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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an 29. 2024

명절 앞둔 돌잔치 참석하기

하나뿐인 조카 돌잔치

일 년 전 늦게 결혼한 시누이가 임신하고 낳은 신랑의 유일한 조카. 조카의 돌잔치가 설명절을 앞두고 진행된다고 한다. 거리가 가깝다면 명절이나 경조사가 아니라도 자주 내려갔을 법한데, 거리가 꽤 멀다 보니 일정을 짜는데서부터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냥 따로 생각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할 정도로 자신의 힘듦이나 고생을 그냥 받아들이는 유형의 사람이 바로 신랑이었다. 운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도 본인이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돌잔치는 조카의 생애 단 하나뿐인 돌을 기념하는 잔치일 테고, 명절은 또 설명 절라는 것이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이렇게 날이 잡혔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며 고민의 늪에 빠진 내게 손을 내밀어줬다. 


하지만 장시간의 운전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이미 눈으로 여러 번 목격한 입장으로서 선뜻 그래 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었기에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다 말았던 적이 있었다. 


명절을 앞둔 친정이 있는 며느리라면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을 생각. 내 조상도 못 챙겨봤는데 결혼했다는 이유로 신랑의 조상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고 그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속 좁은 생각이 툭 튀어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왜 그렇게 횟수로 생각해? 


나를 진짜로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드는 그의 말은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가족들 성격상 상황상 자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문제일 뿐... 양가부모님을 편견 없이 대하는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기에 그걸 꼬투리 잡을 일은 없었던 것. 그럼에도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결혼하기 전, 명절만 되면 늘 같이 챙기던 외할아버지 기일과 어머니 제사를 결혼을 하고 나니 제사 참여조차 꿈도 못 꾸게 됐다. 일찍 세상 뜬 어머니의 명절제사를 당연스레 뒷전으로, 시댁 조상 벌초와 제사를 명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생각하게 되는 게 불효녀가 되는 것만 같아 속상할 따름이랄까. 명절이 되면 늘 나는 이렇게 작고 큰 불만들이 생겨났었다. 


명절에도 맘 편히 만나지 못하는, 순수 혈통의 내 가족. 


가족이라는 단어는 결혼 이후 완전히 등본에서 독립이 된 한 가정인 나와 신랑. 이렇게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신랑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런 표현을 쓴다면 무척이나 서운해할 법이나, 친정과 시댁으로밖에 표현하는 것보다 더 명확한 단어가 없듯이 우리는 가족관계의 풍습에서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흔치 않게 각자 부모님을 챙기는 풍습을 만들어가는 신개념의 부부들을 때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부러워진달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지금까지 잘해도 못해도 함께였다 부모님을 뵈러 땐. 


돌아가신 분과 살아계신 분. 


모두를 챙기는 것도 벅찬 3박 4일의 시간에서 온전히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빼고, 도로 위에서 버리는 시간까지 빼고 나면 온전히 하루 24시간이 될지도 의문스럽다. 코로나 덕분에 좋은 게 있다면 그나마 시댁 조상을 가장 먼저 챙기는 일이 중요시 여기는 강박관념에서 잠시나마 벗어났었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도리로 알고 있는 이들로 인해 언제든 열려있는 입장문이었다. 


제사에 참여 못하는 것도 서럽겠지만, 생전에 부모님과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이 많다는 건 사실이기에, 명절만 되면 도리라는 이름이 몸을 괴롭히는 것만큼이나 갈등과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쩌다 보니 그게 횟수로 지칭할 수밖에 없었으나... 횟수의 차이를 뛰어넘을 정도의 노력을 신랑은 해주지 못했고, 그는 언제나 무던했다. 그게 좋을 때가 많지만 때론 명절에는 서운하게 받아졌다.  


돌잔치에도 참석해야겠고, 명절도 챙겨야겠고.... 두 마리 토끼 잡다가 가랑이 찢기랴


축의금부터 시작해 기름값, 선물, 식사비용까지 여러모로 쓰임이 많은 시간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챙기기 어려워 한번으로 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러다 더 큰 화가 몰려왔다. 


'내가 힘들어'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우길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내놓은 답안은 정인의 <오르막길> 가사가 떠오를 정도로 힘겨운 길인 걸 알면서도 하겠다는 그의 입장. 이외 다른 대안은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단 3일의 시간. 돌잔치를 위한 준비부터 끝내야 했다, 곧 몰아칠 명절 준비가 있겠지만. 너무 없어 보이지도 않고 너무 과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모습을 위한 채비.


축하한다는 말. 잘 커라는 말. 고생했다는 말. 모두 진심으로 우려 나오는 말이겠으나... 한편으로 부러움, 아쉬움, 부끄러움과 미안함까지 모두 안고 참석해야 하는 그 자리가 마냥 편하지 못하는 입장이기에 막상 돌잔치의 일정을 듣고서 고민부터 앞섰다. 지금 역시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으로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할지 자신이 없다. 양가 부모님이 듣고 싶어 하는 임신소식을 나는 들려 드리지도 못했는데 문제는 내가 해낼 자신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걸 모두 단 시간 내에 해낸 시누이의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부러운 건 사실이기에... 부끄러운 패자가 되어 축하의 자리를 지켜내야만 하는 숙명. 그게 바로 시누이 아이의 돌잔치에 참여해야 하는 애 없는 시언니의 입장이었다. 그 누구도 내 생각은 엄중에 없었다. 단지 축하할 일이라는 생각뿐... 


집안에 아기가 있으면 아기가 주인공이 된다는 말을 익히 들었고 몸소 겪는 중이나, 아기의 그늘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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