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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26. 2024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돈벌이에 진심이지 않았던 시간을 지나 

나는 너무 일찍 분수를 깨달은 사람이었다. 인서울을 할 생각도, 벼락부자가 될 기대도 하지 않는 허황된 꿈은 아예 꾸지도 않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명예도 직업도 취직도 그렇게 돈에 연연하지 않았던 나의 인생은 어쩌면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하다 못해 특별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름 사는 동네에서는 좋은 학교로 인정받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성적에 대한 압박감도 느꼈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머리 좋은 친구들 무리에 껴서 그들의 알 수 없는 심리전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적은 호봉의 공기업에 다니시던 나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자식인 내게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공부를 하는 데 어려움 없도록 매달 학비에 용돈까지 보내주셨고, 마음 편히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우고자 했던 학원이나 과외를 요청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보태주셨다.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아버지에 비해 특출 나지 못했고, 아마 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진작에 알고 계셨기에 크게 기대 없이 묵묵히 해내고 있는 내게 작은 희망만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잠이 많은 체질의 나는 고등학교에서 야자(저녁 자율 학습 시간)를 마치고 학원까지 다녀오면 밤 11시 무렵에나 집에 왔고, 집에 와서도 쉴 겨를 없이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해내기 바빴던 고독한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는 항상 과일을 깎아 챙겨주시기 바빴고, 열두 시가 넘으면 아빠나 할머니는 내 방문에 대고 자라는 말을 수 없이 외치셨다. 


"안 자나? 그만 자라~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하거라."


꾸벅꾸벅 졸다시피 새벽 2시를 채우고서 마지못해 불을 끄고 가방을 챙긴 후 잠이 드는 나의 새벽 일상은 현재까지도 유보한 듯싶다. 


그렇게 다음 날 학교를 가면 재밌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부터 잘생기고 멋진 연예인, 가수 등 주말에 봐야만 이야기 통할 것 같은 것 같은 영화 관련 잡담까지 깔깔거리며 웃고 즐겁기 바쁜 내 또래 여고생들의 일상은 아주 밝았다. 공부하면서도 언제 그렇게 다 챙겨보고, 알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친구들. 그렇게 놀건 다 놀면서도 공부도 잘하는 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나보다 성적이 좋은 이유는 머리가 좋은 건가. 아님 정말 독한 건가. 이게 바로 심리전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을 지냈다. 나는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학교 학원 생활에 지쳐 티비는 물론 공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땐 세상 무슨 재미로 살았던 건지 모르겠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이라면 무조건 이렇게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좋은 대학? 꿈? 전공? 학과?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없었던 나의 고3시절의 방황은 생각보다 무심해서 간단했다. 이상과 현실 간의 거리가 꽤 컸고, 나는 거리를 좁히는 게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참으로 알아야 하고 깨우쳐야 하고 몰라서 억울한 일이 많은 걸 겪다보니... 이젠 왜 그리 어른들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지!"라고 말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독하고 끈질기게 하진 못했다. 다만 농땡이 치며 살진 않았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돈 그리고 체력 안에서는 최선으로 지냈다고 여긴다. 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셨던 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은 감사하게도 내가 남들이 인정하는 명문대나 국립대에 가는 걸 요구하지 않으셨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다. 단지 내가 하고 싶어 하고, 되고 싶어 하는 대로 스스로 해낼 수 있게끔 옆에서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셨던 것 같다. 


반면 나는 확실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몰랐다. 더 이상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알수록 꼬이는 게 인생이라고, 제조기한조차 지워진 스스로에게 내린 희망고문은 그렇게 쉽게 외면하며 끝이 났다. 그나마 그 과정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어린 시절 나는 글쓰기로 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칭찬을 들은 게 행복했던 기억이 컸으며 책을 좋아했던 아이라는 것이다. 인문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고 그냥 물 흐르듯이 매일 조금씩 노력했던 성과를 바탕으로 수시전형으로 지방 사립대에 지원했다. 부지런한 할머니의 뒷바라지로 이끌어낸 학창 시절의 모범적인 성과와 면접의 결과였다. 



대학입시 수능시험을 위해 달려온 12년. 수시는 합격한 상태였지만 정시의 결과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던 내게 수능 날 아침에 따뜻하고 정성껏 챙겨주신 나의 학창 시절 마지막 도시락은 정말 눈물겨운 밥이었다. 티 내진 않으셨고 나역시 티내지 않았지만 내가 아버지와 할머니의 희망이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필 수능날 긴장으로 범벅된 나의 배 상태는 배탈로 수리영역을 완전히 보내 버렸고, 이로써 수시로 미리 붙은 대학 통보를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여 수능과 재수의 면죄부로 받아들이게 됐다. 새벽같이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해 온 나만큼이나 애써주셨던 가족들에게 내가 진실된 변명이자 쉽게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돼버렸다.


내가 속상해할 걸 알고서 나를 위한답시고, 이내 괜찮다고 도닥여주셨고, 그 이상 그 이하의 말은 아끼셨다. 다른 사람들에겐 걱정 없이 떡하니 대학에 붙은 착한 딸이자 손녀로 자랑하셨다. 아버지와 할머니처럼 나 역시도 내게 큰 바람이나 욕심이 없단 생각으로 '열심히'만 했고 어처구니 없는 결과 역시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수시로 대학에 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렇게 여겼다. 


