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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Feb 18.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작가의 꿈

크리스마스에 연탄구이집을 찾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점심 영업을 시작한 뒤 1시간 동안 세팀이 다녀갔을 뿐이다. 그중 2팀은 혼자 와서 갈비탕을 먹고 갔고, 나머지 1팀은 부부였는데 간단한 요기만 하고 갔다. 상철과 영철은 손님이 없는 틈새 시간에 비빔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저녁 장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사장님, 오늘 같은 날 문 여는 건 아니었던 거 같애요.”

“그러게.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휑할 줄은 미처 몰랐네.”

두 사람이 긴 한숨을 내쉬고 있을 즈음, 식당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발을 디밀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입니다.”

영철이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에게 정중히 말을 전했다.

“아, 네. 식사를 하러 온 건 아니고요. 저, 정상철 사장님 좀 뵈러 왔는데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상철은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러 온 손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하마터면 들고 있던 접시를 놓칠뻔 했다.

“달래야.”

“선배, 지나가다 들렀어요. 문이 열려 있길래 안에 계시나 살짝 들어와 봤어요.”

달래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상철을 향해 손짓했다. 상철은 부랴부랴 설거지를 중단하고 달래가 서 있는 홀로 나갔다. 앞치마를 입은 채.

“그리 서 있지 말고, 어디 좀 앉아. 뭐, 마실 거라도 줄까?”

“뭐 있어요?”

“대낮부터 술은 안 할 테고, 음료수는 콜라, 사이다 있는데.”

“사이다 한 잔 주세요. 맘 같아서야 소주 한잔 마시고 싶지만, 사무실에 들러 소장님과 미팅 약속이 있어요.”

“애인 없어? 오늘 같은 날은 남친이랑 데이트를 해야지.”

“그러게요. 어디 눈먼 총각이라도 없나 좀 찾아봐야 하는데요.”

하여간 넉살은 여전하다니까.”

상철은 크게 웃으며 냉장고 문을 열고 사이다 한 캔과 음료수 잔을 꺼냈다. 그러고는 달래가 앉아 있는 의자로 다가가며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집에서 샌드위치 만들어서 먹고 나왔어요.”

“끼니 잘 챙겨 먹어. 나이 들면 돈보다 건강이다.”

“네네~ 잘 새겨듣겠습니다.”

영철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리를 피했다. 그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산 다음, 식당 건너편 커피숍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상철과 달래만 남았다. 두 사람은 서로 근황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 결혼은 언제 한 거예요? 딸은 몇 살이고요?”

상철은 가정사를 묻는 달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제가 곤란한 걸 여쭤봤나 봐요, 죄송해요.”

상철의 어두운 표정을 읽은 달래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아니야, 곤란하긴. 무슨 말을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살짝 고민했을 뿐이야.”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크게 궁금한 건 아니니까.”

달래는 상철의 눈치를 살피며 사이다 잔을 홀짝거렸다.

“작가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그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내와는 몇 년 전 이혼했어. 딸은 올해 여섯 살인데 유치원 다녀. 내 처지가 이러니 어머니께서 봐주는데, 어머니도 일하러 다니느라 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그렇구나. 혼자서 많이 외롭겠다.”

“그렇겠지. 그래도 할머니나 내 앞에서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아. 언제나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모습이 가끔은 속상하고 안쓰러워. 애가 애다워야 하는데….”

“애가 기특하네. 할머니랑 아빠 걱정 안 시켜드리려고 벌써부터 효도하나 보네. 떼쓰고, 보채고, 울기만 하는 것보단 낫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만…벌써 다 큰 애처럼 굴어서 걱정스러워.”

“걱정 마세요. 달래는 선배 닮아서 착하게 잘 클 테니까.”

“착하다고? 내가? 무슨 근거로?”

“선배 이마에 써 있어요. ‘나착함’ 이렇게.”

달래는 손가락을 들어 상철을 가리키며 우스갯소리를 했고, 상철은 달래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작가는 포기한 거예요?”

“식당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서 짬짬이 끄적거리긴 해. 그런데 심신이 고단하니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더라. 그저 일기 수준이야. 얼마 전에 신춘문예 한 번 내 봤는데 연락은 없어. 딱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기대를 안 했다고? 선배가? 에이 거짓말.”

“아주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 근데 정말 내가 뽑힐 거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어. 진짜 마음 비우고 경험 삼아 내본 거야.”

“알았어요, 알았어. 그래도 그렇게라도 한 게 어디에요. 노력이 가상하네요. 호호.”

달래는 박수를 치며 상철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달래는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밝고 명랑했다. 그녀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 대학 때도 주변에 따르는 무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상철은 말수 적은 ‘언더그라운드’였다. 항상 나무 그늘에 앉아 릴케의 시를 읽었고, 그러다 뭔가에 홀린 듯 홱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낮부터 학교 근처 포장마차에 앉아 오뎅 국물에 깡 소주를 비웠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글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자문자답하면서.

“선배, 저 이제 사무실 가봐야 할 것 같애요.”

사이다를 두어 모금 마신 달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래. 어서 가봐. 와줘서 고맙고, 자주 놀러 와.”

“진짜 자주 와도 돼요?”

“그러엄. 진달래가 오면 난 언제나 환영이야.”

상철이가 달래를 향해 양팔을 들어 올렸다. 달래는 기분 좋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상철은 문을 나서려는 달래를 몇 걸음 뒤에서 배웅했다. 그때였다. 달래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상철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있잖아요.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선배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훌륭한 작가가 될 거예요. 제가 보증합니다.”

달래의 말에 상철은 순간 가슴 한쪽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지금껏 그는 누군가로부터 작가의 꿈을 응원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상철은 달래를 바라보며 그저 씩 웃었다. 달래는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식당 앞에 받쳐놓은 빨간색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페달을 힘껏 밟으며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상철은 달래가 탄 자전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커피숍에 앉아 있던 영철이 달래가 떠난 길 맞은편에서 나와 상철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영철아, 오늘은 일찍 마감하고 들어가자. 달래랑 저녁 먹기로 한 걸 깜박했다.”

“그러세요. 저도 사장님께 그러자고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대충 정리하고 들어가자고.”

“네, 사장님! 메리 크리스마스.”

그날 삼천리 연탄구이는 오후 4시 문을 닫았다. 현관문 푯말은 ‘OPEN’에서 ‘CLOSED’로 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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