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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Mar 02. 2023

정답 없는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4: 꿈이야 어떻든 해몽은 내 마음이야

곤지암 쪽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수 고속도로와 양재 IC 갈림길에서 실수로 여수 고속도로를 타버렸다. 네비를 보니 11km 가야 과천 방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서울 진입 방향이 틀어져서인지 도착 예정 시간이 20분 휙 늘어났다. 20분이라니. 황당했다.


(출처: pixabay)


"원래 길로 갔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였나 봐.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서 이리로 안내했음이 틀림없어."


아무리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도 이게 뭐냐고 툴툴대고 있던 나에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밑도 끝도 없이 하늘의 뜻이라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냥 단순한 내 실수였다. 친구는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불평 대신 비물질 세계의 뜻이라며 너스레를 떨어준 친구 덕분에 마음이 풀렸다.


모태 불교인 친구는 난처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종종 부처님의 뜻이고 하늘의 뜻이라 치부하며 불편한 마음을 금방 털어내곤 한다. 친구는 가끔, 온갖 불교 교리를 내세워서는 이게 왜 부처님의 뜻인지 열심히 설명을 할 때가 있다. 사실, 알 수 없다. 누군들 알겠느뇨. 증명할 길이 없다.


답이 없을 때, 누구도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을 때, 무조건 유리하게 해석해 버리는 친구의 사고방식. 배울만 하다. 이 '유리하게 해석하기'는 발표 불안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꽤 유용하다.




여러 명의 타인 앞에서 말하는 게 아주 불편한 상태가 되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다. 내 관심사가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청중’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발표를 하다가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거나 발표를 하려고 단상에 섰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관심해 보이고 지루해 보이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더 긴장이 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럴 때 유용한 팁이 있다. 


무조건 나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해석하는 거다.


내 발표를 듣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감정을 담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예민해져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은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보는 걸까?’, ‘내가 말실수를 했나?’, ‘내가 얘기한 어느 부분이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내가 하는 말을 멈추고 단상 아래로 내려가 그 사람에게 “혹시 저한테 뭐 기분 나쁜 거 있으세요?”라고 물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이유도 없고 하지도 않을 거다. 그렇다면 화자인 나는 그 사람이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건지,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지 또는 실제로 그렇게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나만 공연히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알 수 없다. 진실을 알 수 없을 때는 유리하게 해석해도 무방하다.


(출처: shutterstock)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못 가서 화가 났나 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어디가 아픈가?’

‘기분 나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나 봐’


뭐든 좋다. 그게 무엇이든 나와 상관없는, 내 발표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불안증은 부정적인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졌을 때는 주변 해석이 공연히 나와 연결되고 무엇이든 내 탓인 것만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의문을 품을 여지도 없이 자연스럽게 기계적으로 계속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럴 때는 그냥 ‘내 마음대로 유리하게 해석하기’를 시전해 보는 거다. 어차피 꿈이야 어떻든 해몽은 내가 하는 건데 그 꿈을 확인해 줄 사람도 없고 진실이 중요하지도 않다. 해몽은 내 자유다. 그 때문에 순전히 내게 유리한 대로 해석할 수 있고 또 때론 아름답게 각색도 가능하다. 진실을 알 수도 없는 일을 구태여 비관적으로 생각해서 나를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


발표하다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나 부정적인 반응이 보인다 싶을 때 ‘나는 지금 무조건 내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를 떠올리며 내 마음 편한 쪽으로 해석하고 그냥 넘기자. 어차피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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