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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r 03.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흥신소

유쾌한 사무장

쾌한은 모처럼 긴 잠을 잤다. 휴일이기도 했고, 그동안 밀린 흥신소 잡무를 처리하느라 무리했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핸드폰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늦잠을 자본 적도 꽤 오랜만이군.”

쾌한은 침대에서 몇 번을 뒤척였다. 핸드폰으로 전날 농구 경기 하이라이트를 봤다. 2시간에 달하는 풀 영상이지만 4쿼터만 보기로 했다. 

“농구는 4쿼터부터지. 어디 보자.”

경기 결과는 쾌한이 응원하는 팀이 큰 점수 차이로 이겼다. 

“예스. 이렇게 가면 6강 플레이오프는 떼 놓은 당상이고, 잘하면 우승까지 하겠는걸.”

고작 농구 경기였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취미였기에, 응원하는 팀의 승리에 신났다. 특히 그가 응원하는 팀은 만년 꼴찌를 면치 못했기에, 그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농구 경기 하이라이트를 본 뒤 그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뭐라도 먹어야 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것저것 꽉 들어차 있었지만, 딱히 입맛을 당기는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에 사는 홀어머니가 보내준 반찬이 즐비했지만, 정작 밥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식빵과 크림치즈, 달걀 한 개와 우유 통을 꺼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걀을 깨뜨렸다. 쾌한은 반숙 스타일이었다. 호밀 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올렸다. 전자레인지에서 우유가 돌아가는 동안 유튜브에서 식사동안 들을 노래를 검색했다. 쾌한은 트로트 마니아였다.

“그래, 결정했어. 오늘은 임영웅이야.”

쾌한은 임영웅이 부른 <모래알갱이>를 플레이했다. 영화 ‘소풍’ 장면과 출연 배우인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시니어벤저스’가 영상에 떴다. 거기에 임영웅의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덮여 흘러나왔다. 영상을 보니, 갑자기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쾌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빵을 우걱우걱 씹다 목이 메었다. 그는 사레가 들릴 뻔한 걸 겨우 참고 데워진 우유를 들이켰다. 

“휴, 살았다.”

빵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쾌한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엄마냐?”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그럼 아빤가?”

나이 40이 넘은 쾌한은 어머니 앞에선 여전히 네 살배기 어린애였다. 

“몸은 좀 어떠세요?”

“만날 그렇지 뭐. 허리는 고질병이라 노상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무릎도 시리고…괜찮다.”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괜찮긴. 병원 좀 다니고, 약도 잘 챙겨 드세요.”

“참을 만하다는 소리야. 한의원에 침도 맞고 그런다.”

한 달여 만에 듣는 어머니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어째, 사무실은 별고 없고? 일은 안 힘들어?”

“여기야 늘 똑같지. 내 걱정은 말아요.”

“오냐. 그래. 우리 아들을 언제나 유쾌하니까. 그래도 끼니는 잘 챙겨 먹어라. 빵 먹지 말고, 밥 먹어라.”

쾌한은 방금 먹은 빵이 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네, 또 연락드릴게요. 쉬세요.”

전화를 끊은 쾌한은 낮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쾌한은 외출 준비를 했다. 모처럼 산책하며 바람을 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말의 기온은 낮에도 영하권을 맴돌았다. 목도리까지 단단히 챙긴 쾌한은 신발을 신고 아파트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쾌한은 혼자 공원을 거닐었다. 바람이 차서인지, 공원에 사람이라곤 그 혼자였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쾌한은 잠시 쉴 겸 미끄럼틀 옆 벤치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지만, 집에 두고 나왔는지 아무리 뒤적거려도 잡히지 않았다. 

“몸에도 안 좋은 거, 이참에 끊어야지.”

쾌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끄적거렸다. 그가 좋아하는 웹툰 연재의 업데이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사이 저 멀리에서 공원 쪽으로 리어카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노파가 리어카를 끌고 공원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힘에 부쳐 보였다. 리어카는 잔뜩 실린 파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 바르르 떨었다. 그때마다 노파는 비틀거렸다. 쾌한은 본능적으로 노파 쪽으로 뛰어갔다. 

“아휴, 하마터면 다 쏟아질 뻔했네.”

쾌한이 한쪽으로 넘어가려는 리어카를 애써 붙잡으며 말했다. 

“으이그. 고맙습니다.”

머리가 새하얀 노파는 쾌한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할머니는. 지난번에 뵀던.”

노파는 쾌한이 며칠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적이 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아침, 노파는 우산도 없이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었다. 출근길에 그 모습을 본 쾌한은 자기 우산을 노파 손에 쥐여줬다. 그리고 아파트 언덕길까지 직접 끌고 올라가 주차를 해 놓은 다음, 우산도 돌려받지 않은 채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이구, 젊은 총각을 여기서 보네. 또 신세를 지고….”

“신세는요. 아무튼 큰일 날 뻔하셨어요. 조금만 실으시지.”

