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안에 담임교사와 한 남성이 들어섰다. 낯선 남성의 정체를 모르는 학생들은 담임교사만 바라봤다.
“자, 오늘부터 진로 직업 교육을 할 거야.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이고, 겨울 방학이 끝나는 한 달 동안 진행할 거예요. 오늘은 첫 시간으로 탐정이란 직업을 알아볼 건데요. 옆에 계신 멋진 분이 강의해 줄 탐정님이세요. 직접 소개하실래요?”
담임교사 눈짓에 다운은 가볍게 목례한 뒤 학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정다운 흥신소 소장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운이 짧게 자기소개를 마치자 담임교사가 말을 받았다.
“정다운 소장님은 오늘하고 다음 주, 2주간 탐정이란 직업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실 거예요. 어렵게 모신 분이니까 말씀 잘 듣고,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라요.”
담임교사는 다운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교실을 떠났다.
“자, 반장 일어나서 인사해 볼까요?”
다운은 서른 명 안팎인 학생들을 훑어보며 반장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한 여학생이 의자를 뒤로 쑥 밀고 일어났다. 작은 체구에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모범생 모습이었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세요.”
“그래요. 제 소개는 좀 전에 간단히 했으니 출석부터 불러 볼게요. 얼굴도 읽힐 겸.”
다운이 방과 후 수업 파일 사이에 끼어있는 출석부를 들어 올렸다.
“쳇. 자기가 무슨 선생인 줄 아나 봐?”
맨 뒷줄에 앉은 덩치 큰 녀석이 다운에게까지 들리도록 빈정거리며 말했다. 녀석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몇 명이 우습다는 듯 키득거렸다.
“거기, 학생! 자네 이름이 뭔가?”
“저요? 제 이름이요? 탐정님이니까 한 번 알아맞혀 보세요?”
이번에는 더 많은 학생이 까르르 웃었다. 어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또 어떤 아이들은 책상을 치면서 요란법석을 떨었다.
“탐정이 학생들 이름 맞히는 사람은 아닌데. 자, 그럼 다시 출석 부르겠습니다.”
다운은 가미령, 김나운, 노은경, 도진훈...가나다 순으로 적힌 명부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린 이름 ‘천태산’. 아까 다운에게 빈정거렸던 남학생이었다. 다운은 대답 없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태산을 쏘아보았다. 태산도 물러서지 않고 능글맞게 이죽거렸다.
“천태산은 결석했나? 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거지?”
“그거야, 제 맘이죠. 왜요? 자존심 상해요? 수업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
순간 교실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태산은 행복중학교 일진인 듯 보였다. 학생들은 태산과 다운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안 되겠군. 천태산, 너 이 녀석. 앞으로 나와.”
태산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껄렁거리며 다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힘을 돋우는 병사들처럼.
“이 녀석 참 무례하구나. 그래도 수업하러 온 선생님께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지?”
“선생님? 강의 한 번 하러 온 주제에 왜 꼰대처럼 구실까? 대충 한 두 시간 떠들다 강사료나 받고 조용히 가세요.”
“너희들을 가르치러 온 이상, 그 시간만큼은 나는 선생이고, 너희는 제자야. 그러니 듣기 싫은 수업이라도 방해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누가 그 잘난 수업을 듣고 싶어 한다고. 야, 너희들 중에 탐정 되고 싶은 사람 있어? 있으면 어디 손 들어봐!”
태산은 뒤로 돌아 학생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따져 물었다. 태산의 위압감에 눌린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주뼛거리며 손을 올렸다.
“저기...난, 탐정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수업은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태산은 화들짝 놀라 홱 돌아섰다. 아이들의 시선도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현재였다.
“아 후, 저게 또 분위기 파악 못하고 깝 치네. 얼마나 두드려맞아야 정신 차릴래, 엉?”
“자, 자 조용. 그만해. 내 수업을 듣고 싶다는 저 학생을 위해서라도 난 강의를 해야겠다. 천태산, 넌 그만 자리로 돌아가.”
태산이 고개를 푹 숙였다가 턱을 양옆으로 돌리며 현재를 노려봤다. 태산과 눈이 마주친 현재는 겁에 질린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다운은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어진 돌발상황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수업을 진행했다.
“여러분, 혹시 ‘흥신소’라는 이름 들어본 사람 있나요?”
아이들은 생경하다는 듯 저희끼리 ‘흥신소? 그게 뭐래?’라며 수군거렸다.
“익숙하진 않을 거예요. 여러분 일상과는 그리 밀접한 일을 하는 곳은 아니니까. 흥신소는 쉽게 말해 탐정업을 하는 곳이에요.”
