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소란
나는 내가 안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싶다.
여느 다른 노동자들이 꿈꾸는 환경처럼 말이다.
글쓴이. 분홍색 불가사리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20살 때부터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피시방 아르바이트는 소위 말하는 ‘꿀알바’로 알려져 있었고 나도 그것을 기대하고 지원했다. 면접 때 사장은 자신의 매장이 타 피시방보다 시급이 높음을 강조했고, 높은 시급만큼 내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시급이 6470원일 때 7500원을 준다고 했으므로 높은 시급에 뒷말은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겠다고 했다. 주말 아르바이트로 채용된 것이라 다음 출근날은 당연히 토요일이어야 했지만 사장은 월요일이나 화요일 시간 되는 때에 와서 레시피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학교에 다녔던 나는 시간이 안 됐고, 평일에는 학교에 다녀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자 “기본이 없는 애”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에 출근해서는 레시피 교육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8시간 근무하는 내내 “너는 남보다 뒤처지니까 더 열심히 일해” “요리 못하면 인사라도 잘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나중에 레시피 교육을 들으러 갔던 언니한테 물어보니 당연히 그에 대한 수당은 못 받았다고 한다.
주말에는 매우 바빠 사장을 포함하여 4명씩 일했다. 물론 카운터에는 의자가 하나밖에 없었다. 사장이 앉아야 했으니까. 우리는 8시간 동안 서서 일해야 했다. 밥 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음료조차도 눈치 보며 마셔야 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일하고 나서는 식사시간이 생기기는 했지만 한가한 시간에 교대로 좁고 먼지 쌓인 창고에 들어가 최대한 빠르게 먹고 나와야 했다. 사장은 항상 “ 네가 늦게 먹고 나오면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고생하는 거지 뭐”라고 이야기했다. 알바가 끝나면 다리가 너무 아파 항상 근처 드럭스토어에서 냉찜질팩을 사 갔다.
사장은 매장에 있는 선명한 화질의 CCTV를 항상 자랑스러워했다. 분실물도 바로바로 찾을 수 있고 청소를 깨끗이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장은 보통 11시에 출근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그 전 날 야간 아르바이트들이 어떻게 일했나 CCTV를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한 번은 매장 유니폼이 앞치마였는데, 내가 일하다 앞치마가 느슨해져서 풀어졌고, 풀어진 즉시 사장에게 전화가 와 앞치마 똑바로 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매시간 CCTV를 통해 우리를 감시했다.
여름이었나.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유니폼인 앞치마를 매고 근무하던 때였다. 어떤 손님이 커피를 시켜 서빙을 나갔고 그 손님은 시켜 놓고 담배를 피우러 갔던 상황이었다. 매장 흡연실은 모든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고 매장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손님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가라고 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는데 뒤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그 남자(=손님)가 내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당시에는 당황스러워서 뭐 하는 거냐고 하고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다. 그 남자는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하고 삭제한 뒤 태연하게 게임을 했다. 이 일을 사장에게 바로 말했고 사장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러게 왜 손님이 없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가”였다.
그 말을 듣고 머리가 백지로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일하다 퇴근하는 길에 생각을 정리한 뒤 그 남자와 사장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사장은 “여자애라 그런가 예민하다.”라고 반응했다. 다음날 같이 일하는 언니가 그 남자의 핸드폰을 다 뒤진 후에 사진이 안 남은 것을 확인하고, 나에게 사과하라고 대신 분노해줬다. 남자는 “친구들한테 알바생이 내 지갑에서 돈 훔쳐간다고 농담하려고 찍었다. 경찰 공무원 준비 중이다. 제발 봐달라.”라고 했고 뭐 사과의 의미로 배스킨라빈스를 사 왔다고 한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게 아직까지 응어리로 남아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보호받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몇 개월 뒤에 일을 관뒀다.
두 번째 피시방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장이 거의 매장에 간섭을 안 하는 1인 근무 형식의 매장이었다. 이곳은 카운터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식대는 무제한이었다(매장 음식들에 한해서). 물론 온갖 수당을 안 챙겨주고 모든 근무자에게 최저시급을 지급했다. 한가할 때에는 핸드폰을 해도 됐고, 무엇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장이 간섭을 안 하는 매장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 자유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혼자 일해야 한다는 것은, 바쁜 시간일 때에도 나 혼자 모든 주문을 감당해야 함을 뜻했다. 내가 일했던 피시방은 100 좌석쯤 있었다. 피크타임엔 한 명의 근무자가 백명의 손님을 상대해야 했다. 오후에 게임을 하고 있는 손님이 80명쯤 있다고 가정했을 때. 저녁시간이 되면 20명쯤 라면이나 덮밥 같은 조리식품을 시켜 먹는다. 자잘한 음료(탄산이나 커피)들은 거의 80명이 전부 주문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2명 정도는 회원가입을 안 하고는 어떻게 이용하는지, 프린트는 어떻게 하는지 카운터에 와서 물어본다. 또 3명 정도는 헤드셋이 안 들린다, 컴퓨터가 안 켜진다며 나를 부른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무리인 구조이다.
