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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스커 Aug 20.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민들레 법칙과 물고기를 포기한다는 것

저자, 룰루 밀러가 물고기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탐구해가는 이야기였어요. 마치 2명의 주인공이 있는, 액자식 구성의 소설로 여겨졌죠. 평생에 걸친 그의 연구가 무참히 깨졌음에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모습을 보고, 저자는 불안정한 자신의 심리 상태를 극복할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를 탐구할 수록, 의문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 수록 데이비드를 지탱해주던 ‘낙천적인 방패’가 사실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목격합니다. 그는 인생의 후반부에 물고기를 분류하듯, 인간을 분류했어요. 부적힙한 인간을 분류하는, 끔직한 기술인 ‘우생학’을 신봉하고 미국 전역에 열정적으로 유통시키는 역할을 하며 비극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란 것도 알게되었죠.


책의 초반부에 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유년기를 보며,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사랑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모습에 감탄 했었어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관철하여 이내 인정받는 반열에 오르게되는 모습, 위인의 전기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의 스승, 루이 아가시의 신념에 반하는 ‘진화론’ 또한 수용하며 나아가는 모습과 연이어 닥쳐오는 비극, 평생에 걸친 연구가 한 순간에 증발 되버려도 절대 굴하지 않는 모습에 저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그가 귀감이 될 존재로 여겨지는가 싶었죠.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적당한 자기기만, 혹은 긍정적 착각, 낙천성의 방패, 하얀 거짓말은 큰 배움이라 여겼어요.


하지만... 낙천성의 방패는 그를 그른 길로 이끄게 만든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것 같습니다. 위의 줄거리에서 처럼, 그가 비뚫어진 신념으로 미국 사회에 끔찍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혼돈을 가중시켰죠. 이것이 창작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에 매료되었고, 끝내 잘못된 방향으로 확장시켰어요.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도 사실 종을 통제하려 한 것이죠. 결국 인류가 멍게처럼 ‘퇴화’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잘못된 소명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이 진실을 부정한다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부정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하지만 이 비극을 겪은 인물, ‘애나’와 ‘메리’를 만나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명제를 부정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애나가 없었다면 메리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고, 반대로 애나 또한 메리가 없었다면 현재까지의 생존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서로 그물망으로 엮여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죠. 우생학자들의 잘못된 잣대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두 사람은 그물망으로 엮여진 또 다른 인물들에게도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보며 더욱 확신을 갖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민들레 원칙’임을 깨닫습니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이죠. 지구의 입장에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수많은 관점 중의 하나일 뿐이었어요.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서 중요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시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일평생을 바쳤던 분류가 무의미 해졌습니다. 저자는,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것을 더이상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고 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물고기라 부르던 생물들의 범주인 ‘어류’가 사실 존재 하지 않다는 것이 진실로 드러났어요. 이 말은 즉,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를 하나의 단어 안에 몰아넣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류가 아니라도 이런 식으로 몰아넣어 범주를 만드는 것은 종종 보이죠. 우생학, 나치즘, 백인 우월주의 등. 때문에 범주를 만드는 것, 이름을 짓는 것의 힘이 이토록 강대하며, 한번 지어지면 직관을 바꾸기란 도통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물고기 분류학으로 시작된 비극을 통해 더더욱, ‘물고기를 포기하는 것’, 언제까지나 진실이라 여겼던 것 또한 전혀 모르던 것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자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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