“그럼 선생님이 명탐정 코난이예요?”
한 여학생의 농담에 조용했던 교실이 또 한 번 들썩거렸다.
“그래요. 그렇게 이해하는 게 쉽고 빠를 수도 있겠네요.”
다운은 USB를 교실 안 컴퓨터에 꽂고, 전자 칠판에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띄웠다. 첫 장에는 ‘탐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경찰서에 가면 형사님이 계시죠? 형사가 사법 조사원이라면 탐정은 민간 조사원이에요. 형사는 의뢰자의 요청을 받아 사건 사고를 조사하고, 관련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합니다. 유명한 탐정이라면 아까 어떤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코난 도일이나, 셜록 홈즈가 있죠.”
그러자 다운에게 코난이냐고 물었던 여학생이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럼 탐정님은 코난이나 셜록홈즈처럼 유명하세요?”
“음…제가 유명했다면 여러분들이 저를 못 알아볼 리 없었겠죠? 저는 유명한 탐정이라기보단,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하하하. 야, 들었냐? 잃어버린 꿈을 찾아 준댄다. 탐정이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안 그러냐?”
교실 안은 또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조용. 조용히! 이래선 진도를 나갈 수가 없어요.”
“진도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어차피 여기 있는 애들 탐정이란 직업에 전혀 관심 없으니까요. 저 또라이 계집애만 빼고.”
투명 매니큐어를 칠한 한 여학생이 다운 대신 손거울을 쳐다보며 이죽거렸다.
“넌 또 누구니?”
그녀 역시 태산처럼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운은 출석부를 꺼내 학생의 이름을 떠올렸다.
“너, 이름이 혹시 나애리니?”
애리 대신 다른 학생들이 눈짓으로 ‘맞다’라고 일러줬다.
“나애리, 너도 참교육이 필요한 아이 같구나.”
애리는 다운의 말에 삐친 듯 눈을 치켜떴다.
“참교육? 참교육 같은 소리하시네. 기가 막혀서. 기껏해야 방과 후 강사 주제에!”
“뭐라고? 주제?”
“그래요. 주제! 얼마나 일거리가 없으면 학교까지 와서 재미없는 탐정 얘기나 떠들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듣기 싫은 사람들은 냅두고 그냥 혼자서 떠들라고요.”
“너, 이 녀석!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특강 하러 온 강사한테도 이런데, 학교 선생님들한테는 오죽할까.”
“쌤들한테는 안 그래요. 쌤들도 우릴 안 건드리니까.”
“정말, 구제 불능이군.”
다운은 건방지게 구는 애리에게 혀를 내둘렀다. 그러자 애리와 단짝인 정미란과 최예진이 거들고 나섰다.
“강사 쌤. 적당히 하고 가셔요. 정말 우리는 그쪽 분야에 1도 관심 없으니까요. 심심하면 나가서 우리랑 담배라도 하나 꼬실리던가.”
“뭐라고? 담배? 정말 이 녀석들이!”
애리와 미란, 예진은 학교에서 ‘나미진 트리오’로 유명했다. 천태산 역시 방기남과 지용산, 추종만과 함께 교내 ‘천방지축 클럽’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이들 일곱 명은 ‘천방지축 나미진’으로 불렸다.
*
다운은 이들의 악명을 미래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그들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음색부터 섬뜩할 정도였다. 급기야 나애리는 교단 앞으로 나와 다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배를 달라고 계속 시비를 걸었다. 다운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하자, 쌍욕을 하며 들어갔다. 교실 바닥에는 씹던 껌을 퉤, 뱉기도 했다.
다운은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눌렀다. ‘지금 흥분하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없어. 참아야 하느니라.’ 다운은 다시 칠판으로 돌아서 수업을 진행했다.
“자, 대한민국에서 탐정은 무슨 일을 할까요? 누가 말해 볼 수 있는 사람?”
“사람 뒷조사요!”
“범죄 해결.”
“떼인 돈 받아주기!”
여기저기서 다양한 대답을 내놨다. 다운은 학생들이 답할 때마다 일일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대강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아까 얘기했던 명탐정 코난이나 셜록 홈즈처럼 누군가로부터 사고나 사건을 의뢰받아 추리하고 조사해서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탐정이에요. 탐정업은 흥신소라는 간판을 걸고 하고 있는데, 흥신소라는 어감이 그리 밝은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다운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저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했듯이 일반적인 탐정 일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거나 꿈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다운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일은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들이 하는 거 아닌가요? 탐정이 그런 일을 해서 어떻게 돈을 벌어요?”
반장인 여학생이 진지하게 물었다.