피시방의 음식들은 대부분 빨리 조리되고 빨리 나가야 하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서두르다 튀김 기름에 데거나 라면 국물에 데이는 일은 다반사다. 혼자 일하는 매장이라 식사시간 또한 보장되지 않는다. 내가 배고플 때 먹는 것이 아닌 손님과 눈치싸움을 하고 한가할 것 같은 시간에 알아서 먹어야 했다. 덕분에 불은 라면을 먹는 일이 다반사였고 나중에는 의자가 있어도 일어서서 먹는 것이 편해 오후 근무를 할 때에는 항상 일어서서 먹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나서는 밥을 안 먹는 게 편했다. 밥을 먹다 마스크를 쓰고 손님 응대를 하고 다시 벗고 먹다가 쓰고 손님 응대를 하면 마스크에 음식물이 묻어 있는 것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한 사람들은 대개 음식점 아르바이트 노동자, 카페 아르바이트 노동자, 술집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매우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다. 다양한 일들이 모두 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아메리카노부터 5가지 종류의 스무디가 있고 에이드 아이스티 등등의 음료가 있다. 음식 또한 라면부터 시작해 덮밥류, 볶음밥류, 갖가지 튀김들 종류가 다양하다. 음식 레시피만 해도 40가지가 훌쩍 넘는다. 음료 레시피 또한 20가지 정도 된다. 바쁠 때에는 레시피를 볼 수 없으니 이 모든 것들은 머릿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새벽시간에 일을 하면 새로운 류의 진상을 만난다. 술 취한 사람들이 취한 몸을 이끌고 피시방에 게임을 하러 오는 것이다. 게임만 하고 가면 좋겠지만 술에 많이 취한 사람들은 어지러운 게임 화면을 보면 속이 메스껍기 마련이다. 술에 취해서 오는 손님의 절반은 화장실이 아닌 매장 바닥에 토를 한다. 가끔씩 화장실 바닥에다가 X을 싸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 청소는 내 몫이다. 하루에도 유동인구가 몇 백 명이 되니 사건 사고도 그만큼 많다.
혼자 일하고 사장의 간섭이 적다는 것은 또한 다양한 종류의 진상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함을 뜻한다. 피시방에 여자 혼자 근무하고 있는 것. 그것은 주손님이 남성인 피시방에선 최악의 요소이다.
2018년,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으로 사장님으로부터 진상 손님은 절대 말도 섞지 말고 바로 자신에게 전화하라는 공지사항이 떨어졌을 때였다. 한 할아버지는 나에게 한게임 홈페이지 본인인증이 안된다고 다짜고짜 반말로 화를 내며 이야기했고, 확인해본 결과 그건 우리 매장의 문제가 아닌 할아버지의 핸드폰 문제였다. 이걸 차근차근 설명하는데 말을 끊고 왜 안되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고, 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인 걸 직감하고 대충 사과하며 요금을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환불할 돈을 가지러 카운터로 간 나를 단숨에 쫓아왔고 30분간 소리를 지르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중에 기억나는 말은 “여자애가 싹수가 없다.”, “이번 피시방 살인사건이 너 같은 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내가 너를 줘 패고 경찰서를 가야 정신을 차리겠냐”, ”여자니까 모르는 걸 내 핑계 댄다. 남자 불러와라” 등이다.
물론 그때에도 80명의 손님들이 있었고 큰 소리에 다들 카운터를 지켜봤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 직원이 근무하는 시간을 알려주고 돈을 준 뒤에야 할아버지는 30분 간의 폭언을 끝내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사장은 얘기를 듣고 배려 차원에서 일을 쉬게 했지만, 나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주일 만에 다시 폭언을 들었던 그 자리로 나가야 했다.
사실 위와 같은 일들은 자주 있는 편은 아니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저런 진상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어린 여성 노동자를 무시하는 보통의 남자들은 매일매일 있었다. 컴퓨터 게임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여 불러 내가 가니 다짜고짜 남자 근무자 불러오라던 남자 1, 모니터 위치가 마음에 안 들어 바꾸고 싶다 하여, ‘이 제품은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니 무거워서 못 드는 것은 아니냐고 비꼬던 남자 2, 여자 근무자들한테는 반말하고 남자 근무자한텐 존댓말 하는 남자 3, 7n 년 생인데 자꾸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던 남자 4, 컴퓨터 설정 고쳐주니 여잔데 이런 것도 아냐고 물었던 남자 5, 대놓고 여자가 타주는 커피가 맛있다고 하는 남자 6, 컴퓨터 문제에 대해 몰라 사장님한테 전화 거니 역시 여자라서 모르네라고 했던 남자 7, 여자치고 싸가지 없다고 내게 말한 남자 8, 그리고 컴퓨터 문제를 고치면 여자는 고치는데 왜 너는 못 고치냐고 옆에서 키득대던 남자 무리들. 여자 혼자서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매일 들을 수 있는 단골 멘트다.
여전히 피시방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하지만 근무 환경은 어떤가. 모든 곳에 ‘어린 여성 노동자’를 무시하는 사람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장은 책임자로서 어떤 대처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조금의 공감조차 하지 못한다. 여성 노동자에게만 선택적 분노를 표출하는 진상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장에겐 피시방에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손님’ 일뿐이다.
피시방에서 일하면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진상이 아니다. 나를 보호해줄 체계가 아무것도 없다는 환경이 가장 무서웠다. 내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으나 대응 체계는 하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애초에 ‘이상한 손님’은 예견된 존재였다. 과연 이 문제가 여성 노동자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소한 문제일까? 근무하는 매장에서 30분간 폭언을 듣는 것, 손님에게 자잘한 욕을 듣는 것은 혼자 감당할 수도, 해야 할 문제도 아니다. 나는 내가 안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싶다. 여느 다른 노동자들이 꿈꾸는 환경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