노파는 쾌한의 말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쾌한은 리어카를 공원 한쪽에다 세워놓고 노파를 데리고 자판기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밀크커피를 한잔 빼서 건넸다. 

“아휴. 이게 뭐래요. 이렇게 안 해도 되는구먼….”

“괜찮아요. 할머니, 저랑 저 의자에 가서 조금만 쉬었다가 가세요.”

쾌한도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더 뽑은 뒤 노파를 데리고 그가 앉아 있던 벤치로 모셨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어때요? 맛있죠?”

“그렇네, 젊은 총각이 빼 주니까 더 맛나네. 흐흐흐.”

“할머니, 제가 총각은 맞는데요, 젊은 총각은 아니에요. 저도 낼모레면 오십이에요.”

“아이고야, 그래? 내 눈에는 서른 살밖에 안 돼 보이는구만.”

“농담인 거 다 알아요. 그래도 듣기는 좋네요. 근데, 할머니. 오늘 같은 휴일에는 댁에서 좀 쉬시지요.”

“에이그. 그런 말 말아요. 난…편히 쉴 수가 없는 늙은이라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댁에 자제분들 안 계세요?”

“응, 음써…손녀딸이랑 둘이 살아요.”

순간 쾌한은 실언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아, 그러셨군요. 죄송해요.”

“아냐, 아냐. 알지도 못했는데, 왜 죄송할 일이야. 내 처지가 좀 그렇다는 거지.”

노파는 쾌한은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려고 했다. 쾌한은 그런 노파의 손목을 잡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날씨가 추워요. 이거하고 가세요.”

쾌한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빼 노파의 목에 둘렀다. 

“아냐, 아냐. 이렇게 안 해도 돼. 괜찮아. 암시랑도 않다고.”

노파는 쾌한의 성의를 애써 마다하려고 애를 썼지만, 쾌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안 괜찮아요. 우리 엄마 같아서 그래요. 우리 엄마도 혼자 저를 키우셨거든요.” 

그 말에 노파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한 채 얌전해졌다. 그 틈에 쾌한은 자신의 어머니가 손수 짜 만든 목도리를 노파의 목에 단단히 맸다. 

“자, 예쁩니다. 그렇게 하고 다니면,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거예요.”

노파의 눈가에 눈물이 가릉거렸다. 

“고마우이. 젊은이는 참 착한 사람이야. 참 고마우이.”

노파는 쾌한에게 허리를 몇 번이나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쾌한은 공원 한 귀퉁이에 세운 리어카를 끌었다. 그리고 노파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리어카를 몰았다. 쾌한와 노파의 이마와 입가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     

“어르신께서는 꿈이 뭐예요?”

리어카를 끌고 가던 쾌한이 등을 돌려 뒤따라오던 노파에게 물었다. 

“뭐요? 꿈?”

“네, 꿈이요. 어르신도 꿈이라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그런 게 어딨어요. 이젠 나이 먹어서 그런지 잠을 잘 때도 꿈은 안 꿔집디다.”

“아유, 그러지 말고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테니까.”

“이 나이에 꿈이 있으면 또 뭐 하게요. 흐흐흐.”

하지만 노파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쾌한의 얼굴을 보자 곰곰 생각하는 듯했다. 

“글쎄, 꿈이라고요. 우리 손녀딸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는 거, 그게 꿈이겠네요.”

“아니, 어르신. 손녀 잘되는 거 말고요. 어르신 본인이 이루고 싶은 꿈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런 거 없수다. 리어카나 조기 조 앞에 세워두고 이제 가 보시구랴.”

노파는 손사래를 쳤다. 

쾌한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리어카를 한쪽에 세웠다. 

“어르신께서도 분명히 꿈이 있을 겁니다.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도전해보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고맙소, 젊은이. 내 오늘 젊은 양반 덕분에 꿈이라는 것도 꿔 보는구먼.”

쾌한은 노인에게 조심히 가라고 인사하며 뒤돌아 오던 길을 향해 다시 걸었다. 그때였다. 노파가 쾌한을 부르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젊은이, 생각났네, 생각났어.”

“네? 뭐가요?”

“젊은이가 생각해 보라는 꿈 말일세. 생각났다고.”

“아, 그래요? 그게 뭔데요?”

“난, 학교에 가고 싶었어. 여태껏 한글도 모르고 까막눈으로 사는데, 죽기 전에 기역니은은 읽고 쓰고 싶어. 그게 내 꿈일세.”

“아, 그렇군요. 정말 꿈다운 꿈이네요. 어르신, 그 꿈 꼭 이루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노파는 쾌한이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고맙다며 돌아서서 리어카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차가운 리어카 손잡이를 움켜쥐고, 힘겹게 리어카를 들어 올렸다. 쾌한은 겨울의 한복판을 향해 걸어가는 노파의 뒷모습을 먼발치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곤 들릴락 말락 혼잣말을 했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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