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바꼭질 재단
“이번에 저희 호텔에서 재단을 하나 내려고 해요. 거기 이사장을 정 소장께서 맡아주셨으면 해요.”
“재단 이사장이요? 무슨 재단인가요?”
백 대표의 제안에 다운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꿈을 되찾아 주는 재단이에요. 명칭은 ‘꿈바꼭질’이고요.”
“꿈바꼭질이요?”
“그래요. 어릴 적 자주 했던 놀이였던 숨바꼭질에서 따온 건데요. 술래가 된 사람이 꼭꼭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처럼 숨겨진 꿈이나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려는 겁니다. 정 소장께서 그 술래가 되어 주셨으면 해요.”
다운은 백 대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무실 임대료를 대주고 있는 것도 감사한데, 재단 이사장직까지 제안했으니.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일은 다운이 늘 갈망하는 일이었기에 내심 기뻤다. 다운은 열기가 살짝 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백 대표에게 대답했다.
“대표님, 정말 고맙습니다. 우선 대표님의 가치와 철학에 존경합니다. 그런 뜻깊은 일을 저에게 맡겨주시겠다는 제안도 고맙습니다. 얼마나 성과를 낼 진 모르겠지만, 대표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운영해 보겠습니다.”
다운의 승낙을 받은 백 대표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제주도에서 송년의 밤 행사가 있어서 바로 내려가야 해요.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호텔로 초청해 공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역시 대표님다운 아이디어입니다. 저도 시간이 되면 함께 했으면 하지만, 해결할 일이 하나둘 아니라서요. 오늘 대표님께서 주신 선물도 어떻게 보기 좋게 풀어낼지 검토도 해야 하고요.”
다운의 넉살맞은 대답에 백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정 소장 바쁜 거 나도 다 알아요. 연말인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 부탁도 흔쾌히 들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에요.”
백 대표는 핸드백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내 다운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눈이 휘둥그레진 다운이 물었다.
“연말인데 흥신소 직원들이랑 식사나 한 끼 하세요. 사무실 사정이야 제가 뻔히 알고 있고, 직원들 연말 보너스도 못 줬을 거 아녜요? 소장 자존심이 있죠. 이걸로 소고기 파티라도 하세요.”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 든 다운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대표님, 그래도 이건 좀 부담스럽습니다만…”
“어차피 꿈바꼭질 재단에 흥신소 직원들도 참여해야 할 테니 잘 봐 달라고 드리는 뇌물입니다. 그러니 부담은 조금만 갖고 고기는 실컷 드셔도 됩니다. 호호호.”
자리에서 일어난 백 대표는 다운에게 가볍게 손짓하면서 출입문 쪽으로 걸어 나갔고, 다운은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백 대표가 제안한 ‘꿈바꼭질’ 재단은 새해부터 정다운 흥신소에서 운영하기로 했고, 흥신소 사무실을 같이 쓰기로 했다. 재단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전부 백 대표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지원했고, 필요 인력으로 3명을 모집했다. 다운은 교사 출신인 60대 남성인 소문난 씨를 사무국장에 앉혔다. 또 실무를 담당할 기획팀장으로 대기업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40대 기대감 씨, 경리 업무는 회계사 사무실에서 다년간 경력을 보유한 민들레 씨를 각각 채용했다. 이들과 함께 흥신소 직원인 유쾌한 사무장과 진달래 주임, 재단 이사장인 다운까지 6명이 재단 초대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재단 출범식은 저녁을 곁들인 상견례로 대신하기로 했다. 상견례 장소는 달래의 선배가 운영하는 삼천리 연탄구이에서 열렸다. 식당 사장 상철과 종업원 영철은 단골과 새로운 손님들 맞이에 낮부터 분주했다. 그래도 연초부터 단체 손님 예약에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식당 앞에서는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모를 커다란 눈사람과 열 마리의 눈오리들이 쪼르르 줄을 서 있었다. 새해 첫날의 해가 도시의 건물 뒤 편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식당 안에는 꿈바꼭질 재단 사람들만 있었다. 상철은 새해 첫날 딸 달래와 하루 쉴 생각이었지만, 흥신소 주임 진달래의 전화에 식당 문을 열었다. 손님 6명에 상철과 영철까지 8명이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불판 위에서는 먹음직한 고기가 하얀 연기를 피워올리며 지글지글 익어갔다. 꿈바꼭질 재단 이사장인 다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중들의 시선이 다운에게 쏠렸다.
