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불안이 있다
내 감기는 대체로 목감기로 시작해서 코감기로 끝난다. 목이 칼칼하다 싶을 때 요란을 떨면서 조치를 취하면 운 좋게 감기가 그냥 지나갈 때도 있다. 감기에 자주 걸리는 건 아니지만 한 번 걸리면 유난스럽게 걸린다. 몸살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골골 대다가 한밤중에 자다 깨면 참 괴롭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침을 제대로 삼킬 수 없을 지경으로 목이 부어서 참 못 드는 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감기만 나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불안증을 앓았던 내 마음도 그랬다. 발표 일정이 잡히고 난 후 초조하고 불편한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잠을 설칠 때, 내 순서의 발표가 시작되기 전에 극도의 긴장감에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통증까지 느껴질 때. 이 증상만 사라지면 세상 무엇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을 듯했다.
감기만 나으면 온 지구를 다 가질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은 감기 증상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이 마음이 떠오르는 건 감기에 다시 걸리고 나서다. 불안증도 마찬가지였다. 발표가 불안증의 원인이었던 나의 경우, 발표 자리가 정해지면 온갖 형태의 불안 증상을 겪으며 '이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인생이 행복할 거 같아' 싶지만 발표 자리가 지나가면 이 생각도 접어 넣는다. 들여다보기가 힘들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갖다 댔다. 이번에도 또 긴장하고 떨었다는 자책감과 피로감이 뒤엉켜 마냥 쉬고만 싶었다. 그러고는 이 상황이 반복됐다. 10년이 넘도록.
감기는 목이 아프다 싶으면 뭐라도 할 수 있지만 불안증은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온몸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걸 감당하고 자존심과 자신감이 쭈글쭈글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안증은 개선의 의지를 고약하게 꺾어버리며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뭐라도 해 봐야지.'라고 마음먹는 것까지가 매우 오래 걸린다.
10년 넘도록 전혀 아무 시도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시도를 하고 꺾이고를 반복했다. 돌이켜 보니, 시도의 의지를 10 정도 끌어올리면 꺾이고 떨어질 때 9.5나 9.7쯤까지 가라앉는 게 아닌가 싶다. 끌어올린 만큼 떨어지는 게 아니라 조금 덜 떨어져서 시도가 반복될수록 미세하게 의지의 그래프가 우상향 되는 듯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 자존감 회복을 위한 테라피, 불안증을 극복하는 팁,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법 등을 책, 영상, 특강의 형태로 가까이 뒀다. 그러던 어느 날 의지의 그래프가 특정 임계점에 닿는 순간, 결심을 하게 되었다.
"도저히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
불안에 대해서 '파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불안증이 뭔지,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불안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사로잡혀 있는지에 대해서. 맙소사. 불안은 신세계였다. 파도 파도 새로운 게 또 나온다. 뇌세포를 분자 단위로 잘게 쪼개 보면 호기심이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새겨져 있을 듯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늘 궁금한 게 많은 내게 불안은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다.
제대로 마음먹고 '불안'에 대해 '파보기'로 결심했다.
몇 년 후, 나는 불안증에서 벗어났다. 많은 시간과 비용, 에너지, 다양한 종류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탈출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발표 불안'이 나의 주요 관심사이긴 했다. 그런데 발표 불안에 대해 파다 보니 발표는 불안증을 유발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 불안증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살펴보게 되면서 '편안한 마음'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불안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불안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어떤 사람은 불안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왜 그럴까? '의학적 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불안증을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도의 불안 상태가 아니라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나처럼 병적인 정도와 정상적인 정도 사이의 경계 어딘가에 불안증이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상태라면, 시도해 볼 만한 여러 방법들이 있다.
예를 가볍게 하나 들어보자면. 불안증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글로 쓰면 내 불안이 보인다.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고 '아, 나는 긴장감을 이렇게 느끼는구나. 나는 불안할 때 이런 기분이구나'를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불안증과 나 사이에는 무대와 관객석 같은 간격이 조금 생긴다. 그러면 불안에 푹 빠져 있던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다.
불안을 파보는 글을 조금씩 써 볼 생각이다.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쓴 지 2년이 넘었다. 오랜만에 브런치 글 쓰기 메뉴를 클릭하니 기분이 새롭다. 브런치는 참 독특한 공간이다. 글 읽고 자신의 생각을 이메일로 공유해 주시는 분들, 새로운 글 궁금하다고 안부 연락 주시 분들이 있는 따뜻한 플랫폼이다. 지난번처럼 토해내듯 뱉어내듯 마구 글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일상의 비는 시간에 찬찬히 써 볼 예정이다.
"불안을 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