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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타임조아나 Nov 27. 2020

울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기 : Day 16 

Day 16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의 중반쯤 왔을까. 델모와 함께 걷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너의 첫 연애는 어땠어?'



  델모는 포르투갈에서 온 29살의 청년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는 늘 스페인어나 영어로 단어를 이어 붙이듯 대화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모와 이야기하는 것은 즐겁다. 일단 서로의 공통 언어가 없어서 손짓 발짓 그리고 몇 개의 단어로 간신히 이어나가는 대화가 신선했다. 또 이야기할 때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깊고 조용한 델모의 눈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마치 대화를 오래 나눈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런 그가 신이 나서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명확히 말했다. 



' Present, No past, No future 현재, 노 과거, 노 미래'



  그는 이미 지나간 일이나 다가올 일 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 그게 어디 마음처럼 쉽나... 만약 우리가 같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더 빨리 걸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그래... 만약 네가 나와 걷고 싶지 않다면, 먼저 갈게' 하고 중얼거리다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그가 왜 나와 함께 걷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을까? 나는 늘 상대방이 할지도 모르는 생각을 짐작한 다음 혼자 머쓱해하거나 화를 내고는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 왜 그렇게 심통이 났는지 혹은 눈물을 쏟아냈는지 모르겠지만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아내느라 혼쭐이 났다. 때마침 쉬는 곳에 분수대가 있어 급하게 얼굴을 씻었다. 그렇게 울음의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굉장히 오랜만에 '혹시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고 자문했다.  


   




  


  어린 날의 나는 왜 이렇게 심각했던 걸까? 물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에너지들을 어떻게 오로지 글쓰기와 독서로만 표출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의문이 든다. 저 사람은 날 좋아할까? 이런 단어를 사용하면 버릇없어 보이겠지? 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 끊임없이 살을 파먹는 질문을 이어가며 그것이 곧 나에 대한 탐구라고 자부했다. 사실 아니었는데. 


  델모의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진 건 언제 써버린지 모르게 얼굴에 얹혀있던 가면의 무게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했는지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팀 -앞서 발행한 Day 5 를 읽는다면 누구인지 알 수 있다-이 잘 잤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응, 나 괜찮아! Yes, I am good!'을 연발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패트리가 '넌 어떻게 매일매일이 so good 이냐?' 하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맞다. 사실 까미노를 시작하고 일주일은 샤워를 하는 것도 힘겨웠다. 두 다리는 물론이고 온몸이 부서질 듯이 아팠다. 맨소래담을 온 몸에 덕지덕지 바르다가 춥고 시려서 밤새 자지 못하고 뒤척였던 적도 있었다. 인생의 깊은 깨달음은 개뿔, 옷이 제대로 마를까 고민하거나 내일 저녁은 뭘 해 먹지? 하는 간단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런데도 I am GOOD 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태껏 스스로가 이만큼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다. 이 여정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싶지 않지만 순례를 시작한 지 2주가 되어가는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소리 내어 웃고 싶으면 크게 웃고 걷고 싶으면 계속 걷는다. 모르는 사람에게 불쑥 말을 걸거나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꽤 마음에 든다. 항상 되고 싶었던 환상의 '무언가'가 된 듯한 기분이다. 부족함은 항상 곁에 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빌미로 삼아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 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수많은 선택을 하는 일'의 다른 말이다. 우선 대한민국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생장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얼마나 걸을 것인가, 혼자 걸을 것인가, 동행과 함께 할 것인가, 아침으로는 무엇을 먹을까, 여기서 쉬어갈 것인가, 계속 걸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빼 드로 아저씨를 시작으로 유경 언니와 떨어져 첫 번째 까미노 패밀리를 만나게 되었던 순간까지 이틀을 제외하고 모두 일행이 있었다. 첫 번째 까미노 패밀리와 떨어져 혼자 걸어야겠다고 느낀 순간에 마리아와 첼시를 만나게 되었고 곧 라파엘과 델모를 만나 두 번째 까미노 패밀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순간은 찾아온다. 아, 이제 다시 혼자가 될 순간이구나. 함께 걸으면 끈끈한 동지애가 생기고 나의 숨겨진 명랑함도 발견할 수 있지만 일정을 계획하고 현지 정보를 찾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 두 번째 까미노 패밀리와 헤어지는 것은 아쉽다.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은 것이다. 



  인생도 역시 '선택'의 문제다. 그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실천하며 살 수 있는가의 문제다. 어제 라면을 나눠 먹고 맥주 두 캔을 비우며 많은 대화를 나눈 한 방송작가 언니는 여행을 하면서 '행복'하기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인생이든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없다. 내가 고루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삶도 나름의 고유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 길 위의 모든 선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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