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고우리
해안도로를 향해 달리던 차는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돌담집이 길게 늘어져 나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이 이어졌다. 다운은 앞차에 들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쫓았다. 십여 분을 더 달린 차는 외딴곳에 지어진 펜션에 도착했다. 펜션 외벽은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유독 눈에 띄었다. 검은색 세단은 널찍한 펜션 앞마당에서 멈췄다. 차에서 내린 남녀는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다운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이 집에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라, 이곳이 두 사람이 밀회를 즐기는 곳이로군.’
다운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건물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실내가 보이는 창문 쪽으로 숨죽여 이동했다.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외투를 벗고 거실 소파에 앉는 모습이 창밖으로 보였다. 다운은 두 사람의 동태를 주의 깊게 살폈다. 여자는 주방으로 가 커피포트에 물을 담았고, 남자는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 채널을 틀었다. 커피 물이 데워지는 동안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운은 카메라를 무음으로 설정한 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다운을 기겁하게 만든 상황이 벌어졌다.
“으악!”
다운은 급기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다운의 카메라를 향해 검은 물체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고양이었다. 귀와 얼굴, 꼬리와 다리는 검은색이고, 몸통은 흰털로 덮여 있었다. 다운의 비명을 들은 남자가 깜짝 놀라 창문을 열었다. 다운은 풀밭에 털썩 주저앉은 채 안에서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남자를 향해 엉거주춤 인사를 건넸다.
“누구신데 여기 있는 거죠? 지금 저희들 사진을 찍은 겁니까?”
남성은 험상궂은 인상을 쓰며 다운을 쏘아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다운을 말을 걸었다. “그렇게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제야 다운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다운을 공격했던 고양이도 다운을 따라 들어왔다. 그러더니 여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품에 안겼다.
“누구신데 여기서 우리를 엿보는 겁니까?”
남자의 다그침에 다운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보였다.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흥신업을 하고 있습니다.”
“흥신소? 일은 누가 시켰소?”
“사장님의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백장미 씨고요.”
그제야 남자는 얼굴을 폈다. 여자도 대강 무슨 내막인 줄 알겠다는 듯 경계심을 풀었다.
“하긴, 그 여자도 그럴 만하지. 내가 의심을 살 행동을 했으니까.”
다운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헛수고 하셨군요. 우리는 제 아내나 당신이 의심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면? 그럼 왜 아까 유채꽃밭에서 손잡고 사진을 찍고, 여기는 왜 두 분이 계신 거죠?”
“일단 내 소개부터 하죠. 저는 고인돌이라고 하고, 여기는 고우리라고 합니다. 저는 아내와 제주에서 호텔업을 하고 있고, 이 아이는 제 친동생입니다.”
“네? 친동생이라고요?”
다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런데 왜 사모님은 친동생도 몰라보고 불륜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거죠?”
인돌은 동생과의 기구한 사연을 설명했다.
“이 아이는 세상에 없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나와 같이 살지도, 같이 크지도 않았거든요. 친남매인 줄 모르고 살다가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연락이 닿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말을 이어갔다.
“산부인과에서 실수로 아이가 바뀌었어요. 간호사 실수로 저는 다른 가정으로 가서 컸고, 그 집으로 갔어야 할 아이는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숨졌어요.”
산부인과에서는 산모가 노산이라 태아가 건강하게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 전했다. 실제 당시 인돌 어머니의 나이는 오십을 넘겼을 무렵이었다.
“부모님은 죽은 아이가 당신들 자식이 될 운명이 아니라며 가슴에 묻고 사셨어요. 그때 저는 대학을 다니다 군에 가 있을 때라서 두 분을 위로하지도 못하고 섭섭한 마음만 갖고 있었죠.”
“그럼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때 우리 품에 안겨 있던 고양이가 다운을 향해 날카롭게 울었다.
“샴고양이예요. 고양이 계의 여왕으로 불리죠. 성격이 독특하면서도 감수성이 예민해요. 그래서 때로는 공격적이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요. 낯선 사람이 창밖에서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께 달려들 건 같은데,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군요.”
우리가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고양이 이름은 ‘순실’이었다. 다운은 고양이 계의 여왕치고는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나자 우리는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인돌은 이산가족이 상봉한 사연을 다운에게 들려줬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DNA 유전자 검사로 친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간호사 실수로 뒤바뀐 걸 모른 채 살던 두 집안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즈음 우연히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확인한 병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유전자 검사로 아이들이 바뀐 사실을 확인했다는 거였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생겼을지 모르겠다는. 그래서 어머니께서 출산했던 병원을 물어물어 찾아갔죠.”
인돌은 설명에 집중했고, 그동안 우리는 머그잔에 커피를 타 거실로 내왔다.
“차 좀 드시면서 하세요.”
우리는 인돌 쪽으로 찻잔을 옮기면서 말했다. 다운에게도 한 잔을 돌려준 뒤 우리 역시 자기 앞에 찻잔을 놓고 앉았다. 순실이가 금세 우리 품에 달려가 안겼다.
