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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향 Sep 11. 2020

광화문 연가






밤 열 시쯤 나는 시청역에서 너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러 광화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볼에 닿은 찬 기운에 문득 이수영이 부른 광화문 연가가 생각이 났다. 나는 이수영을 좋아해서 중학생 때 노래방에만 가면 이수영의 노래를 그렇게 불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여섯 살이 뭘 알고나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십수 년이 지난 오늘, 왜인지는 모르지만 광화문 연가는 내 볼에 닿은 차가워진 공기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간절히 듣고 싶어 져서 바로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역시 중학생 때 듣고 불렀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구나. 쓸쓸한 목소리는 여전히 좋았다.  —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내 입술은 광화문 연가를 잊고 산 세월이 무색하게 곧 잘 따라 부르고 있었고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서 기분도 썩 좋았지만, 아프게 찔려오는 쓸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와  처음 만난 광화문역 출구를 지나면서 생각했다. 우린 마주 보기가 어색하고 겁이 났다. 아직 겉옷을 입지 않았던 날에 여기서 처음 너를 만났었다. 지금은 낙엽이 떨어지고, 코트를 입어도 꽤 쌀쌀해졌고, 또 그때 허전했던 청계천 광장도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곤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꾸며져 있다. 퇴근 후 그 조명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삼삼오오의 무리들도 행복해 보였다. 여기 나는 혼자 서서 너를 생각해본다. 너는 어디쯤에 있을까? 볼에 닿았던 찬 바람이 마음에도 스몄다. 그래서 아팠구나. 널 기억하면서 들을 노래가 하나 더 생긴 소중한 밤이다. 너랑 참 잘 어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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