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향 Sep 11. 2020

바다가 되어.




손바닥에 잠시 담겼다가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물을 보며 그 사람은 모래 같다고 생각을 했다. 모래사장에 발을 디디면 발가락 사이로 퍼지는 모래처럼, 손으로 쥐는 대로 다 흘러 흩어져 버리는 모래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손에는 닿지만, 잡을 수는 없는 그 사람의 모습이 꼭 곱디고운 모래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수 만 가지의 정답이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선택한 답만 오답처럼 느껴졌다. 주머니에 동전은 점점 없어져 가는데 계속 꽝만 나오는 뽑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초조해졌다. 반신욕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참을 수 없이 슬퍼져 몸을 반으로 접어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무릎에 닿은 눈가가 뜨거웠고 볼에 닿아오는 축축한 머리카락이 찝찝하고 답답했다. 넓은 욕조에서 자세를 이렇게 하니 더 혼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욕조에 물은 분명 따뜻한데 어깻죽지가 너무 춥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은 서로 같을 수가 없을까. 왜 한쪽이 인내하고 아파야만 될까. 그 사람과 내 마음의 크기만 생각하면 참 서러워져서 목구멍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너는 나에게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질 사람일까?’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결국 물에 젖어 주글주글하게 주름이 생긴 손가락으로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그가 나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 없었던 일로 되어버릴 것 같은 이상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끝끝내 통화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누를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그가 여보세요- 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뜸 ’ 있잖아요, 나는 바다가 되고 싶어요.’라는 두서없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의 농도 차이가 너무 짙었기 때문에 바다가 되고 싶다는 말은 정말로 참아야 했다. 내 마음의 확신보다 그의 대답이 더 두려웠기에 겁이 많은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곱디고운 모래 같은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나는 바다가 되고 싶다고, 모래가 머물고 있는 바다 자체가 되고 싶다고. 바다와 모래는 그 자리에 여전히 함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니, 나는 느린 파도가 되어 그 사람을 오래도록 만지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