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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Oct 25. 2024

가을 남자처럼

- a melancholic man of autumn


흘러간 로맨스. 

    낙엽 지는 가을 날 버버리 코트 깃 올리고 쓸쓸히 걷는 길. 아니면 오래 된 샹송 흐르는 찻집에 홀로 앉아 머언 추억에 잠겨 있는 저녁.

    아, 그때 왜 붙잡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왜 뒤돌아보지도 않았을까…….

    그 사람, 고개만 살짝 숙였어도, 머리를 15도만이라도 이쪽으로 돌렸어도 무조건 달려갔을 텐데…….

    아니, 5도만이라도…….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머리를 곧추 들고서 그렇게 멀어져 갔다.

    타박 타박 타박…….

    사나이 마음, 가을로 짙어간다. 깊어간다.



사나이처럼 (1)


중세 페르시아의 시인 사나이(Sana’i, 1311~?). 본명은 무지 길어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굳이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살짝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다. Abū al-Majd Majdūd ibn Ādam Abū'l-Majd Majdūd ibn Ādam. (미리 귀띔했잖은가. 알 필요(?) 없을 거라고.)

    어떻든 사나이는 페르시아의 이슬람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한때 궁정시인으로도 지냈다고 한다. 그 뒤 방황과 수행을 거쳐 다시 왕국으로 돌아왔으나, 술탄 밑에서 시를 지으며 은둔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나이의 대표작으로는 ‘진실의 정원과 길의 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1910년 이 시의 첫 단락이 영어로 번역되어 서구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의 제목은 ‘The Enclosed Garden of Truth’이며 한국어로는 ‘진실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사나이처럼 (2)


우리 한국에도 사나이는 많다. 마동석만 사나이가 아니다. Rudolf 작가도 외형적으로는 사나이에 속한다. 유전자는 말이다. 물론 그 심성이나 체격 같은 것들은 (사나이 대접을 해주기엔) 다소 의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남자는 남자고, 배포가 좀 작아서 그렇지 대한민국 태생의 무명 아마추어(?) 작가란 말이다. (그런데 국적은 두 개라서 가끔 헷갈린다.)

    그것은 그렇고, 여기에서 갑자기 에르네스트 블로흐(Ernest Bloch, 1880~1960)의 소나타 2번 ‘신비로운 시’가 생각나는 것이다. 1924년 작곡한 이 곡은 블로흐가 1924년에 거의 6주 동안 미국 뉴멕시코주의 산타페에서 지낼 때 작곡했다고 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음악에 문외한이라도 한번쯤을 들어볼 만한 곡이다. (웅장하면서도 약간의 신비감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라서 문득 그 ‘사나이’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제목도 그렇고 해서.)

    아차, 사나이. 특히 이 계절에 어울리는 가을 사나이. 그러나 다음 글에 등장하는 사나이는 마동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버버리 코트 깃 잔뜩 올리고 홀로 가을 길을 걸어가는, 나름대로는 고독을 즐기는 그런 사내란 말이다.

    그리하여 사나이는, 이 졸보 태생의 사나이는 이제 잠시 현실에서 떠나 어느 가상무대 속으로 들어간다.

    


이 글의 제일 위에 나오는 장면. 마치 오프닝처럼 맛(?)만 보여드리고 ‘사나이’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바로 그 뒤의 상황을 이어서 진행하고자 한다. 그 가을 사나이, 그러나 너무 오래된 옛 이야기 속의 한 남자. 지난날을 후회, 후회, 후회만 거듭, 거듭, 거듭하면서 가슴을 아리는 한 늙은 남자의 스토리를 아래에 소개한다.



다시 마주친 운명의 장난


(남자가) 어느 날 가을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옛 추억, 아주 머나먼 옛적 이야기. 그녀가 불쑥 헤어지겠다며 떠났던 그날.

    영화장면 같은 그 옛 기억. 생각해 보면 삐친 적도, 말다툼한 적도,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거지? 혹 너무 밋밋해서 그랬나……?

    그 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TV 뉴스에 그녀 이름이 나왔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똑바로 들고 TV 화면을 응시했다. 남자는 그녀가 글을 쓰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그녀가 쓴 소설이 TV에서 소개된 것이다. 문학계 소식으로. 하긴 헤어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까, 그 세월 동안 남자가 변한 만큼 그녀도 변했겠지. 아니다. 남자는 변하지 않았다. 그 세월 동안 늘 그녀만 생각했었으니까. 물론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다. 그런데도 그녀의 기억은 늘 마음 한구석이 남아 있었다.



용감하게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오래된 물건들을 뒤져서 낡은 수첩을 찾아내어 그곳에 쓰여진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수첩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과거의 것들은 웬만한 건 죄다 버렸는데 어떻게 그 수첩이 남아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주일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오래 간다. 그리고 끊어졌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것이겠지…….

    아니, 혹 옛 번호를 문득이라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모른 척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으니…….


    

두어 달이 지났다.

    전화가 왔다. 그 번호. 잊어버리려 했는데 그럴수록 더욱 또렷이 생각나는 그 번호. 흰 눈이 오는 날이었다. 펑펑 내리는 눈.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눈이 많이 왔었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지……?

    주저하고 있는데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여보……세요?

    ― 아…….

    ― 여보세요?

    ― 저, 아……, 선희……?

    ― 아, 저…….

    ― 선희? 나……?

    ― 저, 실은 저는 선희 언니인데요……. 혹시 명욱 씨 되시나요?

    ― 네? …… 그, 그런데요……. 누구시라고요?



TV에 소개된 그 소설은 그녀의 유작이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도 그 사실이 언급되었다고 하는데, 얼핏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터라 그 내용은 의식하지 못했었다. 다른 여러 내용이 함께 흘러나오다 보니 그 말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서점에 가서 그녀의 책을 샀다. 그러나 며칠 동안 펼쳐보지 못했다. 앞표지만 뚫어져라 쳐다보았을 뿐, 뒤표지도 읽어보지 않았다. 손이 떨렸던 것이다. 물론 핑계다. 아무리 손이 떨렸어도 책을 뒤집어보지 못할까.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던 것이다. 혹 앞표지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뒤표지는 볼 생각도 못 한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 보통 책 앞날개나 뒤표지에 작가의 사진과 약력 또는 작가의 말 등이 실릴 텐데, 그곳에 실려 있을지도 모를 그녀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마치 영정 사진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아니면 그녀의 죽음을 현장에서 보는 것 같아서 일부러 외면하려 했던 걸까…….  

    


그 이후 3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그 책을 몇 번 읽었다. 그녀의 사진도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했었고. 그리고 그 책을 읽을 때마다 미치는 줄 알았다. 그 내용은, 물론 소설이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 역시……, 우리들이 헤어지던 바로 그날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잊으려 한다고 잊을 수 있겠는가? 머리칼이 하얗게 쇤 지금도 그날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그 긴 가을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던 그녀의 모습이 또렷이 떠오르는데…….

    이 밤, 숲길 따라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그 길, 그녀가 돌아서서 걸어갔던 그때의 그 길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끝]


[이 글은 타인의 추억을 차용해서 상당 부분 각색한 것, 즉 ficti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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