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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Aug 26. 2023

평범한 날들을 응원해

반짝거리는 순간만이 인생은 아니니까


새벽 다섯시 반, 알람도 없이 매일 눈을 뜬다. 아침 메뉴를 고민하며 샤워를 하고, 몸을 말린 후 황급히 거실로 나오면 그제서야 일어난 아들이 눈부비며 굿모닝하며 인사를 건네준다. 가볍게 요거트에 그래놀라를 요청할때도 있지만 때론 고등어 구이에 미역국을 주문하기도 하는 변칙적인 입맛의 7살 아들은, 밤사이 완전히 충전된 에너지로 내 분주한 준비과정을 동행하며 아침부터 조잘조잘 에너지를 발산한다.


붕어똥처럼 나를 쫓는 녀석을 벗삼아 가벼운 화장과 출근룩 코디를 마쳐놓고 드디어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식사로 식탁에 앉아 한숨돌린다. 마음은 급하지만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로그 순간만큼은 나 또한 잠시 에너지를 충전한다.


여유라는 사치도 잠시, 아이가 마지막 숟갈을 입에 넣음과 동시에 후다닥 싱크대에 그릇들을 적셔놓고 다시 안방으로. 이를 닦고, 화장을 고치고, 향수까지 칙칙 뿌리고 나면 비로소 길었던 출근 준비과정이 끝난다. 저 역시 옷을 갈아입고 등원 준비를 마친 아들이 오늘도 힘내라며 신발장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준다. 매일봐도 매일 진귀한 그 풍경을 눈에 담은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한숨 돌리며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블루투스로 연결한다. 비로소 오늘도 무사히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회사로. 하루 중 가장 치열한 나의 세시간, 매일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의도치 않은 미라클 모닝. 이 모든 과정을 출근 전까지 매일 무사히 마쳐내는 것은 그야말로 미라클이다. 워킹맘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특별할 것 없도 없지만 쉬이 해낼 수도 없는 이 아침을 매일 견뎌내고 버텨내는 우린 어쩌면 매일 뜻하지 않게 미라클 모닝을 실천중인지도 모른다.




반짝이지 않을거면 뭣하러 사냐며 주창하던, 치기 어렸던 젊은날이 있었다. 그땐 단조롭고 재미없게 사는 것은 죽음과 비견될 수 있을만큼 몸서리 치도록 싫었다. 여행을 하고, 새로운 경험치를 쌓고, 매일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만의 세계를 다듬고, 공고히 하는 재미로 살았다. 세상으로부터 무한한 자극을 받고, 그러한 자극을 끝없이 찾아 헤메이던 그때의 나는, 혹여나 변수가 생기진 않을까 두려워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을 구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겠지.


그러나 이러한 단조로운 매일의 일상속에서 인생의 그 어느 시점보다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한다. 반짝거리던 젊은 시절의 나도 마음 아주 깊은곳에선 어쩌면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고.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요즘 책, 인스타, 유튜브 등 각종 매체에서 화두는 “변화”다. 보란듯이 사표를 던지고 꿈꾸던 삶을 일궈가는 멋진 청춘들의 이야기, 상처뿐인 관계를 정리하고 이혼후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후일담, 다이어트로 성형보다 더 큰 변화를 꾀한 사람들의 성공담, 평범한 직장인에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자의 삶을 얻게된 신화까지. 자극적이고 고무적인 이러한 소재의 이야기들은 언제 봐도, 언제 들어도 참 솔깃하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어서 재밋어'라는 깨달음이나, '나도 변화를 꿈꾸며 살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남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가끔 타이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지친다.


우리의 기나긴 인생이 결국 나 자신을, 또는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해보면 수많은 변화필시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찾고 싶었다.


우리 삶을 극적으로 바꾸는 변화의 순간이나, 불꽃같은 경험이 아닌, 그저 매일 오늘의 일상을 버텨내고 견뎌내는, 그 속에서 소소함으로 매일을 행복하게 일궈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정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으로 출근하여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이땅의 모든 회사원들의 지구력과 끈기는 퇴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자의 용기만큼이나 칭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툼과 실망을 반복해가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미운정 고운정이 점철된 채로 살아가는 노부부의 따뜻한 온기는 한때 사랑이라 부르던 관계를 법적으로 끊어가며 새 삶을 찾으려는 의지 만큼이나 존경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수면위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물아래에서 누구보다 발을 굴렀을 백조처럼, 단조로워 보이는 매일의 일상을 영위하기위해 무한한 에너지를 수면아래에서 쏟고있는 우리 모두의 매일은 너무도 찬란하다. 그렇게 발을 구르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 수도 있고, 또는 뜻하지 않는 이유로 물위가 아닌 뭍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게 될날도 올지 모르지만,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삶은 너무도 경건하다.

 


영화 <소울> 조 가드너와 22번의 모험

영화 <소울>서 내가 찡했던 장면은 조 가드너가 꿈의 무대를 이루는 순간이 아닌 바로 삶의 목적에 대해 깨닫는 마지막 장면이다.

그 작은 순간들이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 줬어. 맛있는 피자 한 조각, 바람이 부는 것, 지하철 역의 감미로운 노래...


가슴을 뛰게하는 어떠한 열정(spark), 특정한 목적만을 삶의 이유라 생각했던 조는, 22번과의 기나긴 모험 끝에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모든 사소한 조각들이 우리네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음을 깨닫았다. 


반짝거리는 순간만을 인생이라 믿던 젊은 시절의 나는, 벚나무가 벚꽃 한철을 위해 살아낸다고 생각한 것 만큼이나 큰 착각속에 살았다. 벚나무는 벚나무의 시간을 살듯 나는 이제 특별한 불꽃이나 반짝임이 아니어도 매일의 소소함, 일상의 사소한 조각들로도 충분히 내 삶을 풍요롭게 일궈나간다. 


평범한 모두의 매일을 응원한다. 어떤한 자극이나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오늘을 성실히 살아나가야할 이유를 만들며, 가치롭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을, 불꽃보다 더 뜨거운 우리의 매일을 열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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