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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호명사회 - 송길영

호오에서 자립을 찾다

by 병스커

‘시대예보: 호명사회’는 조직이나 직함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저자 송길영 작가님은, 갈수록 길어지는 생애에서 하나의 직업만 갖고 살아가는 보장이 없어진 사회가 되감에 따라,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하며 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알게 모르게 피부로는 체감하고 있었던 시대 분위기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발빠르게 발전하며 변해가는 시대와 점점 더 양질의 정보가 삽시간에 퍼지는 사회에서 잠시라도 정체되어 있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은 내심 느끼고 있습니다. 그럴 수록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며 길어진 생애에서 자립심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이름’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죠. 이 책을 읽으며 저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최적의 시뮬레이션 쏠림 현상이 되려 전체의 비효율을 낳는다


「문제는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모두에게 공유되면서 각자가 더욱 정교한 계획을 세우면 이것이 다시 전체적인 비효율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실시간 교통 상황을 파악하고 한산한 길로 모두가 움직이면 곧 그 길이 다시 정체 상태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시대예보: 호명사회‘의 한 구절입니다. 정말 공감가는 비유였던 ‘내비게이션’ 뿐만 아니라 유튜브, SNS, 카페, 블로그를 통해 여행 정보, 맛집 정보 등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그보다 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하는 것에 앞서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도 이러한 사전 정보 습득은 아주 중요하죠. 이제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어떠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이런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패턴이 되었어요. 이런 수단을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음에도 검증 없이 자신만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어요. 당장 내비게이션에서 말하는 효율적인 경로를 무시하기도 어려우니 말이죠.


앞서 경험한 사람들의 질 좋은 정보를 통해 시뮬레이션하여 실패를 줄이는 것은 효율적이 맞을 것입니다. 다만 그 시뮬레이션이 정말 스스로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더 빠르게 유리한 상황이 되기 위해, 더 좁은 길로 모여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쌓이게 되는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사실 정확히 교통 상황과 같아서 놀랐습니다...! 각자 병목이 발생하지 않는 뻥 뚫린 길을 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계속 노력하다 제 풀에 지치지 않기 위해


송길영 작가님은 ’시대예보: 호명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시뮬레이션 과잉의 사회라 했습니다. 작가님은 이 책에서 4가지의 시뮬레이션 패턴을 다뤘는데, 그 중 하나 ‘경쟁 과다 시뮬레이션’에서 비롯하여 발생되는 ‘분석 마비’가 유독 와닿았습니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개인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위협은 실천의 첫발을 내딛기 어렵게 만듭니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입력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압도된 사람은 스트레스로 무엇이든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너무 많은 생각 속에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분석 마비에 대해 저는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상태’


최근 교보문고를 오랜만에 방문하며 즐거운 마음 한켠에서 느껴진 불안감도 이런 마음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익혀야 할 것만 같은 새로운 덕목들이 큐레이션 된 책의 표지들로부터 전달되기 때문이죠. 디지털 매체 대비 상대적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책에서도 이럴 지언데, 인터넷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SNS 공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부지불식으로 다가오는 정보들로부터 초연하기는 참 어려워요...!


물론 발 빠르게 시뮬레이션하며 습득하고, 현실에 적용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얻는 것은 이상적입니다. 이렇게 적응 단계를 이루지 못하고, 무수히 시뮬레이션만 돌려보며 제 풀에 지쳐 체념하게 되는 상태인 ’분석 마비‘... 가만 보니 제가 자주 겪는 상태였던 것이죠.


책에서 분석 마비를 ‘과업의 총량에 압도되어 체념하고 만다는 것‘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를 사례로 들었죠. 저도 ’결혼 준비‘를 준비하던 시기에 겪었던 막막함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까운 사례로는, 더 나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을 즐겁게 찾아보다가도, 때때로 지쳐버리는 시기가 있었어요.


