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넘 가는 법

방법론의 환상

by 엡실론

시장의 속성이 그렇듯 유튜브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다. 돈을 벌고 싶고 공부를 잘하고 싶고 몸이 좋아지고 싶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늘 인기 동영상 탭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로그인 하면 자신의 욕망도 볼 수 있다. 100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매달 천만 원 버는 방법을 본다. 200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푸시업 제대로 하는 방법을 본다. 나만 빼고 다 부자가 되고 전문직이 되고 몸짱이 되면 어쩌나.

논리적으로는 될 것도 같다. LOL로 치면 CS 먹는 법부터, 라인 운용, 오브젝트 타이밍 등등 모든 단계별로 방법론이 존재한다. 그것도 프로 수준에서 알려준다. 대입에 성공한 사람부터 의사, 변호사 같은 사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매년 수천 명씩 나오고 의대 공부법, 변호사 공부법을 설파한다. 단계별로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본질을 꿰뚫은 사람들이 그렇다는데 따라가기만 하면 쭉쭉 올라가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름의 개선을 기대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런 방법론을 따라 한다고 괄목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갑자기 막히는 순간이 온다. 턱걸이 30개 만드는 온갖 방법론이 떠다니지만 실제로 30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운동하는 인구 중에서도 거의 없다. 물론 되는 사람들이 안 되는 사람들한테 할 말은 정해져 있다. 열심히 안 했거나, 제대로 못했거나. 이 비판이 무서운 점은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안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심과 제대로의 늪에서 도망칠 수 없다.

1000판 골드는 플래로 티어를 올리려면 2000판을 했어야 됐다. 2000판을 못 했으면 노력 부족이다. 시간의 물리적 한계상 2000판 이상 할 수가 없었다면 그걸 제대로 했어야 됐다. 아니 근데 무식하게 2000판을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500판을 하셔야죠. 페이커는 이런 말을 했다.


많이 하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어느 면에선 오히려 많이 한 건 독이다. 2000판 골드는 올라갈 가능성도 없다는 방증이 된다. 2000판? 이 새끼는 진짜 현지인이네ㅋㅋ 골드는 아무 생각 없이 해도 가는 티어 아니냐. 난 본캐 플레라 이제야 생각이란 걸 좀 하면서 하는데.

방법론은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제대로 하는 방법을 제대로, 열심히 따라 해도 된다는 보장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법론을 갖고 있을 뿐이다. 사람마다 투입에 따른 결과값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각자의 함수는 모두 다르다. 심지어 투입량에는 한계가 있다. 누구나 어느 지점에서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만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온갖 변인을 이것저것 넣어보면서 그럴싸한 결과값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변인이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다 보면 내 함수가 변할 수도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러면 언젠가는 진짜로 장애물을 극복할지도 모른다.

누구도 믿지 않고 아마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했겠지만 5년, 10년 만에 고시를 패스하는 사람도 있다. 20대와 같이 무대에 서서 30년 만에 보디빌딩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50대도 있다. 어쩌면 방법론을 따지고 고민하는 것보단 계속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길지만 젊음은 짧고, 육체는 감가상각이 너무 크기에. 나도 몇 년 더 롤을 하면 플래티넘에 갈 수 있을까.

그런데 뭐라고? 고작 플래티넘 찍는 거랑 고시 패스랑 비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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