원은 별걸 다 생각하고 있네 하고 자신을 향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눈이 무척 인상 깊었던 것을 주원은 기억하고 있었다.
강렬했다고나 할까, 표범의 날카로운 눈빛. 그러나 어딘지 선한 표범 같았다. 라이온 킹처럼.
직업도 참 여러 가지구나. 힘들게들 산다.
하긴 저쪽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처럼 악기 들고 먹고 사는 것도 힘들겠다고 여기겠지. 떠돌이 악사들. 바이올린 하나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연주해 주며 던져주는 돈 받고, 남들 흥겨워할 때 뒤에서 깽깽이 소리나 내주는 것. 남들이 보면 그게 그거겠지. 돈 좀 있으면 클래식을 하네 하며 우쭐대겠지만 그런 계층이 얼마나 되랴. 음악 한답시고 평생 남의 그늘에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텐데.
공연히 이런 생각을 해서 주원의 기분은 그러잖아도 가라앉아 있었는데 더욱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아, 답답해.
주원은 파티 나흘 만에 밖에 나가기로 했다. 친구들한테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티 끝나고 몇몇 친구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또한 카톡과 메시지나 이메일도 보냈지만 들여다보기만 하고 답은 하지 않았다. 모두들 잘했다, 예뻤다, 부러웠다, 결혼해라, 미국 언제 나가니, 힘들진 않았니 그런 것들이었다. 노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답을 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가 노래에 대해서 말을 해주었으면 당장 나가서 밥을 사주었을 것이다.
밤하늘의 잔별 같은…….
그게 뭐 어때서?
뻔하지 뭐. 고상들 하셔서.
주원은 잠원동 저택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카카오택시를 불렀더니 금방 왔다. 몇 번 타봤기에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았다. 서울에서는 차 몰고 다니는 것보다 택시가 더 나을 것 같았다. 복잡한 서울 거리, 운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교보문고빌딩.
안으로 들어가 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그거 쳐다보는데 고개가 다 아팠다.
18층.
그곳에 핀란드 대사관이 있었다. 전화로 미리 알아보니 오전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주원은 미국에서 이미 몇 번 이메일을 보내어 유학비자에 대해 문의했다. 따라서 일부러 이곳에 와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지만 주원 스스로에게 외출할 핑계를 주기 위해 핀란드 대사관을 떠올린 것이다.
18층에 올라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좁은 복도를 걸어가 왼쪽으로 한번 꺾어지니 오른편에 핀란드 대사관이 나왔다.
대사관 입구는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몇 사람이 와 있었다. 주원이 유리문을 밀어보니 열리지 않았다. 안에 앉아 있는 한 외국인 남자가 손가락으로 문 옆을 가리킨다. 그곳을 보니 벨 누르는 곳이 있었다.
주원이 벨을 누르자 한국어로 묻는 목소리가 조그만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 유학비자 때문에 왔다고 하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조그만 로비 건너편에 또 다른 두꺼운 유리창 안에서 한국인과 유럽인이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돌아다보았다. 주원이 다가가서 또 한번 유학비자 문제로 왔다고 영어로 말하자 사람 좋게 생긴 유럽 여자가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로비에는 의자가 몇 개 있었다. 한 의자에는 좀 전의 그 외국인 남자, 아마도 인도인 같은 40대 남자가 웃는 얼굴로 주원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또 다른 의자에는 한국인 할아버지가 손자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와 조그만 색종이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며 놀고 있었다.
주원은 인도인과 할아버지 사이에 있는 두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귀여운 남자아이가 비행기를 잘못 날려 주원의 가슴께로 날아왔다. 주원이 살짝 잡아서 돌려주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가 옆에서 아이 대신 말을 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하준아, 너도 죄송합니다 그래야지.”
“죄송합니다.”
주원은 어린 남자아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것을 보고 손을 저으며 웃어주었다.
“애 엄마가 저 안에 들어가 인터뷰하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애가 지루해 하네요.”
할아버지가 점잖은 목소리로 말해 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이야기가 꽤 이어졌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이 주원이 다니는 학교 NEC 작곡과 졸업생이었다. 주원도 아는 사람이다. 자신보다 한 학년 위였다. 작곡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로 유명한 LA의 사립대학 USC의 대학원 영화음악과에 들어갔다. 그곳을 우등으로 마친 뒤에 한국에 돌아가서 해군에 입대했다는 말까지 듣고 그 뒤의 소식은 모르고 있었다. 세상 참 좁았다. 이렇게 알게 되는구나.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그 선배는 지금 한국의 유명한 게임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고 했다. 주원은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주고 그 선배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주원은 핀란드 헬싱키의 유일한 음악대학인 핀란디아 아카데미로 유학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머니 남궁 여사가 하도 유럽으로 가서 더 공부하라고 닦달을 하는 바람에 핀란드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어머니가 말하는 유럽은 물론 남쪽의 이탈리아이다. 그래서 일부러 유럽의 제일 북쪽인 핀란드를 택했다. 남궁 여사가 알면 한번 더 드러누울 것이다.
핀란드 대사관 인터뷰실에 들어가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주원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니 더는 갈 곳이 없었다. 어느 찻집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 외에는.
날은 화창했다. 기온도 기분 좋을 정도고, 미세먼지도 없다고 한다. 이는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으로 확인했다. 주원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무엇인가가 잡히자 무심코 꺼내보았다.
명함.
바디페인팅.
풋.
웃음이 나왔다.
웃어?
그래 웃었다, 왜?
주원은 자신에게 시비 걸었다.
아서라.
주원은 명함을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걸었다. 무턱대고. 목적도 없이.
세종로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메가폰을 들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어서 주원은 골목길을 통해 종로2가 쪽으로 걸어갔다. 보스턴에서 공부하며 가끔 서울에 들어와 여러 곳을 다녀보기는 했지만 종로 쪽으로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대한민국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정말 많이 변했다. 빌딩뿐만 아니라 차도와 간판, 행인들 모습, 게다가 문화까지도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는 듯도 했다. 이방인. 이런 식으로 거창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수송동.
응? 뭐지? 수송동이?
갑자기 수송동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종로구 수송동.
주원은 머리가 멍했다. 걸음을 멈췄다. 지하철 종각역 사거리의 종로타워 건너편이었다.
주원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명함이 손에 잡힌다.
꺼냈다. 들여다보니 종로구 수송동…….
아하.
전화번호.
눈에 크게 들어온다.
주원은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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