“물론, 의사나 상담사처럼 전문가들 영역이긴 하죠. 하지만 그들만의 영역이라고 볼 수도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고나 사건을 당해 꿈을 잃었거나 꿈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진 못해요. 하지만 희망 넘치고 정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한다는 긍지와 보람이 돈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운은 제법 멋지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 천태산이 다시 빈정거리며 도발해왔다.
“오호, 긍지와 보람? 야, 너희들 들었냐? 돈도 못 벌면서 긍지와 보람이래? 와, 여기 대단한 자선사업가 오셨다. 안 그래? 크하하하.”
태산의 우렁찬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미진 트리오’는 주먹으로 책상까지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다운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곤 더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10분만 쉬었다 하자.”
다운은 학생들에게 제자리에 앉아서 쉬라고 했다. 그러나 고분고분 말을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천방지축 나미진’을 필두로 여럿의 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럽게 떠들며 교실 곳곳을 활보하고 다녔다. 알아듣지 못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다운은 손을 이마에 짚으며 교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태산과 애리는 다운이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서로 마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화장실에서 찬물에 세수하고 나온 다운은 복도를 지나 교실 입구에서 멈췄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중대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힘차게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묵직하고 단단한 물체가 다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라 다운은 미처 피할 수 없었다. 물체는 다운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퍽!’
“으악.”
다운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곤 얼굴을 감싸 쥔 채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번개가 번쩍하며 어지러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몇몇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물가물 들렸다. 그 사이로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얼굴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현재의 희미한 실루엣을 본 다운은 겨우 정신 줄을 붙잡았다. 다운의 손에 뜨거운 액체가 만져졌다. 코피였다.
다운을 향해 날아든 건 축구공이었고, 공을 정면으로 맞은 다운의 코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맨 앞줄에 앉은 아이가 재빨리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 다운의 손에 쥐어 줬다. 휴지를 받아든 다운은 ‘괜찮다’라고 손짓하며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다운은 연신 코를 훔쳤다. 어느 정도 지혈이 됐다 싶었을 즈음, 휴지를 돌돌 말아 코를 틀어막고 교단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누구지? 세상에서 제일 비싼 내 코를 이 모양으로 만든 녀석이?”
다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가 했다고 자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애리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탐정이라면서요? 직접 찾아보세요, 범인이 누군지.”
애리의 말에 다운은 짧고 강한 어조로 외쳤다.
“천방지축 나미진! 너희들 짓이잖아!”
다운 입에서 ‘천방지축 나미진’이란 말이 나오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들은 당사자 일곱명이었다. 그들은 다운이 어떻게 그 별명을 아는지 의아했다. 그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저 아저씨. 다 알고 온 거 아냐?”
누군가 수군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쟤네 별명을 어떻게 알겠어?”
“맞아, 맞아, 그런가 봐. 정말 탐정이 맞나봐.”
수군거림이 확산하자 태산이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탐정 아재님. 우리가 범인이라는 증거 있어요? 무슨 증거로 우리를 콕 찍어 죄인으로 모는 거예요? 아까 살짝 장난 좀 치고, 농담 좀 했다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다운은 태산의 산만 한 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다운의 서늘한 웃음에 태산은 짐짓 놀랐다. 다운의 돌변한 모습을 본 나머지 무리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증거? 증거라고 했겠다? 오냐, 너희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증거를 내가 직접 보여주지!”
다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자 칠판에서 영상 파일이 재생됐다. 화면에는 태산이 축구공을 들고 악동 무리 속에 숨어있었다. 그러다 화장실을 다녀온 다운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다운의 얼굴을 향해 공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건 다운이 노트북에 영상 녹화 기능을 작동하도록 미리 설정했기 때문이다. 다운이 교실에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축구공이 날아든 순간까지 모든 상황이 담겨 있었다. 마치 CCTV 화면처럼. 화면을 보는 일곱 명은 아연실색했다.
“너희들 보디캠이라고 들어봤니?”
다운은 와이셔츠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잘 봐. 이건 휴대용 CCTV나 블랙박스 같은 역할을 하는 보디캠이라는 거란다.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까지 담겨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록이 돼. 그래서 탐정에게는 필수 아이템이지. 자, 이 작은 기기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똑똑히 보라고!”
교실은 순식간에 숨이 멎은 듯 고요해졌다.
“천방지축, 그리고 나미진. 이제 너희들이 변명할 순서야. 아니지, 무슨 변명을 하겠어, 여기 완전한 ‘빼박’ 증거가 있는데. 너희들은 이제 벌 받는 일만 남았지. 참고로, 나는 교사가 아닌, 민간인이라 형사 처벌도 요구할 수 있어. 이 정도 코피면 전치 2주 진단은 쉽게 나올 거고. 그리고, 나애리. 넌 아까 나한테 담배 달라면서 툭툭 치고 협박까지 했으니까 별도로 고소하겠어.”
