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마루 Nov 25. 2023

치열한 육아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멘탈을 잡아주는 성공적인 육아 마인드셋



우리 집 아이들은 10살, 8살, 5살, 3살 터울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양육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환경적 요소인 '층간소음'에 대한 걱정과 염려 말고는 육아전쟁 그 자체는 무사히 잘 치러나가는 중이다. 다음은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터득한 육아전쟁을 이기는 세 가지 마인드셋이다.





 첫째, 모든 아이들은 승자로 태어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면 비로소 한 생명으로 진화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씨앗으로 탈바꿈한다. 그 창조의 과정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한 마리의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이전 사출되는 정자는 수천만에서 1~2억 마리이지만 난관까지 도달하는 것은 아주 극소수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운 좋은 정자 하나만 난자와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은 3~4일 후에는 자궁 속으로 보내지며, 수정 후 5~7일째 자궁내막에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것을 일컫어 '착상'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나와 남편의 의지로 아이들을 갖고 키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의지보다 더 큰 의지는 정작 아이들 본인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의지보다 더 큰 것은 '세상에 태어나야겠다'는 각자의 의지였던 것이다. 1~2억에 달하는 무수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탁월한 퍼포먼스를 통해 난자와 결합한 정자는 이미 그 자체로 '승리한' 정자일 것이다. 결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착상의 과정, 긴 임신 기간, 큰 에너지가 요구되는 출산의 과정에서도 그 작은 씨앗 스스로의 의지가 절대적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네 명의 아이를 출산했다. 쌍둥이도 없이 네 번의 독립적인 출산의 과정을 거쳤다. 네 명의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가끔 출산의 기억이 떠오른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출산의 때에도 본인의 성격에 맞추어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야무지게 시간에 딱 맞춰 가벼운 몸으로 가뿐히 세상에 탄생한 첫째, 성격이 급해서 예정일보다 빨리 나오고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폭풍같이 자궁문을 뚫고 씩씩하게 탄생한 둘째, 느긋한 성격 탓에 몇 시간을 기다려도 자궁문을 못 찾고 길을 헤매던 개구쟁이 셋째, 적절한 때에 힘차게 자궁문을 두드려 스마트하게 세상길을 찾아낸 똑똑 박사 넷째까지... 출산의 과정은 절대 엄마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팀워크의 여정이다. 나의 의지만으로 안되고 아이의 의지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열 달간 자궁의 방 안에 있던 아이들이 용감하게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그 순간은 지금 돌이켜봐도 감격이고, 그 문을 자발적으로 열고 탄생한 것만으로 아이들은 이미 '승리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을 볼 때 무언가를 더 이루어야 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에 대한 의지와 경쟁자를 제치고 생명의 경주를 완주한 '승리자'로 보는 관점은 정말 중요하다.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게 한다. 아이를 어리석거나 못마땅하게 보지 않고 이미 대단한 성취를 이룬 자로 대하게 해 준다. 이 말이 '훈육'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아이들을 보는 부모의 시선을 말하는 것이다. 때때로 시선은 말과 행동보다도 훨씬 더 큰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부모의 시선을 통해 '넌 태어날 때부터 수천억분의 확률을 뚫고 이미 승리자로 태어났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한다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승리자의 셀프이미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좋은 부모는 매번 성공하는 부모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실패하는 부모여야 한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작품 중 하나인 <피에타>라는 작품은 엄마로서 발휘해야 하는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예수의 엄마인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미 알았다. 그러나 그가 그의 운명을 대담히 끌어안을 수 있도록 보내주었다. 그녀라고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을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 쉬웠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내 품 안에 안전히 아들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용기 있는 엄마는 말한다. "나와 함께 있으면 네 육신은 편안하겠지만 네 영혼은 약해질 거야. 가서 네 운명을 대담히 끌어안으렴" ​이라고 말이다.

