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욕구를 위해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지우지 말자
‘비폭력대화’라는 제목은 언뜻, 단어 그대로 ‘폭력적이지 않은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연상했었어요. 그렇다는 것은 ‘선량하고 관대하며, 분노가 없는 대화’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에게 짜증이나 상처를 줄 수 있을 법한 모든 표현을 일절 억제해야하는 것 아닐까 했었죠. 하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았어요.
저자는 책의 시작에서,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를 ‘마음에서 우러나와 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소통 방법’이라 소개했습니다. 비폭력대화에서의 '비폭력'은 간디의 ‘비폭력’과 같은 의미라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할 때에도 종종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하였어요. 때문에 저자가 소개하는 대화의 방식을 ‘연민의 대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부정적 감정을 아예 없애버리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자 본인도 사례를 들었을 때, 으레 사람들이 겪는 황당하거나 위협적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겨난 감정을 다뤘어요. 다만 그 마음을 어떻게 오해없이 상대가 진정으로 공감하며 수용할 수 있었는 지를 보여주었죠.
비폭력대화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대화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시켜주려는 것이 목적이라 하죠.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씩 짚어가며 우리가 다시금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을지, 실제적인 방식을 단계적으로 제시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가 익숙하다고 생각해왔
던 제가 실제로 상대도 그렇게 느꼈을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게 되었어요.
선뜻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행동에도 ‘연민’을 갖고 진정으로 ‘공감’의 마음을 갖고 대화를 한다면, 상대로부터 진정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특히 ‘제 5장,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에서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에서는 자기 느낌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죄책감을 동기로 삼는 대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네 성적이 나쁘면 엄마와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면, 이는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화법이 됩니다. 부모의 행복을 아이의 행동에 종속시키는 이러한 대화는 죄책감을 심어줄 뿐이며, 아이의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강요된 반응을 유도하게 됩니다. 누구도 즐거운 상황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저는 마침 이 대목을 읽기 전에, TV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시청한 한 에피소드에서 정확히 같은 상황을 목격하여 놀랐습니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마음가짐으로 가혹하게 아이를 대했습니다. 아이에게 죄책감 혹은 자괴감을 심어주며 아이가 더 나아지길 바랬던 것이죠. 하지만 엄마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는 점차 한계에 도달하여 엄마를 미워하고, 난폭해지는 결과에 이르렀죠.
비단 부모와 아이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업무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하는 상황일 것이며, 더더욱 욕구, 그리고 느낌의 책임을 명확히 표현해야함을 느꼈습니다.
가령 이런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마감일을 못 맞춘 건 정말 실망스러워요. 팀 전체가 당신의 작업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대화로 인해 해당 팀원은 전체 팀원들에 대한 죄책감을 받게 되고, 이어 2가지 행동 양상이 예상될 것입니다.
하나는 이 죄책감을 수용하고 다음에는 어떻게든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마감일을 맞춰내는 것이죠. 다만 저자의 말처럼, 팀원은 책임감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마감일을 맞추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지만 사실 가슴에서 나온 즐거운 행동이 아니라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능률적인 면이나 소통 면에서 그리 유익한 관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죄책감이란 감정 수용 범위의 한계에 도달하여 귀를 닫아버리거나 회사를 나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 대화의 주체 또한 팀의 목적 달성에 위험이 되는 요소를 좌시할 수는 없겠죠. 이때, 본인의 욕구를 정확히 표현하고, 느낌의 책임을 자신에게 포커스하여 전달했으면 어땠을까요?
저는 정해진 마감일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곤란함을 느낍니다. 이번에 작업이 지연된 이유를 듣고, 다음엔 어떻게 당신을 지원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요.
상대가 진정으로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태도를 바꿔줄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위해 상대에게 죄책감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고 무책임한 방식이라 생각해요. 그 마음에 응해준다해도 본인을 위해 상대방이 희생을 하는 격일 뿐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욕구,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의 느낌을 분명히 표현해야 비로소 진정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을 느낀다’ 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느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할 수 있다고 하였죠.
최근 제가 겪은, 개인적인 서비스에 대해 아쉬웠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용을 지불하고 제게 할당된 시간에,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양해 없이 다른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무한정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던 것이죠. 참다 못한 저는 결국 ‘오래 걸릴까요?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은근하게 불쾌감을 드러내는 방식)라고 말하며 욕구를 표현하여 바라는 것(내가 받고 있던 서비스를 빨리 완료하게 하기)을 얻어냈죠. 저는 이 책을 읽고 있던 기간이었음에도 비폭력대화를 실천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얻어냈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이 상황에 대해 받아들였을 지 내심 걱정이 컸기 때문에 상대와 제가 모두 바라는 결과를 얻어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때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보았을 때, 상대방이 이 상황에 대해 제가 생각한 잘못된 행동이란 점을 공감하고 미안함을 표하며, 다음에 왔을 때 같은 상황이 절대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욕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 채 거두절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에 대해서만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상대는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는 포인트가 저와 달라,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책의 내용이 떠올랐음에도 제 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여 생략했습니다. 우선 상대방이 다른 고객을 응대하고 있을 때 개입해야 했던 점이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대화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뜸 이런 욕구를 말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오해없이 소통을 잘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화법을 잘 점검하여, 비폭력대화 방식을 체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