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Sep 29.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바꾼다 (1부)

스물세 번째 소란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게 활동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태린-유니브페미 승연, 진서



23번째소란의 주인공은 ‘유니브페미’의 활동가 승연과 진서. 유니브페미는 2019년 출범하였으며, 대학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연대의 방향을 모색하는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이다. ‘마녀행진’, ‘F5 프로젝트’등 성평등한 대학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운동’은 아직까지 ‘자원봉사’와 동일한 단어로 해석되곤 한다. ‘활동’은 ‘노동’이 될 수 있을까? 그 가치는 어떻게, 어떠한 기준으로 책정될 수 있을까? 대학생이자,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그들과 함께 ‘활동’과 ‘노동’의 경계, ‘지속 가능한 활동’의 가능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승연: 유니브페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승연이라고 합니다.


진서: 저도 유니브페미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윤김진서라고 합니다.


-두 분 모두 어떤 계기로 유니브페미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진서: 다양한 경로로 유니브페미에 유입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인터뷰에는 좋을 텐데. (웃음) 저랑 승연 둘 다 어쩌다 들어온 창립 멤버예요. 저는 2018년도에 성균관대에서 총여학생회 재건 운동을 했었어요. 재건의 맥락에서 학교 밖에 있는, 다양한 학교들을 잇는 여성주의 단체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됐고요. 유니브페미 기획, 구상, 설립의 과정을 같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승연: 진서가 말한 대로 저도 창립 멤버고요, 대학에 재학 중이라 반상근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람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지금 단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그리고 두 분 다 일반회원이 아니라 직책을 맡고 계시잖아요, 그렇게 선택하신 이유도 여쭤보고 싶어요. 

진서 : 유니브페미는 개인이 회원이 될 수 있는 단체예요. 저는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고, 상근을 하고 있어서 주 4일에서 5일 정도 출근을 해요. 집행위를 운영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고요. 총회에서 의결받은 사업들을 기획하고, 이후 진행을 점검하고, 어떤 업무가 필요한지 파악하여 분배하고, 인준받은 사업과 더불어 이슈들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등의 일을 해요. 


승연: 저는 대외사업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주로 외부에서 온 연락들을 체크하고, 자문 요청이나 섭외 요청,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 등을 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다른 활동가 분들이 도움 요청하시면 맡아서 하기도 해요. 


진서 : 상세하게 어떤 실무들을 하냐면...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나는 디자인 전공자도 아닌데 정신 차려 보면 포스터 만들고 있고. 모든 종류의 일을 총망라해서 하고 있고. (웃음) 내가 업무 분배를 잘 못해서인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주변을 보면 다 그러더라고요. 태어나서 해본 적 없던 일들을 유니브페미를 통해 많이 하게 됐습니다. 총여학생회 재건 운동을 기점으로 “나는 활동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아요. 나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동을 하면 좋겠다. 비록 돈은 못 벌지만. 상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별 고민 없이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어요.



-‘활동가’라는 게, 굉장히 고강도의 노동을 하고 많은 시간을 쏟음에도 사람들이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잖아요. “와, 너희는 나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멋있다~” 이렇게 반응하고. 실제로 최근에 유니브페미에서 <상근자 인력 기금 조성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노동하시는 시간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계시기 때문일 거고요. 특히 대학생의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경우, “너희는 대학 다니면서 취미처럼 하는 거지, 그걸 업으로 하는 건 아니지 않아?” 이런 사회의 시선이 있기도 한데요. 

진서: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대학에 들어온 이후 계속 활동을 했지만, 활동에 집중해서 이걸로 생계를 유지하자고 결정한 것은 최근의 일이거든요. 한 3~4년의 시간 동안 저 스스로도 이걸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들이 동아리나 대외활동하는 거랑 비슷하게 생각했고요. 그런데 또 고민이 생기는 거죠. “돈을 받기 전에 한 사회운동은 노동이 아닌가? 나는 이제야 노동을 시작한 사회운동가인가? 임금노동만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노동이라는 것을 돈이 대가로 주어지는 것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막 생겨요.


“대학교 때 하다 말 건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이런 인식, 활동을 가벼운 것으로 보는 건 당연히 기분이 나빠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사회운동을 어떤 류의 ‘노동’으로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저는 활동이라는 것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활동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저는 활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인데. 다른 활동가들이 그 상황에서 나는 당장 그런 상황은 아니니까, 필요한 사람이 돈을 받게 하는 체제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배려를 해 주고 저희 내부에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제가 임금을 받으며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일종의 ‘돌봄의 합의’인 거죠. 그런 점은 인식을 하고 있는데, 그럼 임금을 받지 않는 반상근자가 하고 있는 것은 노동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 또 아리송해지죠. 여전히 이런 고민들 속에 살고 있어요. 


-21세기의 대학에서 인권 의제, 성평등을 말하고 활동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잖아요. 활동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텐데, 특별히 요즘 고민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승연: 행사 열심히 준비하고, 보도자료도 일주일 전부터 열심히 뿌렸는데 사람들 많이 안 왔을 때. 그 허탈함… (웃음) 저는 활동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유인이나 인센티브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돌아오는 게 있어야 뿌듯함도 느낄 수 있는 거고. 사람들의 호응이 그런 인센티브 중 하나인데, 그런 게 잘 안 될 때 힘들죠. 우리가 열심히 준비를 안 한 건 아닌데…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그런 상황이 어려운 것 같아요. 


