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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Nov 05. 2020

제목이 꼭 있어야 하나요?

산티아고 순례길 : 파리에서 생장까지



8th Sep, 2016 

Day 1

장소: 인천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파리에서 떼제베를 타고 생장까지 향하는 야간열차 안





  옅은 코감기에 걸린 덕에 입술이 갈라진다. 생리가 다가올수록 몸이 고되다. 아침에 비행기에 오를 때가 마치 일주일은 지난 듯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반팔에 레깅스를 입고 있지만 한국에 돌아갈 때는 긴바지에 점퍼를 입고 있겠지. 날씨가 추워질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학원 일을 마무리하고도 쉬지 않고 움직인 덕분인지 몸이 쉬기를 원하나 보다. 그래도 열은 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파리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2016년 9월 8일,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1년 휴학을 결심했고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자들과 데이트를 꾸준히 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작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점점 커져 20명의 스태프와 함께 모교의 등불 축제를 담당하기도 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보컬 수업을 수강했다. 노래를 '옳게' 부르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이 비행기에 오르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언어교환 모임에서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다. 하지만 습관은 아주 무서운 것이어서 꾸준히 글을 쓰지 않은지 1년이 되어가는 나에게 '기록'하는 일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좋은 구절과 아이디어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도 그것을 붙잡아두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왜 이토록 남기기에 몰두하려는 걸까? 왜 기운이 없을까? 난 왜 이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까? 왜 걱정부터 앞서는 걸까? 무엇을 찾고 싶은 걸까? 질문들은 무수히 많고 답은, 전혀, 애석하게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짧은 빠-히 여행을 마치고 생장에 도착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바를 돌아다니며 재즈를 듣고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샤쾨레 성당과 샹젤리제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생리가 시작되었다. 애꿎은 레깅스만 두 번 빨게 생겼다. 자궁아, 눈치 좀 챙기자. 


  그 어느 때보다 고되고 힘든 여정이 될 것이 분명한데, 그에 비해 나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파리에서 바욘으로 오는 열차에서는 급기야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다. 개인적으로 여행 중 맞이할 수 있는 재난경보 3단계인 '집에 가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과일을 조금 집어먹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치커덕- 치커덕- 철도를 따라 물통에 담긴 물이 찰랑거린다. 위칸 침대에서 뒤척이던 아저씨가 잠에 들었는지 쉑쉑하고 숨소리만 난다. 야간열차는 춥고 흔들린다.






덧 글 

+제목을 떠올리려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았다. 어울리는 제목이 뭘까? '질문과 답'?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음... 담백하게 가자. '산티아고 순례기'.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이렇다 할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끓어오르지 않는 감성을 쥐어짜 제목에 글자를 붙여 넣고 싶지 않았다.


  모든 여행이 시작의 이유를 갖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를 하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왜 이 길을 걸으려고 하는가', 바로 시작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놓쳐버린 순간의 기쁨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에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아름다운 로맨스, 뜻깊은 교훈, 이어지는 질문과 답 등등) '그냥' 쓰고 옮겨보려고 한다. 용기 있는 고졸의 휴학생이 될 수도 있고, 순례보다 불타는 로맨스에 빠진 철없는 소녀도 있고, 인종차별에 울컥하는 한국인도 있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은 ...'제목이 꼭 있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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