수능이 끝났고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생이 된다 해서, 됐다해서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티비에서 보며 꿈꿨던 20대 성인의 모습과 사랑은 내 것이 아니었고 잘난 사람들의 소유물이었다. 어른으로 불리기엔 한 없이 어렸고 부족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큰 학생에 머물렀다. 여전히 우린 학생이었고 부족해서 순수했던 모습을 가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다. 그 사이 규율을 알려주는 선배들과 교수님을 만나며 과제와 과동아리활동에 대해 알게 됐고, 술과 연애에 대해 알아가고, 군대를 갔다 오거나 다녀온 복학생 선배들도 스쳐가고, 열정 넘치는 후배들도 맞이하며, 우린 사회라는 바다로 나가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헤엄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단지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게 다잖아?'


내가 4년이란 시간 동안 대학교라는 터울 내에서 꾸물거리는 동안 박차고 나가 새롭게 수능을 보거나 편입에 성공에 국립대 타이틀을 따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9급으로 당당히 첫 발을 내딛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원으로 들어가서 이력에 멋진 시작의 한 줄을 남기는 등 어떤 수단과 방법이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결과는 매우 못 알아볼 정도로 탈바꿈한 이들이 있었으니... 숱한 노력 끝에 탄생한 신화 같은 이들은 주변에 많았다. 다만 나는 네 앞길도 벅차 다른 친구들의 행보에 대해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학창 시절 주변인이었을 테다. 부러운 건 사실이다. 잘 됐다고 내게 자랑을 했어도 나는 충분히 기뻐했을 거다. 바라는 게 없었기에 내게 떨어지는 콩고물이 없더라도 좋아했을 거고 당연히 부러움도 가졌겠지. 


결과모를 공부만 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나 마찬가지로 과제나 다음 학기를 위한 준비에 여념 했던 방학. 그때 내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삶을 대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이 달랐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유일했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주변인들을 바라보면 그들 입장에서는 매우 진솔하고 치열한 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다만 나는 아주 잔잔하고 고요한 시간을 유지했던 터라 현재 역시 작은 미동에 크게 요동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돈이 좀 없음 어때요? 그냥 먹고 살 정도만 벌고 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게 바로 나였다. 빠른 퇴직으로 여행 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는 젊은 나이의 파이어족, 노후 걱정 없이 꼬박꼬박 매달 정해진 월급 받는 철밥통 공무원, 수도권에 내 집 장만한 젊은 부부, 빠른 노후 준비로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부모님 둔 자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존경받는 선생님, 정부에서 적지 않은 지원도 받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내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는 육아휴직하는 맞벌이 부부, 청약에 한 번에 성공해서 몇 억 수익 창출 중인 2030 세대, 고등학교 졸업 후 사장님 소리 듣는 성공한 투잡러 MZ세대 등 정말 우리 주변에는 살맛 나는 성공 사례의 인물들도 많고 성공 스토리도 넘쳐났다. 



나와는 먼 세상이야기 


패기 넘치게 깨지고 부딪히고 떨어졌다 일어나고 그러면서 해내는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물론 본인에게 찾아온 기회를 빠른 재치와 순발력으로 잡아낸 덕분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눈치도 둔감했고 기회가 왔다 해도 그걸 내 걸로 만들어낼 노력도 끈기도 재치도 없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유히 물길 따라 흘려보냈다. 시간이라는 물길은 흐르고 흘러 벌써 이십 년을 마주 보고 있다. 벌써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이. 다른 이들이 쌓아가고 있는 모래성이 마냥 모래성일까 콘크리트성일까. 궁금해하며 언제가 들려올 소식을 까먹듯이 기다리는 중이다. 다만 내가 달라진 게 있다면, 돈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먹고살만한 돈이라 할지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건 확실했다. 매달 내 앞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결혼 생활. 하지만 이젠 조금 다르다. 


할머니를 위해서 간병비를 벌어야 해! 


내가 할머니 간병을 도맡아 하기엔 체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걸 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잠깐이라도 할머니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한 간병 시간이 마련될 때 가족들은 다들 걱정했다. "네가 건강해야 할머니도 돌볼 수 있어." 알고 있었다. 다만 나조차 예상할 수 없는 내 몸속의 세포들의 반응은 가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여기저기로 염증을 티 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생겨났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증상들. 겉은 멀쩡해 보여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는 건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와 살던 때처럼 스스로 건강을 위한 관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할머니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가족 간병인의 조건에 적합하진 못하다는 걸.  다들 돈이 없으면 시간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는 말을 하지만... "나는 돈이 필요했고 시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취직하는 것도 일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값 없이 보내졌다. 값은 내가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만한 가치를 주지 못했다. 



더 이상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간병비를 벌어야겠단 마음을 가지게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뭐든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없던 계획. 루트. 방향성. 성별 상관없이 돈을 벌기 위한 정당하면서도 내게 적합한 일. 그걸 찾는 건 매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살면서 돈의 가치에 대해 크게 부리지 않았던 욕심을 아픈 할머니를 위해 처음으로 부려보기로 한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깨닫게 된다. 돈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기보다 상황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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