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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블리 Jun 28. 2021

달콤할 줄만 알았던 신혼의 맛

이게 무슨 신혼이냐고?


신혼이라 하면 흔히 '달달한 맛', '고소한 맛'을 떠올리지만 나의 신혼은 그렇지 못했다. 굳이 맛으로 표현하자면 다크 초콜릿 같은 맛이랄까. 달달한 듯하면서 씁쓸한 맛이 더 강해서 이걸 왜 먹나 싶지만 이상하게 손은 또 가는 그런 맛.


생각할수록, 살아볼수록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일은 휴일도 없이 바빴지만 벌이는 넉넉지 않았고 하루 중 대부분이 혼자인 나는 외로웠다. 외향적인 성향 덕분에 외로움이란 걸 느껴본 적 없이 살았는데 27살 새댁의 하루는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어떤 날은 12시간 넘도록 사람을 만나 말할 일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냥 사람이 그리웠다.


친구들 만나 수다라도 떨면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못난 자격지심에 잘 사는 척, 행복한 척하고 싶어서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남들 사는 모습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카카오스토리를 어느 날 지워버렸다. 주말 나들이, 친구들과 해외여행, 친구의 승진, 예쁜 얼굴, 선물 받은 명품 사진 따위가 그들의 일상이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처음엔 그런 그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이기도 했다가 부러움이 되었고 점점 나의 자존감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시댁 일로 감정이 부딪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다. 특히 시댁과의 문제에서는 더더욱 답을 찾지 못했고 '내가 왜 결혼은 해가지고!' 하는 후회로 마무리했다.


원목 식탁에 심플한 식기를 놓고 마주 앉아 소박하게 차린 저녁밥을 같이 먹는 그런 것. 일 마치고 들어온 남편을 반기고 도란도란 오늘 있었던 일 이야기도 나누 가까운 공원 슬슬 산책하는 그런 것. 부드러운 커플 잠옷을 입고 팔베개에 기대 잠드는 것.


그렇게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그런 신혼은 없었다. 휴일도 없이 밤 12시가 넘어야 기름 냄새 뒤집어쓴 남편이 들어왔고 씻고 몇 마디 하다 보면 금방 1~2시가 되어 잠을 청하기 바빴다. 하루 종일 같이 밥 먹을 사람을 기다렸던 나는 피곤한 남편을 붙들고 조잘거리다가 피곤해 보이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는 수다에 서운해서 이내 수다를 그만두었다.


설상가상, 코는 또 왜 이렇게 고는 건가!

그 무거운 다리는 왜 자꾸 나한테 올리는 건가!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느라 깊은 잠을 못 자는 임산부에게 남편의 코골이는 최악이었다. 슬쩍 화장실 가는 척 나왔다가 거실 소파에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 임신의 영향이었을까, 온통 불만족스러운 신혼의 영향이었을까. 뜨거운(19금) 신혼을 꿈꾸던 남편이 손을 내밀면 매번 거절했고 그때마다 서운함을 비치는 남편에게 더 날카롭게 받아쳤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내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 욕심만 차리려는 게 괘씸하고 얄미웠다.


말다툼의 마지막은 항상 '이게 무슨 결혼이냐, 이게 무슨 신혼이냐 됐다' 하는 거였다.

이게 무슨 신혼이냐고?


"그래! 말 한 번 잘했네요. 내가 생각하던 결혼도 이런 거 아니었어요.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뭐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요!"


그렇게 한번 다툼이 시작되면 며칠씩 냉전이었는데 크게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퉁명스럽게 대화하는 날이 길어졌다. 크게 싸우고 시원하게 풀어버리고 싶은 나와 싸움 자체가 싫다고 말을 아끼는 그였다. 이렇게 안 맞는 사람이랑 어떻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그때를 돌아보며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남편에게 그때의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무능한(명품 백도 못 사주고 좋은 차, 좋은 집도 없는) 남편을 원망한 적도 많았다고 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까'라며 자괴감이 들만큼 힘든 시간이었다고.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다는 이런 선택을 한 내가 원망스러워서 더 힘들었다고.


한참을 듣기만 하던 남편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결혼만 하면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튈 줄 알았어요. 아침저녁으로 사랑을 나눌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꿈꾸던 신혼은 달콤한 저녁시간이었던 것처럼 남편이 꿈꾼 신혼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만족 없는 신혼에 대해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표현을 못(안) 했을 뿐 그때의 그도 나만큼 불행했으리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가 원한 신혼은 각자 서로 달랐다는 것을.


혼자 벌어 충분히 여유 있게 살았는데 전세 대출 이자며 생활비, 경제 개념이 없는 나의 카드값까지 내느라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편찮으신 시어머니도 막내아들의 부재를 힘들어하셨으니 두 여자가 그에게 주는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꽤 컸을 것 같더라.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 와서 혼자 힘들어하는 내가 안쓰럽기만 하다가도 서운함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당장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게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그랬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갑자기 새댁이 된 나처럼 갑자기 가장이 된 그도 많이 힘들었으리라.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들었던 남편의 감정은 꽤 오랫동안 맴돌았다. 지금까지도....

그날 이후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거나 의견 충돌이 생길 때면 남편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한다. 입장 바꿔 생각하다 보면 이해 못할 일도 별로 없더라.


10년 전 우리, 꼬순내 나는 신혼의 맛은 제대로 못 느꼈지만 이대로 서로 이해하며 살아간다면 끈적한 중년의 맛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신혼은 어떤 맛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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