몇몇 엄마들은 과보호의 오류를 범하며 자식들의 육신은 안전히 보호하지만 영혼을 쇠락하게 만들고 만다.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하는 것' 이것이 용감한 엄마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 중 하나인 것이다. 아이들을 너무 과보호하지 않고 딱 세상이 아이들을 대할 정도로만 대해주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진짜 세상에 준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 그것이 엄마의 임무 중 하나일 것이다.


 아이들이 맞닥들인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엄마의 품은 따뜻하고 한 없이 너그럽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세상을 잘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너무 완벽한 엄마보다는 아이를 세상에 준비시켜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패하는 엄마가 되도록 하자.




세 번째,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와 최고의 관계를 맺길 원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자녀는 부모와 항상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지금껏 당신이 살면서 만났던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말이다. 이 말은 당신은 그동안 그 누구와도 가지지 못한 최고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고, 바로 그 기회를 당신의 자녀들은 우리에게 제공한다. 당신이 지금껏 배신당하고, 속고, 상처받고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들은 당신에게 다가와 '아빠, 우리 무엇을 같이 할까요?'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때 당신의 반응이 씁쓸하다면 그들은 그런 냉담한 반응으로 인해 상처받을 것이다.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며, 누구에게도 덕이 되지 않는다.


 부모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특혜란 다름 아닌 지금껏 살면서 그 누구와도 가지지 못한 최고의 관계를 빚어나갈 수 있는 그 자체로 환히 빛나는 고귀한 가능성이지 않을까? 물론 이 기회를 어떻게 가꾸어나가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가장 가까운 관계가 삶의 질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그리고 다른 모든 관계의 기반이 되는 관계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관계인데, 그 누구와도 갖지 못한 최고로 친밀한(intimate) 관계를 자녀들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무료로 주어진 선물과도 같다. 아이들 자체가 우리에게 값 없이 '주어진 (freely given)' 존재이고 그래서 선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 관계마저 망친다면 아마 제대로 건설해 나갈 수 있는 관계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관계를 쌓는 목적과 의미도 그와 더불어 함께 소멸되지 않을까?



이러한 훌륭한 기회를 무시한 채 무관심한 부모의 말과 태도로 인해서 상처받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다른 누구에게서도 아닌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삶의 온기를 준 바로 그 당사자들에게 상처받는 어리고 여린 마음이란 과연 어떨까. 심리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그런 방치된 아이들을 떠올리면 그들의 고독감과 외로움에 이입이 되어 가슴이 쓰라린다.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을 용서한다는 말도 떠오른다. 어른들은 약속을 쉽게 남발하고 어기지만 아이들은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의 무의식에 존재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몸속 깊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은 부모의 삶에 실체를 부여한다. 자식들은 그 자체로 부모의 실체 일부로 자리 잡는다. 부모에게 순종하거나 부모의 목표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자식들은 부모의 몸속 장기가 된다. 부모는 자식의 무의식에 존재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몸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식과의 유대에는 가장 깊은 사랑이 반드시 포함되고 때로는 괴로움이나 분노나 아픔이 포함되지만, 그 유대는 감정 수준에만 있지는 않다. 가령 "나는 내 손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거나 정확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철학자 노버트 로직의 말이다) 자녀의 삶은 그 자체로 부모에게 영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그 어느 것보다 소중히 돌보고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해서도 좋다.






느끼지 말고 생각하라. '느끼는' 자들에게는 인생이 비극이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인생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육아를 할 때에도 상황에 직면해 감정적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멀찍이 떨어져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보는 것, 정말 중요하다. 화가 나고 속상하고 여러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를 날마다 겪게 되는 것이 육아의 민낯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여력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가 비록 저 모양 저 꼴로 보이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이미 '승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자꾸 상기시키는 것, 그래서 아이 또한 그 암묵적 시선을 통해 승자로써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 너무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세상이 아이들을 대할 정도로만 대하는 것,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와 최고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 그 속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정말 중요한 육아의 열쇠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기 전에 우리에게 가르친다." - 모리스 케어

매거진의 이전글 우영우의 아빠를 통해 배우는 올바른 부모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