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May 14. 2021

한국에서 이주여성 노동권 보이나요? (1편)

스물 다섯 번째 소란

결혼한 여성, 이주 여성에게도 일할 기회가 있어야 해요.


#25번째소란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통번역사 #이중언어코치 #다문화가정 #임금차별 #직장내괴롭힘


‘한국인 다 된 기특한 며느리’, 폭행과 학대에 의한 죽음 소식. 우리 사회가 ‘결혼이주여성’을 다루는 흔한 방식이다. 이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하고 평면적이지만,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결혼이주여성들을 향한 차별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다. 

‘이주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관심은 어떠한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은 쉽게 비극적인 ‘순간’으로 치환되어 소비된다. 많은 이주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쉽게 잊혀진다. 그들이 차별적 구조 안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어내기 위해 목소리 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25번째소란, #26번째소란 에서는 말과 글을 통해 이주민들의 국내 정착과 생활을 돕고 있는 세 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다. #25번째소란은 베트남 출신의 5년차 다문화센터 통번역사 김윤정(가명) 님과의 인터뷰이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김윤정이라고 합니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 통번역사로 5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 통번역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어요. 집이 지금 일하고 있는 다문화센터 근처에 있어요. 거기에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같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나게 됐어요. 친구들, 언니, 동생들을 많이 만나서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의사소통이 안 되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되게 많았거든요. 그런 분들을 만날 때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 분들보다 한국어를 조금 더 잘 했거든요. 그리고 멋있기도 하고, 일도 좋아서 5년정도 하게 됐어요.”


- 초반에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된 계기도 따로 있으실까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많이 무시를 하셨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한국어를 배워서 나중에 힘이 없어도 언어로 공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웠어요. 시어머니가 속담 같은 걸 많이 사용하셨는데 모르는 속담 있으면 바로 휴대폰으로 무슨 뜻인지 검색을 했거든요. 그런데 뜻을 알고 나서 엄청 화가 난 적이 있어요. 내가 이런 무시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지금보다도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했고 잘 한 것 같아요. 분노로 공부해서. (웃음) 

한국어 배울 때 도움이 됐던 건 음악 방송이랑 드라마예요. 음악 방송을 볼 때는 자막이 있는 게 되게 좋았어요. 노래 가사 자막을 통해 표현을 많이 배웠고, 드라마를 통해서는 욕을 많이 배웠어요. (웃음)”


-센터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통번역 업무를 주로 하고, 다양한 국적의 이주여성 자조모임도 담당했어요. 중점적으로 하는 건 상담 업무인데요. 부부상담이나 개인상담, 이혼상담 등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결혼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편견을 갖고 보는사람들이 많잖아요. 선생님께서는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그리고 노동자로 일하시면서 편견을 느끼신 게 있을까요? 

“센터에서 일하면서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걸 느꼈어요. 항상 이주여성이라면 의사소통도 잘 안 되고, 한국말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서 살 능력이 없다, 일을 못하고 기술이나 전문성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센터에 문의 전화가 올 때 제가 받으면 아무래도 억양이나 발음이 조금 다르니까 ‘됐어요, 그럼 한국 선생님 바꿔주세요.’ 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모든 분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씩 계세요. 그럴 때는 되게 속상하고 화가 나요. 처음에는 ‘한국 선생님 바꿔드릴게요.’ 하고 전화를 넘겼는데, 나중에는 전화를 잘 안 받게 됐어요. 아무래도 센터에 전화하시는 분들이 급한 상황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해는 돼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위축되고 주눅들게 되더라고요.”


-센터의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총 20분 정도의 선생님들이 계세요. 저는 통번역을 담당하고, 이중언어코치 선생님이 한 분 계시구요. 나머지는 다 한국 출신의 선생님들이세요.”


-다문화센터이다 보니 이주여성노동자 비중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네요. 센터 내에서의 차별도 없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일을 좋아해서, 즐겁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어요. 초반에는 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많은 업무를 담당해도 모든 선생님들 중에 월급이 제일 낮았어요. 신입 선생님이 들어와도 저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어요. 이 부분을 물어보니까 지침이 그렇다, 위에서 그렇게 정해주는 거라 센터에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답을 받았어요. 사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주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의사소통 관련 문제가 많이 발생해요. 그럴 때마다 통역 업무를 담당하는 저희가 다 해결하거든요. 저희가 없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운영이 안 되는 거잖아요. 이 부분을 인정을 해야 우리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인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이주여성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거네요. 

“맞아요. 임금 부분 이외에 또 차별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어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자격과 관련된 건데요. 2년마다 자격증을 갱신하라고 해요. 입사할 때 자격증이 필수 요건이라서 이미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요. 일을 하면서 연차가 쌓이고 한국어도 늘고, 이미 귀화도 했기 때문에 소통에는 문제가 없어요. 근무하면서 사이버대학도 다니고 지속적으로 공부도 해요. 이 부분은 무엇보다도 이용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거예요. 

물론 업무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시험도 저희 돈으로 쳐야 하고, 시험을 주말에 쳐야 하는데 아이들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요. 비용이나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한 배려나 지원이 전혀 없어요. 한국 직원들은 사회복지 자격증을 저희처럼 2년마다 갱신 안 해도 되고, 센터 예산으로 근무시간에 교육받고, 주말에 교육받으면 시간 외 근무로 다 인정을 해 주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걸 보장 안 해줘서 저희 비용으로 꼭 2년마다 갱신을 해야 해요. 통번역이나 이중언어코치 일 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요.”


-통번역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서 멋있기도 하고 이 일이 좋아서 계속하게 됐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일하면서 즐거웠거나 뿌듯했던 순간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 적은 많이 있었죠. 제가 여기에서 일하고 나서 저희 센터 이용률이 높아지고, 센터 선생님이랑 회원들이랑 관계가 엄청 좋아졌어요. 또 되게 뿌듯한 일은 어려운 분을 도와주고 나서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을 못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 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주기도 하세요. 제가 센터 근처에 살다 보니까 업무 시간 외에도 자주 마주치는데, 그럴 때마다 커피도 사 주시고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는 아이에게 장난감도 사 주시고.. 정중하게 거절하기는 하지만 되게 뿌듯해요.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들이 센터에 부탁할 일이 있는 게 아니더라도, 그냥 이야기할 게 있을 때도 저를 찾으셨어요. 다른 한국 선생님만 있을 때도 저를 찾으시고 제가 없다고 하면 그냥 가셨어요. 그래서 한국 선생님들이 ‘윤정 쌤 없다고 하면 바로 가는 분들이 많아요. 역시 윤정 쌤이 센터에 있어야 해요.’ 이런 말씀을 많 해 주셨어요. 또 프로그램 홍보할 때 제가 전화를 돌리니 베트남 결혼 이민자분들이 많이 참석해주셨어요. 그럴 때 되게 뿌듯해요. 이제 한국어 번역 지원하는 어플도 많이 생기고, SNS도 발달하면서 보편적으로 옛날보다는 이주여성분들의 의사소통 능력이 올라가고 있어요. 그래서 예전만큼 아주 많은 분들을 만나지는 못해서 아쉽기도 해요.”


-결혼이주여성 당사자들에게 단순 통번역을 넘어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전해 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일 있으실까요?

“일하면서 좋은 일도 많았고 어려운 일도 있었어요. 일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이 경험을 살려서 통번역보다 더 넓은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지금은 임신 중이라, 아이를 잘 낳고 나서 쉬는 동안 자격증 공부하고 능력을 더 개발하여 차별 받고 있는 분들을 많이 도와드리고 싶어요.”

작가의 이전글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왜 내가 선택할 수 없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