진서 : 일단 조직의 어려움. 단체를 이어갈 사람이 없다는 거죠. 대학이든 어디든 사회운동의 재생산이 어렵다는 건 고질적인 문제잖아요. 회사는 공고를 올려서 사람을 뽑으면 되는데, 사회운동 조직은 회사와 그 안에서 맺는 관계의 양상이 다르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저와 승연은 일을 같이 하는 동료임과 동시에 동지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복잡한 관계죠. 승연도 다른 사업위원회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일을 많이 하고, 저만큼 유니브페미에 마음을 쓸 거란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진서가 상근비를 받는 게 맞는 것 같아.”라고 말을 한다는 건, 사실 엄청나게 많은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관계들을 새로 맺는다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운동을 통해서 진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런 고민도 해요. 맨날 우리는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데. 바뀌고 있나? 잘 모르겠는데. (웃음) 요즘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제도권 정치를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해요. 180석의 민주당을 보고 있으면… 내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 의석 하나를 꿰차고 앉아서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닌데도.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는 한계가 있고, 변화도 더디잖아요. 그런데 제도권 정치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국회의원이나 국가 기관들이 그런 건 아니죠. 권인숙 의원, 장혜영 의원, 류호정 의원처럼 열심히 하시고 감수성 있는 분들을 보면 잠깐 숨통이 트이다가도, 아. 300명 중에서 괜찮은 사람들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라니. 이 몇 명 빼고는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듣는다니. 이런 생각에 또 숨이 막히고. (웃음)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너무 좁고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최근에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사회운동으로 시작해서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빠졌잖아요. 의사나 교수가 의원이 되는 것도, 다 자기 돈 벌려고 일 하다가 권위자가 돼서 출마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는 운동 한다면서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거냐,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교섭단체나 거대 정당 아니면 국회의원들 돈도 잘 못 벌던데요. 돈을 벌 거면 왜 의원을 해요, 회사 들어갔지. (웃음) 이 세상이 사회운동가들에게 바라는 건 너무 많고, 허용해주는 건 너무 적고. 이게 좀 모순적이지 않나? 이런 어려움들이 최근 저에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유니브페미가 창립된 지 이제 1년 여가 됐어요. 페미니즘 리부트, 총여 재건 등 페미니즘 관련하여 다양한 의제가 있었던 시기라, 매우 활발하게 활동해 오셨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업이나,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 있으실까요? 

진서 : 총여학생회 재건 운동이 정말 힘들었죠. ‘너희가 괜히 나대서 잘 있던 총여 없어진 거다’ 이런 평가도 많이 듣고… 너만큼 내가 열심히 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죄책감 섞인 친구들의 말을 듣기도 했고. 다양한 반응들을 많이 접했는데, 그중에서도 한 친구의 연락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저희 학교도 아니고, 예전에 알고 지내던, 총여 재건 운동과는 사실상 별로 관련이 없던 한 친구가 장문의 DM을 보내준 거예요. 다 감동적이었는데, “진서야, 너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였어.”라는 마지막 문장이 너무 확 와닿고 고마웠어요.


저는 사회운동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가진 여건, 상황, 기회, 조건이 다 모두 다르잖아요. 저희가 유니브페미라는 단체를 꾸리고, 사업을 하면 어느 정도 관심도 받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운과 기회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필이면 서로를 만나서, 잘 맞는 사람들과 밀도 높은 활동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저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해서 겁이 났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그 걱정을 해소해 준 것 같고, 용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승연: 유니브페미 처음 시작할 때, 고등학교 친구들한테 가입 권유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매 달 회비를 낸다는 게 사실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잖아요. 한 친구가 그래서 어려울 것 같다고 거절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회원관리 사이트에서 익숙한 이름을 봤어요. 그 친구가 맞더라고요. 저한테 얘기 안 하고 조용히 가입한 거죠. 너무 반가웠고 고마웠어요.


진서 : 제일 기억에 남는 사업은 <마녀행진>인데요. 올해 마녀행진을 진행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요. 작년에 처음 이 행사를 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여러 대학의 페미들을 모아 보고 싶어요!”라는 말에 기꺼이 나와줬다는 게. 저는 학생회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되게 경직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 숙대 총학생회에서도 공동주최를 해 주고. 저희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거죠. “총학이 이런 메갈 집회 공동주최를 한다고?” 이러면서. (웃음) 그 마녀행진에서 본 모든 광경이 유니브페미를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을 줬어요. 서로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확인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연대감을 느끼는. 그 광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승연 : 저도 역시나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업은 마녀행진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는 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집회나 행진으로 진행을 할 수 없어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을 했어요. 기자회견 치고 참석자도 많았고 기자분들도 많이 오셨어요. 


진서 : 사실상 신고 안 한 집회였죠. (웃음)


(2부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