분석 마비라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끊임없이 들려오는 정보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음소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속도를 잠시 낮추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시도하고 있는 시뮬레이션 - 적용 - 변화를 우선 한 차례 겪은 후에 또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시작하는 것이죠. 태스크를 쪼게어 작은 승리를 자주 얻자는 것과도 맥락이 유사해요.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려보일 수는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호오에서 자립을 찾다


시대예보: 호명사회를 재밌게 읽던 중, 단어 하나가 유독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호오(好惡)'.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송길영 작가님은 사회와 산업의 혁신과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생에서 1개의 직업만 갖지 않게 될수록,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성인이 되고 6년이 지났을 무렵, 별 고민 없이 흐르는 대로 살다가 문득 의문을 품게 되었고, 결국 일시 중지를 선택하여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의 모습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었어요. 당시까지는 본인에 대한 인지가 매우 부족했어요. ‘취향’이란 단어에서부터 겁을 먹었습니다.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지만, 누군가에게 당당히 취향이라 말할 자신이 없었어요. ‘누구나 이 정도 관심은 있을 텐데... 내가 유별나게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령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어도 비용을 들여 소비하지 않았다면,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이런 고민이 시작되고부터 변화가 일어났어요. 정말로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점차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도리어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서부터 가능해졌어요. 저는 무던하여 좋고 싫음이 따로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저의 기호를 정확히 모를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죠. 깐깐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말로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이 고찰의 시기가 있기 전까지는, 업으로 삼고 싶었던 형태가 최소한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전업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게 되었고, 어느새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디자인을 하며 ’디자이너‘라 불리는 사람이 되길 꿈꿨었어요. 그리고 어느새 돌아보니 저는 정말로 모니터 앞에서 엉덩이를 절대 떼지 않고 개발을 하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개발자를 꿈꾸고 있죠. 저는 ’종일 앉아있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하며 종일 앉아있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었어요.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니, 반대로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 번의 인생에서 한 개의 직업만 가지리란 보장이 없어진 시대가 되었어요. 저는 이미 2개의 직업을 거쳤습니다. 현재 저에게 개발자라는 직업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의미를 그득히 갖고 매일 임할 수 있지만, 꼭 평생 ’개발자‘를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해요.


저는 한때 매일 그림을 그렸었고, 디자인을 했으며, 지금은 개발을 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작년부터 매일 거르지 않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가까운 지인 중에는 저를 여전히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디자이너’, 누군가는 ‘개발자’, 그리고 최근 누군가는 ‘매일 글 쓰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새삼 생각해 보면 동일한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마치 갈지자로 걸어온 듯한 길을 돌아보았을 때 관통하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었어요. 바로, 저는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것입니다! 10년 뒤의 제가 여전히 개발자일 수도 있지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분명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이 책에서 송길영 작가님은 N잡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진’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본진’이란 직무나 소득 수단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이 자리매김하는 고유 영역이라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를 정의하는 수식어는 ‘항상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 본진을 단단하게 쌓아, 어떤 시대를 맞든 저의 관심사와 저의 역량이 잘 맞아떨어지는 만드는 잡을 할 것입니다.



주체적인 네트워크를 이루는 기점, 책


책 선물을 좋아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선물’이라는 점에서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책’이라는 선물은 더 큰 특징이 있습니다. 선물 해준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 대략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더 뜻깊은 선물이라는 점이죠!


책, ‘시대예보: 호명사회’에서는 책, ‘슬픔의 방문’을 인용하며 나이나 학력, 사는 곳이나 직업은 상대를 알기 위한 정보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던 저자는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라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송길영 작가님은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른바 ’핵개인‘들은 네트워크 역시 주체적으로 선택한다고 덧붙였어요. 여기서 그 기점을 생각의 정수가 집약된 ’책‘에서 찾는다고 하였죠.


상대가 평소 ‘무엇을 읽는지’를 알게되면 취향과 가치관 등 그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책‘을 주고 받는 것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는 데 효율적인 수단인 셈이죠. 이런 특성으로 인해, 같은 책을 읽기 위해 모이는 ‘독서 모임’은 취향과 가치관이 유사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아주 효율적인 네트워크 수단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독서 모임, 커넥트 에브리원에서 비슷한 고민과 관심사를 주고 받는 멤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어요! 커넥트 에브리원의 주제, ’소프트 스킬과 인문학, 협력의 시대‘와 클럽장 테오가 선정한 4권의 책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관점과 생각을 나눌 때 ‘주파수가 조화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시대예보: 호명사회'를 읽으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었어요. 과잉된 시뮬레이션 속에서 ‘분석 마비’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는 법, 직업이 아닌 본질적 정체성으로서의 '본진'을 확립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형성되는 의미 있는 네트워크의 가치까지. 이 모든 것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주체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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