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2
날짜 적지 않음
기억하는 건 그저 600명이 함께 잠든 대성당 숙소와 피례녜 산맥뿐...
까미노는 낭만적이지 않다.
적어도 내 상상 속의 까미노를 걷는다는 건 서로가 반가운 목소리로 '올라 Hola!' 하고 인사하기 바쁜 곳이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아.. 안녕'에 성공하더라도 그 이상의 교류는 없다.
순례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오늘 새벽, 5시 반쯤 잠에서 깨어났다. 다들 일어나 분주히 뭔가를 하고 있어서 나 역시도 바쁜 기분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챙기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을 먹으니 벌써 7시가 넘었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오는 기차 옆자리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를 시작으로 첫 알베르게를 찾기까지 큰 도움을 주신 빼드로 할아버지는 샌드위치를 후다닥 해치우시고 동이 트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어제 사온 바게트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한 언니가 가방에서 과도를 꺼냈다. 세상에, 빨간색 플라스틱 손잡이에 물이 빠지게 구멍 뚫린 칼집이 있는 걸 보니 저 사람은 한국인이 분명하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하니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쳐다본다.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이 먼 곳에 과도를 가지고 와서 눈 뜨기도 전에 사과를 깎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서로 소리 죽여 웃으며 언니가 건네 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병원에서 홍보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유경 언니는 생각보다 걸음이 빨랐다. 배낭이 13킬로. 혹시 몰라 라면과 햇반을 챙겨 왔다는 언니가 방금 피로회복제 2알을 주고 갔다. 내일 만나게 된다면 같이 저녁을 먹자며 혹시 몰라 파스도 들고 왔다고 내 머리맡에 두고 방금 자기 침대로 떠났다. 다정한 사람들. 빼드로 아저씨와 유경 언니까지. 까미노를 걷기 시작한 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실 한국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예산이 많이 모이지 않아 걱정했는데, 막상 떠나보니 별 문제가 아니다. 감사한 일이다.
입학시험을 치르듯 넘는 피례녜 산맥은 무척이나 고되었다.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는 이유가 있다. 8시간이 넘는 산행에 내가 챙긴 것이라고는 고작 포도 한 송이와 요구르트가 전부였다. 오리존 Orison 까지는 발에 바셀린을 바르고 커피를 마실 여유까지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점퍼에 바람막이까지 껴입었지만 바람은 살 속을 파고들었다. 들판을 걷는 말과 당나귀 그리고 소들이 뿌려놓은 똥에 심취해 있는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바지가 젖어버렸다. 우의를 입어야 해! 판초 우의를 입어야 해!!! 비는 거세지고 휘몰아치는 바람 덕에 양 볼은 벌겋게 부풀어올랐다. 우비는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길이 없어 깃발처럼 들고 앉아있었다.
우비를 입고 난 후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비를 겨우 꺼내 입었더니 망할 바람은 잠잠해졌고 울고 싶어 질 때쯤 조그만 탁자를 펴놓고 각종 차와 삶은 계란을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핫초코와 삶은 계란을 사 먹었지만 여전히 배가 고팠다. 정상에 올라 먹으려고 꺼낸 요구르트는 곧 터져버릴 듯 팽팽하게 부풀어있었다. 포도는 알이 으깨져 숙성이 되었는지 시큼한 와인 냄새가 났다. 결국 8시간 만에 도착해 첫 순례자 도장을 받았다.
카미노는 낭만의 길이 아니었다. 사실, 누구도 낭만적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덧 글
일과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걷는 동안 '생각'이란 걸 하고 싶어도 몸이 고되고 다리와 발에 온 신경이 집중하기 때문에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같은 '낭만적'인 질문은 사치다. 대신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면... '이 긴 지루함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