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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Mar 06. 2023

감정 내보내기 연습

#5: 나를 붙들고 있는 부정적이고 아픈 감정들

10년 넘은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있다.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척척 잘 만들어 주는 금손이다.  하루는 실수로 미용실에 지갑을 두고 왔는데 다음날 오전 일찍 지갑 속 신분증이 꼭 필요한 일이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전화를 드렸고, 미용실 문을 닫은 지 한참 되었는데도 원장님은 한걸음에 달려와 지갑을 찾아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싶었는데,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의 카페가 문을 닫은 뒤였다. 몇 분 걷다가 불이 켜져 있는 카페 한 곳을 찾아서 주문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쪽은 내가 잘 안 오는 곳인데.”

“왜요?”

“나한테 상처 준 나쁜 놈이 있는 곳이라 나는 이 부근으로 잘 안 와요.”


6년 전에 그가 가장 아끼던 직원이 알짜 손님을 모두 이끌고 바로 근처에 미용실을 오픈했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아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다들 그만 용서하라는데 나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더라고요. 아직도 그 친구 소식을 듣거나 이 근처를 지나가면 화가 나서 진정이 잘 안 돼요. 내가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고 잘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래.”


그는 그동안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세히 들려주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을 때의 상처는 크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아프면 더 슬프다. 아픈 기억은 쓰라리기 때문에 그 감정과 기억을 더 꼭 쥐게 되는 게 아닐까? 부정적인 감정을 뿌리 뽑아 벗어던져 버리는 편이 훨씬 낫지만 ‘그럴 수 없어’라고 생각해 감정의 골이 그대로 파여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을 놓아버리는 게 실은 덜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방법을 고민해 봤다. 


“원장님, 상처를 준 그 ‘나쁜 놈’이 6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감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슬플 것 같아요. 밉고 싫은 사람이 아직도 내 감정을 뒤흔들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더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원장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우리는 다시 일상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일주일 정도 지난 무렵 늦은 밤, 원장님에게서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그 해로운 감정을 안고 살 필요가 없다 싶었어요. ‘왜 그 친구가 내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게 둬야 하지?’라고 생각하니까 털어버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6년 넘도록 생각만 해도 화가 나고 괴로웠는데 평생 용서 못 할 것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소한 생각 변화 하나로 오래된 원망과 걱정의 감정을 덜어낼 수 있다. 생각 하나 바꾸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 싶은데 생각 하나 바꾸는 거로 나쁜 감정을 확 털어낼 수 있다. 나쁜 감정이 나를 쥐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될 때 마음에 평화가 온다. 


발표 불안도 마찬가지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나는 결국 내가 만들어 낸 불안함과 초조함을 스스로 꼭 움켜쥐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나는 이런 발표 따위에는 절대 긴장하면 안 된다

◦ 긴장한 티가 나는 것은 멍청이 같다. 절대로 티가 나면 안 된다

◦ 얼굴이 붉어진다는 건 기싸움에서 밀리는 일이다

◦ 긴장으로 심장이 빨리 뛰는 건 나약한 사람의 증거다

◦ 실수를 절대 하면 안 된다

◦ 나는 뭐든 잘해야 한다

◦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는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만든 비합리적인 신념이, 실체도 없는 감정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나는 발표하면서 떨리고 긴장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해 스스로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었던 거다. 너무도 당연한 신체 반응에 대해 나는, ‘그러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리고 놓아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발표 자리에서 얼굴에 열감이 느껴지는 순간 ‘얼굴아, 가라앉아라. 이러면 지는 거야. 이러면 약해 빠져 보이는 거야.’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럴 때 ‘나를 힘들게 하는 이 불안한 기분은 내가 만들어 내는 거야. 이 감정은 실체가 없어. 얼굴이 붉어진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저들은 내 얼굴에 관심도 없어’를 반복해서 되뇌었더니 효과가 있었다. 떨리는 감정 자체에 확 매몰되지 않았다. 


긴장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질 때는 나를 휘감아 대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 놓는 게 필요하다.


기분 나쁜 감정을 털어버리듯이 불안의 감정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자. 긴장되는 순간에 불안을 더 증폭시키는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 ‘이건 내가 만들어 내는 감정이야.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어. 저리 가’를 속으로 외쳐보자.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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