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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Dec 03. 2020

9. 호캉스는 사치일까

당신이 열심히 사는 덕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남편은 2월부터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부업(?)으로 대학 강의를 했는데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촘촘하게 한 땀 한 땀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털실이 막 엉켜버린 상황이랄까. 그래도 그는 특유의 침착함으로 그럭저럭 잘 적응하며 엉킨 실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침습이 장기화되면서 개인의 노력과 희망과는 상반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섬의 오고 가는 문이 닫히게 되면서 괌 거리는 활기를 잃었고, 그에 따라 회사도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다. 괌 대학도 2020년 가을 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개강했고, 내년도 온라인으로 수업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런 학교의 계획에 따라 풀타임 교수가 아닌 파트타임 강사들은 잠시 강의를 쉬어야 했다.


남편은 괌으로 오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 사실 그의 삶은 "포기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인생에서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는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해서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하고 집에서 가까운 주립대를 선택했다. 대학원도 (꿈의 학교에 합격했지만) 장학금을 주는 쪽을 택했다. 꿈에 그리던 뉴욕 월가의 직장에 들어갔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고, 여자 친구(나)에게 조심스레 미국에서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좋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고 함께 가자 이야기를 꺼냈지만 여자 친구는 한국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항상 "더 안전하고" "실패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구할 때도 본인이 가고 싶은 곳보단 본인을 좀 더 적극적으로 원하는 곳을 선택했고, 괌에 직장을 구할 땐 직급과 연봉과 복지, 모든 혜택을 포기한 채 그저 "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자리를 찾아왔다. 그가 지나온 많은 "선택의 이유"엔 대부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는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정착한 괌에선 느리더라도, 조금 뒤처지더라도 "누구누구" 때문에 차선책을 선택하게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이름을 가진 먼지보다 작은 그 녀석이 요즘 그를 자꾸만 포기하게 만드는 것 같다.


사귀면서부터 지금까지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근래에 남편은 풀이 죽은 어린아이 같았다. 의욕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은 순간에도 이 길이 닫히면 다른 길이 열리겠지 않겠냐던 그. 그의 얼굴이 지쳐 보였다.






그래서 떠났다.

호캉스!!!


괌에 살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언제든지 멋진 호캉스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분이면 도착하는 호텔에서 그림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노라면 '돈을 버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싶다 말하던 남편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당신이 열심히 일해주어 우리가 이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고. 우리가 비록 바다가 보이는 비싼 콘도에는 살 수 없을지언정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바닷소리 들으며 잠들고 초록 바다 눈에 품으며 일어날 수 있다고. 그건 모두 다 당신이 많이 포기해준 덕분이라고. 그렇게 전하고 싶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호텔에서의 하룻밤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의 웃음과 따봉이 그의 어깨를 펴게 하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 너무 집에 갇혀 지냈나 봐. :-(


호캉스의 꽃은 조식


우리는 대부분 일상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잘 때, 일하는 이유가 더 와 닿기도 한다. 우리 모두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차박이든, 호캉스이든, 캠핑이든 중요치 않다. 집이 10분 거리인데 하룻밤에 200불을 쓰다니. 나도 사치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도 가끔은 물세, 전기세, 차 할부금, 학비처럼 보이지 않는 소비 말고. #나돈쓰는중 #팍팍쓰는중 마구마구 느낄 수 있는, 보이는 소비도 필요한 것 같다.

누가 만든 건지.

"호캉스"란 단어. 참 고맙다. 오늘 우리가 한 여행을 정의할 수 있게 해 줘서.


듣기 좋았다. 그의 웃음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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