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며느리의 차이, 세월은 무시 못한다.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야.
그러니까 며느리가
딸이 될 순 없어
"그래도 부모님이 당신~ 딸처럼 예뻐하시잖아?" 그렇게 말을 하는 신랑이 내심 서운한 마음으로 말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 역시도 언제나 그렇게 말해주는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딸같이 대하는 그 마음에 비례하게, 딸 노릇까지 원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수십 년간 남이었던 사이인 건 분명한데, 갑자기 수십 년간 같이 살아온 자식과 같이 대하고 똑같이 생각할 일은 없지 않을까?
나 역시도 부모님께서 무심코하시는 말에 서운함이 생기곤 했었는데 사소한 오해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서성거리게 되고 머뭇거리게 된다.
수많은 시간을 겪으며 딸과 아들의 성격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눈치 보시면서 내 생각은 어떤지 크게 중요할 일이 없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묵인하는 게 당연스레 여겨졌다.
당장 먹지 않으면 상해서 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겼고, 음식물 처리가 어려운 시설로 인해 가끔 난감을 표현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황으로 결론은 "상태 안 좋으면 버려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렇다. 별 수 없는 줄도 알고 일부러 안 좋을 걸 주셨을 거란 생각도 하기는 싫다. 다만 우리가 가져가지 않으면 가져갈 사람 없다는 반응으로 대하시니... 우린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걸 가져와 눈앞에서 처리해 드려야 하는 음식물처리반이자 문제해결사 역할 노릇을 떠맡게 된 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심지어 이름으로 불러 주시는 게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 처음에는 나로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게 몇 년이 지나서도 듣다 보니 가족이라기보다 개별체로 인정받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도 이런 기분이 지속될까 봐 걱정스럽긴 하다. 우리에게 지금처럼 앞으로도 아이가 없다면 죽을 때까지 ~엄마라는 말 호칭 대신 내 이름으로 불리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나야 다를 바 없지. 편견 없이 다 똑같게 대해드리는 걸..."
나만 벽을 두고 낯설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서운함이 더 깊어졌다. 본인이 똑같은 부모님으로 대한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하는 게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기분이 들게 했으니까 말이다.
연애할 때는 몰랐다. 아니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우리 둘만의 문제가 가장 중요했고, 가족은 그다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둘보다 가족을 먼저 살펴보게 됐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까닭에 서로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아마 내가 신랑에게 "서운해하는 게 상대에 대한 기대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 전에도 결혼한 후에도 나는 신랑이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문제라고 본다면, "신랑이 나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보냈던 결혼 생활이었다. 바라는 마음을 생기고 불만이 좀 생겼어도 내 못난 모습이겠거니 여기면서 내가 서둘러했었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더라...
서운함은 가끔 입 밖으로 거칠게 튀어나왔다. 육두문자는 아니지만 과자 부스러기처럼 티도 안 나게 밖으로 던져졌는데... 가끔은 강 너머 불구경 하듯 대할 때도 있긴 해도, 그렇게 서둘러 냉큼 치워주는 센스를 발휘했었기에 잠시라도 그에게 희망을 봤던 것 같다. 그렇다 해서 사람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내겐 아이가 없었지만 그를 보면서 마치 아들 하나 키우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결혼과 동시에 그의 가족 역시 내 가족이 되어 버렸다.
신랑이 뭘 나서서 하나라도 더 챙기는 씀씀이는 아닌 탓에 내가 나서서 챙겨드리게 되는데 돈벌이가 없는 주제라도 한분이라도 빠뜨리면 서운할세라 마음을 두배로 쓰며 이것저것 챙겨보려 하다 보니 금세 지쳐버렸다.
나한테 잘하는 것보다 가족에게 잘해주는 게 더 고맙더라.
내가 딸이 아닌 며느리인 만큼, 그 역시 아들이 아닌 사위였다. 내가 더불어 챙기는 걸 버거워하는 줄 알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스스로 부모님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서 내가 못 살필 때 한 번 더 살펴보고 먼저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어렵다는 걸 알게 됐고, 그나마 장족의 발전이지 않은가.
각자 부모님만 챙겨도 버거운 세상이다.
어쩌면 "손 안 벌리고 스스로 앞가름해 내는 것만으로도 잘 컸다. 잘 산다. " 그렇게 생각하실 부모님이겠으나 어찌 결혼했다는 이유로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한 부모님을 명절날 뵙기 어렵고, 명절날 부모님 제사도 못 치르고, 내 조상이 아닌 시댁 조상들을 먼저 챙기는 것 마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억울하게 여겨지는 현 시대상에 알맞게 가족문화 역시 다르게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없었고, 해주면 고마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결혼 한 이후로 부모님도 할머니도 연락만 드려도, 뭐 하나 챙겨 드려도, "고맙다"는 말을 진심을 담아 해 주셨다. 마땅히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거겠지만, 나는 쉽게 해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챙김을 했을 뿐이었는데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전혀 바라는 마음 없이 온전히 있는 그대로 고맙게 받아 주셨다.
오히려 건강을 걱정하고 좋은 걸 먹도록 하나라도 챙겨주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시집가고 나니 더 크게 느껴졌다. 손수 담근 매실주, 엄마 몰래 챙겨뒀던 아몬드 사탕, 몇 포기 없던 김치를 꺼내 하나씩 담아 양손 무겁게 챙겨주셨다. 필요 없다고 챙기는 게 아닌 진짜 필요한데도 넣어주는 부모님 마음이 고마웠다.
용돈 한 번 제대로 챙겨드린 기억이 없다. 그렇다 보니 뭐 그리 챙겨주시는 것도 돌려 드릴 수 없단 생각에 마냥 받는 게 편치 않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자식을 키우며 내리사랑을 이어간다 말이 있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자식을 양육해서가 아닌 부모님께 직접 효도하는 게 맞지 않나 라는 생각도 있다. 만약 자식이 없고 스스로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불효자인 걸까.
아기도 안 낳을 거면 뭐 하러 결혼하냐? 는 고리타분한 시선도 있다. 아기를 낳기 위해 자손을 잇기 위해 시집가야 한다면 뭐 하러 고생스럽게 어려운 결혼이라는 관문을 거쳐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뒤늦게 의문이 들긴 했다. 왜 이혼을 하는지. 왜 결혼을 하는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자식으로,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우리에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관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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