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Jan 21.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삼천리 연탄구이

천수만은 다운을 조용히 불렀다. 재단 이사장으로서 학교폭력위원회 소집과 가해 학생 징계는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필요성도 논의했다. 수만은 재단 차원에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지원금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걸 통해 전문 강사를 초청해 강의하고, 개인별 맞춤형 상담을 돕겠다는 제안을 했다. 

“프로그램 운영을 정다운 소장께서 맡아주면 어떻겠소?”

“네? 제가요?”

“정 소장께서 직접 하기 어렵다면 전문 기관에 위탁 운영을 맡겨도 됩니다. 제가 바라는 건, 정 소장께서 프로그램이 충실히 운영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 역할을 해 달라는 겁니다. 학교 자체적으로 할 경우 이런저런 문제점 생겨도 쉬쉬하고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무슨 말씀인 줄은 알겠습니다만...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

“아주 잘할 겁니다. 아까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정 소장의 진정성을 느꼈거든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일을 하신다면서요. 제가 한 제안이 정 소장님의 철학과도 맞을 거라고 봅니다.”

다운은 수만에게 며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흥신소 직원들과 상의한 다음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수만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검은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이내 수만의 옆에 있던 비서가 출입문 쪽으로 안내하며 다음 일정을 설명했다. 다운은 창문을 통해 수만이 비서와 함께 왔던 길로 돌아가는 모습을 넌지시 지켜봤다. 교장이 주차장까지 나와 수만을 배웅했고, 차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90도로 인사했다. 수만이 탄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갔다.      


*     


흥신소로 돌아온 다운은 달래와 쾌한에게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다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의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소장님, 정말 대단한데요.”

“뭐 가요?”

“사건 해결이야 둘째치고, 큰 사업을 물어오셨잖아요? 그럼 이제 우리 사무실 월세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예요?”

달래가 잔뜩 들뜬 기분으로 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쾌한도 다소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럼 두 분은 천수만 이사장 제안을 수락하자는 거죠?”

“당연하죠!”

“말이라고요.”

달래와 쾌한은 한목소리로 화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달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천수만 이사장이 지원하는 예산은 모두 행복중 학폭 예방 활동에만 쓸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쾌한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운을 올려다봤다. 

“저희가 사사롭게 챙기는 돈은 없을 거란 말입니다. 월세를 낸다거나, 간식을 사 먹는다거나. 그 돈은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니까요. 온전히 학생들의 꿈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게 천수만 이사장의 뜻이고 바람이니까요.”

“소장님, 그래도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월급은 둘째치고 월세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데….”

쾌한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다운의 눈치를 본 달래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직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월세 못 내서 당장 쫓겨날 정도는 아니고, 월급도 그 정도면 적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무장님. 우리가 지금 돈 벌자고 이 일 시작했습니까?”

돌변한 달래의 다그침에 쾌한은 짐짓 놀랐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난 그저, 그런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지…. 진 주임도 참, 내가 그런 속물로 보여!”

쾌한은 당황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다. 달래는 다운을 바라보고 웃으며 살짝 윙크를 보냈다. 다운은 그런 달래와 쾌한이 고맙고도 미안했다.

“자자, 사건 하나 잘 처리했으니 저녁에 회식이나 할까요?”

다운은 모처럼 사무실 건너편 사거리에 있는 연탄구이 집에 가고 싶었다. 두 사람도 잘 아는, 정다운 흥신소 단골 맛집이었다. 어느새 눈이 그쳤다. 사무실 창문만 찬바람에 간간이 떠는 소리를 냈다.     


‘삼천리 연탄구이’

세 사람은 식당 간판 바로 밑에 차려진 야외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찬바람을 가리기 위한 하얀색 천막을 쳐놓았는데, 포장마차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시뻘건 숯이 담긴 화로가 들어섰고, 그 위에 석쇠가 놓였다. 이윽고 한 남성이 쟁반에 갈매기살과 돼지껍데기를 담아다 석쇠 위에 차례로 올렸다. 쾌한이 불판 위에 얹은 고기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언제 와도 양이 푸짐해서 좋단 말야.”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이니 어련하시겠어요.”

달래가 농담 섞인 핀잔이 이어졌다. 쾌한은 달래의 농에 전혀 괘념치 않았다. 

“흠흠, 그나저나 소장님. 저는 이번 행복중학교 사건을 처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쾌한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다운과 달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봤다.

“물질적인 수입을 얻진 못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고무적이잖아요. 물론, 소장님 역할이 가장 컸지만.”

“그게 바로 저희 흥신소의 철학이자 정다운 소장님의 가치관 아니겠어요.”

쾌한의 말에 달래가 얼씨구나 화답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난 다운도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가치관과 철학을 이해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다운이 말을 하다 말곤 쾌한과 달래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다운을 빤히 쳐다봤다. 잠시 뜸을 들이던 다운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두 분께 말씀 드리지 못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안 좋은 일인가요?”

“아뇨. 그 반대입니다.”

“안 좋은 일 반대는 좋은 일인데? 혹시, 소장님 로또 당첨됐어요?”

“에휴, 제가 그걸 어떻게…. 저는 학교 다닐 때 보물찾기도 못 해 봤어요.”

“그럼 좋은 일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세요? 답답해 죽겠으니까 어서 말씀 해 보세요.”

성격 급한 쾌한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다운을 보챘다. 쾌한이 몸달아하는 모습을 보던 다운은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사실, 행복중학교 천수만 이사장이 교육 지원 프로그램과 별도로 매달 저희 흥신소를 후원하고 싶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을 듣곤 매력을 느꼈다지 뭡니까.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써 주면 좋겠다면서.”

“아니, 그게 정말이에요? 천수만 회장이, 아니 천수만 이사장이 그렇게 배포가 있는 분인 줄 미처 몰랐네요?”

달래가 놀랍다는 듯 입을 벌렸다.

“이건 로또 당첨보다 더 좋은 거네. 이제 그럼 우리 월급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네요? 그렇죠? 아싸!”

쾌한이 손뼉을 치며 일어나 크게 웃었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한판 출 기세였다. 

달래가 주변 사람들 보니 창피하다며 겨우 주저앉혔지만, 쾌한 입가에 미소는 가실 줄 몰랐다. 다운과 달래도 쾌한을 보고 기분 좋게 웃으며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접시로 가져갔다. 

“이렇게 좋은 날 반주가 빠지면 곤란하죠?”

다운이 오른 손가락을 들어 술을 마시는 시늉을 보이자, 쾌한이 반사적으로 식당 안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사장님! 여기 쏘맥이요~.”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