다운의 으름장에 ‘천방지축 나미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난 착하고 순한 선생님이 아니라서 여러분을 너그럽게 용서해 줄 만한 아량이 없어요. 잠깐 와서 강사료나 받아 가면 다시 볼 일 없는 아저씨니까.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칠게. 그리고 너희들은 조만간 경찰서에서 보자고.”
판세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교실 안 공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다운은 노트북에 꽂힌 USB를 빼 옷 안주머니에 넣고 교실을 나왔다. 그리곤 교무실을 찾아가 담임교사와 교장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학교폭력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
교무실은 발칵 뒤집혔다. 교장은 다운이 건넨 영상 파일을 확인한 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다운이 요구한 학폭위 소집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저, 선생님. 그냥 조용히 처리하면 안 될까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학교 이미지도 있는데….”
“뭐라고요? 아니, 교장 선생님. 이렇게 엄연히 증거가 있고 사람이 다쳤는데, 학교 이미지가 중요한가요?”
교장의 말에 다운은 어이가 없었다.
“어떤 심정이고, 무슨 말씀인지는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도 걸린 문제이니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고 싶습니다. 학부모들께도 잘 말씀드려서 치료비는 섭섭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갈수록 가관이군요. 교장 선생님, 이 일은 단순히 합의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당한 수모와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수년째 학폭에 시달린 학생이 있습니다. 엄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학교폭력이라고요.”
“수년째 학폭이라뇨?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장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교장 옆에 앉아 있던 담임교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다운은 미래로부터 들은 현재의 피해 사실을 하나하나 풀어놨다. 설명을 듣고 난 교장은 고통스럽다는 듯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 녀석들 성격이 좀 드세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김 선생, 자네는 담임인데 모르고 있었나?”
교장의 채근에 담임교사는 어쩔 줄 모른 채 우물쭈물했다.
다운은 그러니까 학폭위를 열어 가해 학생들을 처벌해야 한다, 고 재차 요구했다. 그래도 교장은 찜찜한 구석이 있는지 즉답은 하지 못했다.
“일단, 이사장님께 보고를 드려보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교장이라고 해도, 사립학교다 보니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서요.”
교장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재단 이사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이사장님, 교장입니다. 학교에 문제가 생겼는데요. 잠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태산이도 걸려 있는 거라서.”
교장 입에서 ‘태산’의 이름이 나온 건 의외였다. 교장이 그렇게 말했다면 태산과 이사장 사이가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였기에. 이사장은 20분 만에 학교에 도착했다. 검은 외제 차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섰다. 운전기사가 재빨리 뒷문을 열었고, 우람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정 구두에서, 까만 선글라스에서, 벗겨진 이마에서 번쩍번쩍 광이 났다. 그는 재단 이사장 ‘천수만’이었다. 그는 조수석에서 내린 수행비서를 앞세워 교무실로 향했다.
“이 사고뭉치가 또 일을 벌인 모양이군.”
수만은 태산의 아버지였다. 수만은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몸 쓰는 일을 해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시장에서 옷을 팔아 이문을 남겼고, 20대 초반 자기 명의로 된 의류회사를 차렸다.
이후에도 그는 사업에 일가견이 있어 하는 일마다 성공했다. 지금은 연 매출 수십억 원을 올리는 물류회사를 운영 중이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명성과 입지를 다졌지만, 배움의 한은 두고두고 남았다. 그 한을 풀기 위해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행복중학교였다. 하지만 사고뭉치 아들 덕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의 이마 주름이 오늘따라 유난히 깊어 보였다.
수만이 교무실에 들어서자 교장과 담임 교사가 급히 일어나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다운도 엉거주춤 일어나 수만을 맞았다. 교장은 수만과 다운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소장님, 저희 학교 재단 이사장님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오늘 진로 직업 특강을 온 정다운 소장님입니다.”
“천수만이요.”
“정다운입니다.”
명함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고, 교장이 자세한 내막을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수만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리곤 다운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제 아들이 정 소장님께 큰 결례를 저질렀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애비인 제가 먼저 사과드립니다. 그동안 사업한다고 정신이 없어 하나뿐인 아들 녀석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다운은 수만의 사과가 당황스러웠다. 왠지 거만하게 굴면서 ‘얼마면 되느냐’고 삐딱하게 굴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운은 이내 표정을 바꿔 수만에게 건의했다.