“자,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은 모두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올해는 정다운 흥신소뿐만 아니라 꿈바꼭질 재단이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꿈을 찾는 데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고단하고 쉽지 않은 길일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원팀’으로 힘을 모아 헤쳐갑시다. 다들 자신 있으시죠?”
“네~~~”
“그런 의미에서 건배하겠습니다. 다들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채워 주시지요.”
잔이 모두 채워진 걸 확인한 다운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인사말은 제가 했으니 건배 제안은 이 자리의 최연장자인 소문난 사무국장께서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소문난 사무국장은 순간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참석자들 모두가 박수를 치자 용기를 얻은 듯 슬며시 잔을 들고 일어섰다.
“준비도 못 했는데 갑자기 건배사를 하라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현역에서 은퇴한 저에게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정다운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일할 여러분들께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사장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저희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힘을 내서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거라고 봅니다. 사무국장이라는 직을 떠나 그간 살아온 인생 여정과 교직 경험을 살려 재단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 국장의 일장 연설이 길어지자 쾌한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국장님! 누가 교장선생님 출신 아니랄까 봐 훈시가 길어요. 술잔 들고 있는 저희는 팔 떨어지겠어요.”
좌중이 까르르 웃는 소리에 소 국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알았다는 제스처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습관을 고치는게 쉽진 않네요. 흐흐흐. 자, 건배하겠습니다. 정다운 흥신소와 꿈바꼭질 재단의 성공적인 운영과 모두의 꿈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시작한 재단 상견례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밤 열 시가 넘었을 때, 참석자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흥신소 직원 다운과 달래, 쾌한, 그리고 상철과 영철이었다. 달래는 카운터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 상철을 흘끔 바라봤다.
“상철 선배. 대충 정리하고 와서 한잔 하세요.”
“응? 아, 그래. 잠깐만.”
상철은 달래의 부름에 쓰던 장부를 덮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들고 달래 옆자리로 와 앉았다. 다운이 상철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미안해요. 새해 첫날 쉬지도 못하고 가게 문 열게 해서.”
“아유, 아닙니다. 놀면 뭐합니까, 한 푼이라도 벌어야죠.”
상철의 말에 살짝 취기가 올라 볼이 발개진 달래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선배! 너무 돈, 돈 하지 마세요. 그렇게 돈타령만 하다가 정작 본인의 꿈은 언제 이룰 건데요?”
“꿈? 사장님 꿈이 뭔데?”
쾌한이 상철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꿈이랄 게 뭐 있나요. 그저 저희 식구들 건강하게 잘 지내면 되는 거죠.”
달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곤 앞에 놓인 소주를 단숨에 비우며 상철을 쏘아 봤다.
“작가의 꿈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건 포기한 거예요? 선배 꿈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잖아!”
“야,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냐. 나 정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다운은 한숨을 쉬며 말을 뱉는 상철이 안쓰럽게 보였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그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꿈바꼭질 재단 첫 수혜자는 정상철 씨로 하는 거 어때요? 잃어버린 작가의 꿈을 이루어 주는 겁니다. 어때요?”
다운의 제안에 달래와 쾌한은 “그거 괜찮네요”라고 화답했고, 상철과 옆에 있던 영철의 눈은 동시에 커졌다.
“아니,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요. 저보다 다른 분들 꿈부터 찾아주세요. 저는, 아직은, 괜찮습니다.”
상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괜찮긴 뭘 괜찮아요. 언제까지 꿈을 미루면서 살 거예요? 선배만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랑 달래 생각도 좀 해요?”
