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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Feb 11.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작가의 꿈

아침을 먹고 난 상철은 여느 때처럼 식당에 나갈 채비를 했다. 어머니는 휴일에도 장사하러 나간다는 아들의 뒷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득했지만, 아들이 워낙 자존심 강한 성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오늘 같은 날엘랑 달래랑 눈썰매장에라도 가서 놀다 오면 좋으련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저도 굴뚝같지만…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문을 닫기가 좀 그래요.”

상철은 어머니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도 어렵게 시작한 장사였고, 달래 뒷바라지를 하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눈썰매장은 아직 그에게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달래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달래야, 아빠 가게 가서 일하고 올게. 할머니랑 놀고 있어.”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러 가야 해? 나랑 안 놀아줘도 되니까, 오늘 같은 날은 좀 쉬면 안 돼? 그러다가 병 나. 쓰러진단 말이야.”

어린 나이에도 아빠를 생각하는 딸의 말에 상철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병 안 나. 쓰러지지도 않아. 아빠는 맨날 맨날 시금치를 먹기 때문에 뽀빠이 아저씨처럼 힘이 엄청 세다고. 자, 봐봐.”

상철은 웃통을 걷어붙이며 온몸에 잔뜩 힘을 줬다. 잔근육들이 많았지만, 깡마른 체구는 언제봐도 엿가락처럼 흐물거렸다.

“암튼 못 말린다니까. 알았어, 대신 손님들 없으면 일찍 들어와서 쉬어야 돼.”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주님. 분부 받잡겠습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도 일찍 들어와서 공주님과 함께 저녁을 먹겠습니다요.”

“정말? 거짓말 아니지? 그럼 삼겹살 파티하는 거야?”

“삼겹살 파티를 하든, 스파게티 파티를 하든, 공주님 먹고 싶은 걸로 대령할 테니, 분부만 내려 주십쇼. 흐흐흐.”

“야호! 신난다. 아빠 얼른 갔다 와요, 얼른.”

달래의 들뜬 표정에 상철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못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철의 모친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홀아비 생활 3년째인 아들에 엄마 없이 커가는 손녀딸을 볼수록 가슴이 타들어 갔기 때문이다. 그늘진 내색 없이 씩씩하게 자라주는 달래가 대견할 따름이었다.

‘에휴, 반쪽이 얼른 생겨야 어른이던 애던 더 밝아질 텐데…’     


*  

집을 나온 상철은 집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채소전에 들러 양파와 고추, 당근을 샀고, 단골 정육점으로 가 윤기가 흐르는 생고기를 골랐다. 그는 고기를 떼다 주는 유통업체를 쓰지 않았다. 직접 시장에서 싱싱한 재료들을 사다 썼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사업 철학이었다. 남은 음식은 식당 냉장고에 사흘 이상 두지 않았다. 사흘을 넘긴 채소며 고기는 집으로 가져다 가족과 구워 먹기도 하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다. 남는 음식을 최소화하려면 장을 볼 때부터 적당한 양을 구매해야 했다. 장사 초기에는 대중하기 어려워 처리가 곤란할 지역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시야가 넓어졌다. 서산이 고향인 정육점 김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온 상철을 반갑게 맞았다.

“오늘도 문 열려고?”

“놀면 뭐 합니까, 문이라도 열고 있어야죠.”

“돈독이 올랐네, 그려. 금방 부자 되겄어.”

“부자는요, 무슨. 그러는 사장님도 오늘 가게 문 여셨잖아요?”

“나는 자네가 혹시라도 오면 우짜나 하고 열어 본겨.”

“흐흐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벌어놔야죠.”

“시상에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여, 몸뎅이가 젤로 중요한겨. 무리하다 골병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병원비며 약값이 더 나간다는 소리여.”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살살 할게요. 고기나 골병 안 들고, 실한 놈으로 떼 주세요.”

“아무튼 정 사장 넉살은 당할 재간이 음써. 하하하.”

김 사장은 S자 고리에 줄줄이 걸린 고기를 몇 덩어리 가져다 썰기 시작했다. 고기를 썰며 상철에게 무심히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신춘문예 소식은 아직 없는 겨?”

“네. 대개 크리스마스 전에 연락이 온다는데, 안 됐나 봐요.”

“으이구, 우리 정 사장이 글을 얼마나 잘 쓰는디 몰라 본댜? 눈들이 다 어따 붙었길래?”

“세상에 저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아직 멀었어요. 신춘문예도 이번에 처음 내본 거라, 솔직히 기대도 안 했어요.”  

“기대를 하나 마나. 작품을 보는 눈이 읍써서 그려. 떨어져도 너무 실망하지 말어. 실력 있는 작가를 알아보는 신문사가 어딘가는 꼭 있을 테니 말여. 알았지?”

“그럴게요.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빈말 아녀. 자네는 언젠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테니 두고 보게. 나는 자네 글 솜씨를 믿어.”

“세상 편집자들이 김 사장님만 같으면 원이 없겠네요. 저, 이만 가 볼 게요. 늦겠어요. 많이 파세요, 사장님.”

부랴부랴 정육점을 빠져나오는 상철의 뒤로 김 사장이 크게 소리쳤다.

“이 담에 베스트셀러 작가 되면 싸인 꼭 해줘야 되어? 알았지, 정 사장?”

상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건을 들지 않은 쪽 팔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김 사장 응원에 아침 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상철의 발걸음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하늘에선 새털 같은 눈이 하나둘씩 날리기 시작했다. 왠지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상철은 차에서 꺼낸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영철이 주방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앞치마를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상철은 짐짓 놀라며 영철을 불렀다.

“오늘 쉬라니까 나왔냐?”

“사장님 나온다는데 제가 어떻게 쉬어요?”

“아이참. 이런 날은 손님 없어서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니까.”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 뭐 해요. 나와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죠.”

영철의 말에 상철은 큭, 하고 웃음이 터졌다. 시장 정육점에서 김 사장에게 했던 말을 영철이 그대로 했기 때문이다. 상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든 재료들을 하나둘씩 꺼내 정리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철은 다듬은 콩나물을 물로 씻은 뒤 현관문으로 가 문에 걸린 ‘CLOSED’ 명판을 ‘OPEN’으로 돌려놨다. 크리스마스 영업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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