“마시면서 하시죠.”
다운은 인돌에게 천천히 대화하자는 듯 말을 건넸다. 창밖에는 하얀 눈송이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병원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됐어요. 당시 일했던 사람들도 행방을 알 수 없었고요. 그래도 다행인 건, 병원을 인수한 인근 종합병원에 당시 진료 기록이 남아 있더군요. 거기서 알게 됐어요. 내 동생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딘가 바뀐 부모 밑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요.”
인돌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차를 마시던 우리의 가느다란 양손도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출입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하는 문소리와 함께 집 안에 들어선 건, 중년의 한 여성이었다. 여성을 발견한 인돌이 소스라치듯 놀랐다.
“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우리와 다운은 깜짝 놀라 커피잔을 떨어뜨린 인돌과 찬 바람과 함께 등장한 여성의 아우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찬바람보다 더 차갑게 문 앞에 서 있던 여인은 바로 고인돌의 아내 백장미였다.
“드디어 꼬리가 잡혔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이 여기서 쓸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
“여, 여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말투를 보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뭐? 오해? 오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당장 내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백장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그녀의 음성에는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고인돌에게 고정됐던 백장미의 시선이 고우리에게 옮겨졌다.
“오냐, 너구나. 요 며칠 내 남편 옆에 착 달라붙어 꼬리를 살살 치던 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여우짓이야!”
백장미의 노기 띤 음성에 우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인돌은 장미를 향해 크게 팔을 가로저으며 ‘X’자 표시를 보냈다. 하지만 장미는 못 본 건지, 못 본 체하는지 꿈쩍하지 않은 채 계속 우리를 쏘아봤다. 그때 다운이 무거운 공기를 걷으며 장미에게 말을 건넸다.
“대표님, 언성을 낮추세요. 지금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꽂혀 있던 장미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운에게 향했다.
“그래요. 당신이라면 잘 알겠군요. 내가 고용한 탐정님. 며칠 동안 미행의 결과를 어디 한번 적나라하게 보고해 보시죠. 저 두 사람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 아주 소상히!”
다운은 최대한 차분한 감정을 유지하며 장미를 넌지시 바라봤다.
“일단, 서서 이러지 마시고요. 앉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다들 소파로 가시죠.”
다운의 제안에 한껏 흥분했던 실내 분위기가 한풀 꺾였다. 그리고 다운은 포함한 4명은 소파로 이동했다. 백 대표가 가장 윗자리에 앉고, 오른쪽으로 정다운, 왼쪽으로 고인돌과 고우리가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다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운은 그동안 자신이 두 남녀를 미행하며 찍은 사진과 동선마다 적어 놓은 수첩을 백 대표 앞에 꺼내 놓았다. 그리고 백 대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했다. 다운의 설명을 들은 백 대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으음. 하아.”
백 대표는 낮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여보. 그리고 우리 씨. 난 그런 줄도 모르고…큰 실례를 했습니다.”
그제야 인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우리의 눈가에선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울먹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같았어도 그런 오해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금방 오해가 풀려서.”
우리의 말에 백 대표는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우리에게는 쉽게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무겁고 깊은 침묵을 깬 건 인돌이었다.
“오해가 풀렸으면 됐어. 당신이나 우리나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니까. 이제 우리가 한 식구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다정하게 지내면 되지 않겠어.”
백 대표와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백 대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우리도 백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반가워요, 아가씨.”
“잘 부탁드려요. 언..니.”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운은 힘껏 박수를 쳤다.
“정다운 소장님. 괜한 일로 시간만 허비하게 만들어 드렸네요. 미안합니다. 어쨌거나 일당은 약속대로 드리겠습니다.”
백 대표는 다운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 늘 하는 일이 이런 건데요. 하지만 이번 의뢰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이런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또 어딨습니까. 너무나 극적인 장면에 저는 그냥 한 편의 드라마를 본 셈 칠게요.”
다운은 그래도 사례를 하겠다는 백 대표의 고집을 겨우 꺾고 밖으로 나왔다.
“저는 이제 서울로 돌아갑니다. 세 분의 앞날에 행복이 깃들기를 바랄게요. 혹시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시고요.”
다운은 펜션 뒷담에 세워둔 차에 올랐다. 백 대표와 인돌, 우리가 떠나는 다운을 배웅했다. 백미러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운은 운전석 창문을 살짝 열고 손을 흔들었다.
“또 봐요. 굿바이~.”
서울로 돌아온 다운은 더 이상 남의 뒤를 밟거나 비밀과 정보를 캐내 돈을 받는 흥신소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금 꿈을 되찾는 일을 돕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수입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 사무실 임대료부터 생활비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운의 사정을 접한 백 대표는 다운에게 사무실 한 칸을 마련해 줬다. 그리고 매달 월세도 후원했다. 4년 전, 정다운 흥신소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