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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Nov 26. 2020

두 번째 까미노 패밀리

산티아고 순례기 : Day 14

Day 14





  갈까 혹은 가지 말까 망설여질 때는 가는 것이 맞다. 나는 지금 원래 묵기로 한 곳에서 3km 떨어진 알 따푸에라 Altapuera라는 작은 마을에 와있다. 첼시와 돈을 모아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야무지게 만들어먹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계란도 삶아두었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촉촉이 안개처럼 내리더니 오후 2시나 돼서야 해가 쨍-하고 떴다. 젖은 흙길이 폭신폭신했다. 내일 15km만 가면 드디어 부르고스 Burgos다! 






와인을 마시며 일기를 쓰고 있는 첼시









비둘기가 많아 신경이 곤두섰지만 맛은 최고였던 햄지츠참치 샌드위치




















  첼시는 명랑한 친구다. 나보다 한 살 많고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스페인에서 2년 동안 영어 선생님으로 일한 경험 덕분에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고됬다고 했지만 그래도 유럽에 살아보고 싶어 무작정 스페인으로 왔다고 한다. 햄버거 가게에서 감자튀김을 앞에 두고 '왜 나를 사랑하지 않냐'며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부터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는 함께 오전 내내 걷다가 점심으로 먹을 바게트와 참치 통조림 그리고 햄을 사서 공원 벤치로 갔다. 늘 재료가 남는 것도 아깝고, 남은 것들을 짊어지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항상 만들어진 것을 사 먹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직접 만들어 먹었다.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그 안에 버터를 바르고 얇게 잘린 햄과 치즈 그리고 참치를 넣어 먹는다. 한국에서는 바게트가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무엇이 맛있고 촉촉하고 고소한 바게트인지 배워가고 있다. 



  8유로를 주고 묵었던 숙소에서 개인 침대를 쓰고 저녁도 거하게 차려먹은 덕분에 몸과 마음이 모두 느긋해졌다. 저녁 10시가 조금 못되어 잠이 들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8시 30분이 넘어서 길을 다시 떠났다. 가는 길에 브라질에서 온 라파엘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온 델모를 만나게 되었다. 델모는 이전에 나헤라에서 함께 잠깐 걸었는데 워낙 조용하고 말이 없어서 종교적인 이유가 있나,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걸으면 항상 일찍 일어난다. 이틀 연속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 걸었다. 어제는 와인에 취해 '너희들 갈 때 꼭 깨워줘!' 하고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평소 같으면 자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 걸으니 색다르다. 채 지지 못한 달빛 아래 성당이 아름답게 빛난다. 








+덧 글


  길을 걸으며 가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와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 생각해본다. 국문학도 새내기가 되던 2012년, 일기장에 이렇게 끄적였다. '되고자 하는 이상과 놓인 현실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간극을 좁히고 또 좁히려 움직이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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