달래가 화를 내며 몰아붙였다. 쾌한이 흥분한 달래를 달래듯 가볍게 등을 두드렸고, 다운은 상철의 표정을 살폈다.
“정 사장님! 사장님께서 저희와 아는 사이라고 해서 특혜를 주려는 게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첫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사장님의 지나온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진 주임이나 또 사장님의 인품을 아는 저희로서는 첫 대상자고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한 얘기예요. 물론 내일 재단 회의 때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야 가능하지만, 다른 분들도 큰 이견을 없을 듯합니다. 그러니 사양하지 마세요. 작가라는 꿈,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도전해 보시죠.”
상철은 다운의 따듯한 말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금세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달래가 놀리기 시작했다.
“어? 선배. 지금 울어? 설마 감동 받은 거야?”
“야,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아냐 임마.”
“아니긴 뭐가 아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고만. 얼레리꼴레리~”
달래의 농담에 상철은 연신 손사래를 쳤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다운과 쾌한, 영철이 깔깔대며 웃었다. 삼천리 연탄구이는 자정이 넘어서 셔터를 내렸다. 모두가 돌아간 뒤 상철은 텅 빈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따라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내 꿈을 미룰 순 없지. 그래, 한 번 해보는 거야. 정상철, 넌 할 수 있어!’
상철은 새벽녘 집에 들어갔다. 불 꺼진 안방 문을 슬며시 열었다. 딸 달래가 할머니 품에 폭 안겨 잠들어 있었다. 달래는 무슨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연신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상철은 비스듬하게 기운 딸의 베개를 똑바로 잡아주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굿 나잇, 마이 프리센스.’
꿈바꼭질 재단은 첫 사업으로 상철의 꿈을 돕기로 했다. 독립출판사를 만들어 상철의 작품을 책으로 엮기로 했다. 상철이 쓴 원고는 이미 책 몇 권 분량이 나올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재단과 상철은 첫 번째 책에 집중했다. 상철과 달래 대학 후배이며, 편집 경험이 있는 영숙이 독립출판사 사장을 맡아 편집과 디자인 등 전체적인 작업을 주도했다. 3월까지 모든 작업을 마친 뒤 드디어 첫 책이 나왔다. 상철은 자신이 쓴 글이 책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온다는 자체에 들뜨고 설렜다. 그래서 파주 출판단지 내 인쇄소를 직접 찾아가 작업 과정을 직접 확인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쇄기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드디어 처음 나온 책을 받아 든 상철의 눈에는 눈물이 담뿍 고였다. 언제 왔는지 다운과 달래, 쾌한이 상철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출간을 축하합니다, 최 작가님.”
다운이 감격에 겨워하는 상철에게 인사를 건넸다. 상철은 책 출간을 도와주고, 인쇄소까지 직접 찾아와 준 사람들이 무척 고마웠다.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상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찰랑거렸던 눈물이 기어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달래는 상철에게 손짓 몸짓하며 무슨 말을 전했지만, 인쇄기 소리에 묻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무슨 소리인진 몰라도 상철은 달래의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말만 했다.
상철의 책은 전국의 독립서점에 깔렸다. 재단 직원들이 발품을 판 결과였다. 동네 책방을 비롯한 독립서점에서 상철의 책 판매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출간 일주일째, 상철의 신간은 공중파에 소개됐다. 곧이어 북 콘서트와 유튜브 등으로 홍보가 이어지면서 서점가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재단의 역할이 컸다.
그의 작품은 인기 도서 인플루언서와 각종 SNS에 해시 태그와 주요 키워드로 검색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출간 한 달 만에 유명 서점 매대에 놓이기 시작했고, 단숨에 베스트셀러 차트에 올랐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꿨던 상철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의 책이 에세이 분야 첫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릴 순간, 재단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누구보다 꿈 같은 꿈을 이룬 상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철은 탈탈거리는 자가용을 굴려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추모 공원을 찾았다. 그는 아버지의 납골함 앞에 책을 올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버지, 드디어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 이제 제 걱정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납골함 옆 작은 액자 속 아버지는 상철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