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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20. 2024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는 이유

딸과 며느리의 차이, 세월은 무시 못한다.

예전에 신랑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야.

그러니까 며느리가
딸이 될 순 없어



"그래도 부모님이 당신~ 딸처럼 예뻐하시잖아?"  그렇게 말을 하는 신랑이 내심 서운한 마음으로 말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 역시도 언제나 그렇게 말해주는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딸같이 대하는 그 마음에 비례하게, 딸 노릇까지 원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신랑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서부터 편을 가른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수십 년간 남이었던 사이인 건 분명한데,  갑자기 수십 년간 같이 살아온 자식과 같이 대하고 똑같이 생각할 일은 없지 않을까?


나 역시도 부모님께서 무심코하시는 말에 서운함이 생기곤 했었는데 사소한 오해가 이런 아닐까 싶다.  


궁금하시면 편하게 연락하는 시댁 문화로 가끔 시부모님으로부터 안부전화를 받게 됐었다. 신혼 초에는 이런 연락이 아들이 밥 굶길세라 감시받는 기분이 들곤 했달까... 


결혼한 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시댁에 가면 신랑의 들러리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신랑이 없으면 의미 없는 사람같이 온통 신랑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만 있었다.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반가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부모님.


서성거리게 되고 머뭇거리게 된다.


물론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지만 매번 갈 때마다 신랑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을 볼 때면 부모님의 마음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필요할 때나 고마울 때만 딸이 되고 이외의 경우엔 가족이라기보다 오빠의 아주 친한 친구사이 같달까. 


수많은 시간을 겪으며 딸과 아들의 성격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눈치 보시면서 내 생각은 어떤지 크게 중요할 일이 없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묵인하는 게 당연스레 여겨졌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신 데다가 신랑이 공통적으로 좋아한단 얘기를 할 때면 지나치기 바쁜 듯 의미 없이 무심하게 넘어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챙겨주시는 것도 굳이 필요 없지만 안 챙기면 서운해하실 부모님 눈치 보며 챙겨가야만 하는 일이 잦았고, 괜찮다고 손사래 쳐도 억지로 넣어주시는 게 어쩔 땐 먹을 사람 없고 필요한 사람 없다는 이유로 등 떠밀듯이 챙겨 넣으시는 게 마냥 감사하단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당장 먹지 않으면 상해서 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겼고, 음식물 처리가 어려운 시설로 인해 가끔 난감을 표현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황으로 결론은 "상태 안 좋으면 버려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렇다. 별 수 없는 줄도 알고 일부러 안 좋을 걸 주셨을 거란 생각도 하기는 싫다. 다만 우리가 가져가지 않으면 가져갈 사람 없다는 반응으로 대하시니... 우린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걸 가져와 눈앞에서 처리해 드려야 하는 음식물처리반이자 문제해결사 역할 노릇을 떠맡게 된 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심지어 이름으로 불러 주시는 게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 처음에는 나로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게 몇 년이 지나서도 듣다 보니 가족이라기보다 개별체로 인정받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도 이런 기분이 지속될까 봐 걱정스럽긴 하다. 우리에게 지금처럼 앞으로도 아이가 없다면 죽을 때까지 ~엄마라는 말 호칭 대신 내 이름으로 불리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친정 식구들에게 사위대우를 제대로 받는 신랑이 부러울 따름이다. 내가 외동이다 보니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아들 같은 노릇을 해달라고 해도 무덤덤하게 반응이 나올 뿐이다. 


"나야 다를 바 없지. 편견 없이 다 똑같게 대해드리는 걸..."


나만 벽을 두고 낯설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서운함이 더 깊어졌다. 본인이 똑같은 부모님으로 대한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기분이 들게 했으니까 말이다. 


연애할 때는 몰랐다. 아니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우리 둘만의 문제가 가장 중요했고, 가족은 그다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둘보다 가족을 먼저 살펴보게 됐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까닭에 서로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아마 내가 신랑에게 "서운해하는 게 상대에 대한 기대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 전에도 결혼한 후에도 나는 신랑이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문제라고 본다면, "신랑이 나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보냈던 결혼 생활이었다. 바라는 마음을 생기고 불만이 좀 생겼어도 내 못난 모습이겠거니 여기면서 내가 서둘러했었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더라... 