“태산이 아버님. 이건 학부모가 자녀 대신 사과할 사안이 아닙니다. 제가 겪은 봉변은 둘째치고, 한 교실에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를 계속 생활하도록 할 순 없습니다. 이건 한 아이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도 하고요. 학교 이사장님으로서 나서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다운의 말을 들은 수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뭔가 곰곰이 생각한 다음 수행비서를 불렀다. 비서는 달려오듯 수만에게 다가왔고, 수만은 비서의 귀에 대고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수만의 지시가 끝나자 비서는 들고 있던 결재판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결재판 안에 있던 흰 종이에 뭔가 적고는 교무실 밖 복도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 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리 뉴스에서 학폭이 문제라고 떠들어도 우리 학교만큼은 그런 일이 없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제 아들 녀석이 학폭 가해자였다니…. 소장님 말씀대로 이건 그냥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무슨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요?”
수만은 다운을 쳐다보며 부탁했다. 다운은 수만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시나리오를 수만과 교장, 담임 교사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다운의 시나리오에 모두가 공감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수만이 맨 앞장섰다.
*
교실 문이 열리고 수만과 교장이 들어섰다. 그 뒤를 다운과 담임 교사가 따라 들어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태산은 눈이 동그래졌다. 태산뿐만 아니라 ‘천방지축 나미진’ 클럽은 안절부절못했다.
교장이 수만을 소개했고, 수만은 근엄한 자세로 교단에 섰다.
“저는 이 학교 이사장인 천태산이라고 합니다. 아는 친구도 있겠지만, 저기 맨 뒤에 앉은 천태산이 제 아들이고요.”
아이들은 수만이 무슨 얘기를 할까 숨을 죽인 채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오늘 이 교실에서 아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특강을 하러 온 강사분께 무례함을 넘어서 신체적인 피해까지 입힌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제 아들이 주도적으로 동참했다는 사실까지도.”
수만의 말을 듣고 있던 태산은 눈을 찔끈 감은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게 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제 잘못입니다. 선생님들과 소장님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말을 마친 수만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바닥에 육중한 두 다리를 접고 고개를 숙였다. 수만의 행동에 학생들은 아, 소리를 내며 놀라운 반응을 나타냈다.
“소장님, 아이들이 소장님께 저지른 잘못은 경찰에 신고해서 마땅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교내에서도 학폭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요구하겠습니다. 부디 학생들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급기야 수만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을 본 태산과 애리가 황급히 뛰어나와 수만 옆에 무릎을 꿇었다.
“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장난으로 그런 거예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뭐? 장난? 용서? 그렇게 못하겠다면?”
다운이 단호한 표정을 짓자 태산과 애리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나머지 멤버들까지 우르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쌤, 제발 부탁드립니다. 수업 잘 들을 테니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꿈을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준다면서요? 저희를 경찰에 신고하면 퇴학당할 수도 있고…그러면 꿈을 이룰 수 없을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제발…부탁드려요.”
애리가 눈물을 질질 짜며 말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흐느끼며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운은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거야?”
“네!”
일동은 모두 한목소리로 답했다.
“그만 일어나 너희들 자리로 돌아가. 이사장님도 그만 일어나시고요.”
다운은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무릎을 꿇고 선처를 바라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다. 수만과 교장은 맨 앞줄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고, 담임도 교사 자리에 앉아 다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천태산!”
“네.”
“너는 꿈이 뭐니?”
“제 꿈은…이강인이나 손흥민 같은 국대 축구선수가 되는 거요.”
“멋진 꿈이네. 그런데 축구는 운동장에서 하는 거지, 교실에서 하는 건 아니잖아. 발로 차는 것도 아니고, 그 무시무시한 손으로 던지는 건 핸드볼이나 피구선수들이 하는 거고.”
다운의 넉살에 아이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태산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애리야.”
“네, 쌤.”
“너는 무슨 꿈이 있니?”
“저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엄마가 의상실을 하고 계시는데, 어릴 때부터 엄마가 만드는 옷이 정말 예뻐 보였거든요. 지금도 그렇고…”
“그래, 태산이나 애리처럼 누구에게나 꿈이 있어.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지.”
다운의 진지한 설명에 교실의 분위기는 차분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다운에게로 쏠렸다. 양쪽 코에 휴지를 틀어막은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다운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소중한 꿈을 꾸고 그걸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때가 지금의 학창 시절이야.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한다면 그 친구는 어떻게 될까?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뿐더러,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게 죽기보다 싫겠지? 결국 꿈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뉴스에서 종종 보잖니.”
다운의 말에 현재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마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언니 미래가 실제로 다운에게 이 일을 의뢰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