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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19. 2024

치아보험을 2년 만에 해지했다

버리기엔 아깝고 가지고 있기엔 막막한 보험

태어날 때부터 2kg대의 몸무게를 유지했던 나는 아기 때부터 이미 입맛이 까다로웠다. 보통 먹는 속도나 양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확연히 부족한 아이였다. 이런 나 때문에 할머니는 손맛을 발휘하며 정성껏 이틀에 한 번씩 새로운 반찬을 선보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도 밥 안 먹기로 속 썩이기 1등이었던 나는 유치원에서도 소문났었다. 

직장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밥! 식사시간이 어린 시절의 내겐 혼나고 매우 힘겨운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물우물 계속 입안을 맴도는 음식이 어찌나 목구멍을 넘기기 힘들던지... 지금까지도 그다지 먹는 거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이다. 다만 달달한 그 맛에 매혹되어 디저트를 밥처럼 먹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이런 까탈스러운 문제의 입맛은 할머니의 음식에 정이 든 건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어서 힘들거나 외롭거나 지칠 때 생각나는 나의 힐링 푸드가 됐다. 물론 여전히 느리고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건 변함이 없다. 다만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고집 덕분에 나의 식습관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편이다. 

안 먹는 것도 많고 먹기 싫은 것도 안 먹는 내게는 할머니가 최선의 처방약이었다. 야채를 삶고 무치고 갈면서 쓰고 싱거워 약이 되는 것들을 입에 억지로 갖다 대고 먹을 때까지 쫓아다니며 챙겨주던 할머니가 있어서 내가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면서 내 몸에는 여러 이상 증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타지에 와서 물이 안 맞은 탓인가 보다. 그런 단순한 생각만으로 지내온 5년간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토피인지 알레르기인지 알 수 없는 붉은 피부반응은 약간의 접촉만으로도 쉽게 일어났다. 



아무래도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경계가 없는 식사가 계속 이어지고, 혼자 먹는 밥조차 챙겨 먹기 귀찮아 하루에 한 끼 겨우 먹는 날이 잦아졌고, 밥보다 과자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할머니가 아침저녁으로 차려주던 밥국반찬세트가 그리운 날이 오더라. 


할머니와 함께라서 자유롭진 못했더라도 할머니 덕분에 편하게 맛있는 밥상을 매 끼니마다 받아먹고 건강을 챙겼었던 건 분명했다. 


부족한 영양소가 불러온 건 피부만 문제가 아니었다. 뼈 관절에도 이상이 생겨 온몸 여기저기에 염증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보고 검사를 하게 되는 일들이 종종 생겨났다. 예상과 달리 별 문제없다는 검사 결과였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날 무렵, 2세를 생각했던 나는 신랑 몰래 치아보험을 들었다. 나에게는 치아보험은 보호자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있으면 나는 안심하고 출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 


검사를 해보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지만 그다지 건강할만한 이유도 없는 몸인지라 여기저기 아프다 보니 늘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유독 치아가 문제였다. 



약한 잇몸인 건 알고 있었지만 툭 튀어나온 못난 치아 억지로 잡으려 큰돈 들여 교정을 했었다. 그게 문제인 건지 잇몸이 견디다 못해 탈이 난 건지 잇몸 여기저기서 곧 빠질 것처럼 욱신거리는 통증이 생겨났다. 그래서 참다못해 치과를 한 두 군데 가봤지만 별 문제가 없다는 소견만 돌아올 뿐이었다. 대학병원까지 찾아가 잇몸 상태를 검사해 봤지만 이상이 있다거나 해결책을 속 시원하게 내주진 못했다. 


백수생활 3년 차 수입 없이 겨우 2년 동안 연명해 온 치아보험을 오늘 내 품에서 방생시켰다. 언젠가는 필요할 거라고, 내가 했던 선택에 후회는 없다며, 그렇게 미련스럽게 꽉 쥐어 잡고 있었다. 언제가 할지 모를 치료를 위해 주머니를 짜내야 하는 채무자 신세로 텅 빈 통장을 바라보니 한숨만 나와 신랑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까지 내야 하는지, 꼭 필요한 건지, 내가 판단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질문을 해줬었다. 다만 내가 답을 내릴 수 있게 기다려주며 대학병원에 갈 때도 동행해 준 신랑 덕분에 한 달가량 고민하다가 오늘부로 해지를 했다. 채무의 무게에서 벗어나 이보다 속 시원할 수가 없었고 언제 갑자기 손대야 할지 모를 아픈 잇몸과 치아 때문에 이렇게 불안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하루 앞 날을 모르는 사람인지 않던가. 끝도 모를 내일을 위해 수입원이 없는 백수입장에서는 너무 큰 희생을 의미했던 치아보험이었고 엑스레이에서 문제 삼지 못할 치아의 상태 때문에 그냥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을 만큼이나 치과 치료를 마주할 자신보다 두려움이 더 커버린 30대 중반의 왜소한 자신감으로 이만 작별인사를 고했다. 보험 믿고 막 먹던 족발, 오징어 안녕~ 


이제 내 치아는 보호해 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 보호자 노릇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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