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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r 09. 2024

말과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뇌수술하고 두 달 후 변한 할머니를 보며 느끼는 감정

할머니가 뇌수술받는 날, 나는 당연히 잘 끝내고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굴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단지 기다렸다 연락을...


불안한 감정은 역시 현실로 나타났다.

수술받고 할머니가 의식이 없어 중환자실에 있대...


할머니는 그렇게 2주간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끼고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의 상태로 혼자서 외롭고 힘든 사투를 벌였으리라. 코시국인 데다 중환자라서 면회도 방문,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가족 모두 할머니를 만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할머니와 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무서웠다. 이전까지는 병원은 아플 때 아픈 곳을 낫게 해 주는 신통방통한 약과 의술 그리고 고마운 의료진이 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나와 통화하고 이야기 나눴던 할머니가 밤에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다음날 수술을 하고는 반신불구,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변해 버렸다. 물론 수술이 잘못됐을 거란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담당의사 말로도 할머니의 수술은 잘 됐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할머니가 이전부터 응급실과 병원에 가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무서우셨던 게 아닐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방랑자의 삶을 원치 않으셨을 텐데...'



나는 그래도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료받다 보면 조금이라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이니까.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나으면 내가 케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뇌수술을 하고 병동생활을 한지도 벌써 1년이 됐다


2023년 3월부터 계속 내 생애 가장 힘들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할머니와 함께 보냈고 결혼한 후에 비로소 할머니 곁을 떠났다. 곁은 떠났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거리와는 반비례할 정도로 할머니를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비해 몸이 떨어진 만큼 우리의 사이는 조금 소홀해졌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해가고 있었는데 그걸 나는 할머니 건강에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후회를 뼈저리게 한지도 1년이 됐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앙금이 돌덩이가 되어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진작에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봤어야 했는데...' 말 그대로 소홀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머니 연세에 비해 무리일 수 있을 정도로 재활치료도 연하치료도 받게 했고 할머니도 힘겨워하셨지만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는 건지 그래도 잘 따라주셨다. 그 와중에 코로나에다 병원생활에서는 걸릴 위험성이 높은 질병인 욕창과 옴 피부병으로 대학병원 입원까지 하면서 추가로 치료를 받는 고비에 고비를 겪기도 하셨다. 다 나았나 싶을 무렵에 항생제내성균이 몸에 침범해 치료를 위한 필수 의약품이나 마찬가지인 항생제까지도 소용없는 상황에 처하니 벼랑 끝에 놓인 심정이었다. 


다행히 이틀 전에 할머니가 균병동에서 나와 다시 재활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일 년 안에 들은 소식 중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내용이었다. 면역력이 약할 만큼 약해진 할머니로서는 이겨내지 못하는 병원 내 질병과의 싸움으로 거의 6개월 이상, 반년 가까이 할머니는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셨다. 그래서 다시 시급하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할머니는 학교생활처럼 병원생활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챗바퀴처럼 돌아갈 패턴이겠지만 그래도 병상위에 누워 티비만 보며 느낄 무료함이 할머니를 우울하게 만들까 봐 걱정됐었기에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질병과의 싸움을 일단락 마무리 지은 입장에서 보니... 지난 일 년 중 할머니의 목소리를 짧게라도 들어본 건 딱 2번이었다. 처음에 침상으로 이동해 내려온 할머니와의 면회. 그리고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로 침상에 누워있던 할머니와의 면회. 그나마 할머니의 의식이 있다고 여겨질 때였고, 뇌수술 이후 2달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마녀의 마법에 걸린 인어공주같이 말을 잃어버린 할머니 



할머니는 말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눈빛은 알아보는 것 같았고, 입 모양을 움직일 때도 있으셨지만, 그 쉬운 한마디 소리 내는 것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다. 왜 그런 걸까? 뭐가 문제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과정도 답도 모르는 백지 답안지나 마찬가지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생각만해도 정말 답답한 일이다. 단 한 시간 테이프를 입에 붙이고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스스로 먹을 수 없는 입장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내가 아는 할머니는 그 어떤 할머니보다 감수성도 풍부했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아했고 보고 배운 걸 알려주는 것도 좋아하고 나서서 도와주기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여길 정도로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말을 할 수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회피의 마음이라 여길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 해서 할머니가 이토록 영영 말문을 닫아버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스스로 말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여기게 됐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머니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이모. 문득문득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고 속상하기만 하는 나. 우리는 할머니의 힘든 여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잘 못된 거길래... 할머니는 말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말을 하지 못하니 기억을 하는 건지, 기억이 사라진 건지, 아님 기억이 날듯 말듯한 건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불분명하긴 해도 우리는 할머니의 눈빛과 표정만으로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읽고 있다. 가족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가끔 우리가 말을 걸면 그녀는 힘겹게 입을 움직여본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를 신음소리정도가 다였다. 그래도 그렇게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희망이다. 어항 속 붕어의 뻐금거림을 닮은 할머니의 입모양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지, 그녀의 기억 속 어디쯤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건지 알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는 길을 헤매고 있을지 모를 그녀의 외롭고 허전한 그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되어줄 존재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엄마, 할머니, 장모님, 친구...


기억을 뒤덮고 있는 안개야말로 현실을 감내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못 일어나고 못 먹고 못 움직이는 할머니보다 말을 잃어버린 할머니를 보는 게 가장 속상했다. 물론 못 드시는 게 여전히 걱정스럽고, 못 움직이고 못 일어나는 것도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할머니가 우리를 알아보고 대화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 처음에는. 


근데 지금은 할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선명해진 기억으로는 못 받아내고 견디기 괴로울 현실이었다. 우울증, 자살, 죽음과 멀지 않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질 게 뻔했다. 추하고 부끄러운 그런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했고 누구에게 노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더 깔끔하게 더 알고 더 배우고 더 움직였던 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의 성격을 우린 알고 있었고 할머니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할머니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건 힘들더라도... 우리가 할머니를 알고 오래도록 기억하면 된다고. 말과 기억을 동시에 잃어버린 게 안타깝고 속상할 따름이지만... 


할머니가 말을 할 수 없고 기억이 되살릴 수 없더라도 우리는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괴롭고 덜 힘든 방향으로 선택하자고. 할머니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려 했던 게 마냥 할머니를 위한 방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할머니 앞에 어떤 힘든 수난과 고비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러 지친 할머니를 끌고 다니는 건 고문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잊혀지는 시간과 기억, 사람이 있다. 다들 흔히 치매라고 부르지만... 그만큼 뇌가 하는 역할은 실로 어마무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말하는 것도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다니는 것조차 그 어떤  것도 뇌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지킬 수 있을 때 지키고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한다. 우리의 몸 어떤 것도 소홀히 여길 시 언제 갑자기 큰 코 닥칠 일이 눈앞에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말할 수 있을 때 좋은 말 많이 해주고, 나쁜 기억보단 좋은 기억을 가지도록 할 것.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고 우리 역시 그렇게 좋은 기억을 가지며 살아가는 게 짧은 인생에 대한 최소한 배려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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