서운함은 가끔 입 밖으로 거칠게 튀어나왔다. 육두문자는 아니지만 과자 부스러기처럼 티도 안 나게 밖으로 던져졌는데... 가끔은 강 너머 불구경 하듯 대할 때도 있긴 해도, 그렇게 서둘러 냉큼 치워주는 센스를 발휘했었기에 잠시라도 그에게 희망을 봤던 것 같다. 그렇다 해서 사람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내겐 아이가 없었지만 그를 보면서 마치 아들 하나 키우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결혼과 동시에 그의 가족 역시 내 가족이 되어 버렸다.  


신랑이 뭘 나서서 하나라도 더 챙기는 씀씀이는 아닌 탓에 내가 나서서 챙겨드리게 되는데 돈벌이가 없는 주제라도 한분이라도 빠뜨리면 서운할세라 마음을 두배로 쓰며 이것저것 챙겨보려 하다 보니 금세 지쳐버렸다.


나는 시댁에도 동등하게 챙겨드리려 하는데 신랑은 그런 나섬이 없는 데다가 내가 시부모님께 잘하는 만큼

장인장모에게 잘해 보이는 사위가 돼줬음 하는데 내 눈에는 성에 찰리 없으니 서운함만 증폭될 뿐이었다. 먼저 바라지는 못해도 우린 부모님에게 하는 잘하는 상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서로의 부모님에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한테 잘하는 것보다 가족에게 잘해주는 게 더 고맙더라. 


내가 딸이 아닌 며느리인 만큼, 그 역시 아들이 아닌 사위였다. 내가 더불어 챙기는 걸 버거워하는 줄 알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스스로 부모님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서 내가 못 살필 때 한 번 더 살펴보고 먼저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는 걸 알게 됐고, 그나마 장족의 발전이지 않은가. 


각자 부모님만 챙겨도 버거운 세상이다. 


어쩌면 "손 안 벌리고 스스로 앞가름해 내는 것만으로도 잘 컸다. 잘 산다. " 그렇게 생각하실 부모님이겠으나 어찌 결혼했다는 이유로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한 부모님을 명절날 뵙기 어렵고, 명절날 부모님 제사도 못 치르고, 내 조상이 아닌 시댁 조상들을 먼저 챙기는 것 마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억울하게 여겨지는 현 시대상에 알맞게 가족문화 역시 다르게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없었고, 해주면 고마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결혼 한 이후로 부모님도 할머니도 연락만 드려도, 뭐 하나 챙겨 드려도, "고맙다"는 말을 진심을 담아 해 주셨다.  마땅히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거겠지만, 나는 쉽게 해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챙김을 했을 뿐이었는데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전혀 바라는 마음 없이 온전히 있는 그대로 고맙게 받아 주셨다. 


오히려 건강을 걱정하고 좋은 걸 먹도록 하나라도 챙겨주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시집가고 나니 더 크게 느껴졌다. 손수 담근 매실주, 엄마 몰래 챙겨뒀던 아몬드 사탕, 몇 포기 없던 김치를 꺼내 하나씩 담아 양손 무겁게 챙겨주셨다. 필요 없다고 챙기는 게 아닌 진짜 필요한데도 넣어주는 부모님 마음이 고마웠다. 


용돈 한 번 제대로 챙겨드린 기억이 없다. 그렇다 보니 뭐 그리 챙겨주시는 것도 돌려 드릴 수 없단 생각에 마냥 받는 게 편치 않기 때문이었다. 

자식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 자식에게는 다 퍼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면, 보답하고 싶은 게 자식 마음일 테다. 부모님께는 모두 감사한 마음이다. 자식을 위해 한평생 고생하신 부모님들... 보답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뭐라도 해드릴 텐데 살다 보면 그러지 못한 경우가 더 많지 않겠나.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자식을 키우며 내리사랑을 이어간다 말이 있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자식을 양육해서가 아닌 부모님께 직접 효도하는 게 맞지 않나 라는 생각도 있다. 만약 자식이 없고 스스로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불효자인 걸까. 


아기도 안 낳을 거면 뭐 하러 결혼하냐? 는 고리타분한 시선도 있다. 아기를 낳기 위해 자손을 잇기 위해 시집가야 한다면 뭐 하러 고생스럽게 어려운 결혼이라는 관문을 거쳐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뒤늦게 의문이 들긴 했다. 왜 이혼을 하는지. 왜 결혼을 하는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자식으로,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우리에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관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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