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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un 16.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달려라, 유쾌한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쾌한은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다운의 전화가 걸려 온 줄도 모르고. 한 손에는 팝콘 상자, 다른 한 손에는 콜라를 홀짝거리며. 금방이라도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어 갈 듯한 사람처럼. 화장실이 급해진 쾌한은 그제야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다운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소장님, 전화하셨네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수화기 너머 시끄럽게 들리는 배우들의 난투극 소리에 다운은 핸드폰을 멀찌감치 떨어뜨렸다. 

“사무장님, 또 넷플릭스 보고 계셨어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전화기로 소리가 다 들리거든요.”

“아, 헤헤. 저야 뭐 집에 오면 할 일도 없고, 밀린 드라마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니까요.”

쾌한은 주먹에 쥔 팝콘을 한두 개 입 안에 털어 넣고는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했다. 쾌한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진다는 듯 다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소장님, 그렇게 몇 시간씩 앉아만 있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게다가 인스턴트 음식까지 드시면 살도 찌고요. 운동 좀 하세요.” 

쾌한은 다운의 잔소리가 지겨웠다. 다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같은 소리를 자주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러게요. 운동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몸이 움직여 주질 않네요.”

수화기를 든 쾌한이 머쓱한 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무장님,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합시다.”

“네? 소장님이랑 제가 뭘 같이 해요?”

“달리기요!”

“달리기? 제가요? 에이,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일 싫어하는 게 달리기예요. 다른 운동은 몰라도 달리기는 정말 싫어요.”

“달리기만큼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운동도 없어요. 살도 잘 빠지고요. 제가 친절하게 알려드릴 테니, 저녁때 1시간만 투자해 봐요. 딱 한 달만 하면 몰라볼 정도로 몸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쾌한은 다운의 제안에 잠시 망설였다. 어릴 때부터 운동회에서 달리기만 하면 늘 꼴찌만 하던 그였다. 뒤뚱거리며 맨 마지막으로 결승선에 들어섰을 때, 그를 바라보며 웃던 친구들 때문에 덩지 큰 플라타너스 뒤에 숨어 울기도 했다. 그다음부터 그는 달리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버스나 지하철을 뛰어가 타지 않았다. 맘편히 놓치고 다음 차를 기다렸다. 군대도 면제를 받아 구보 한 번 한 적 없는 그였다.      

하지만 차츰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매일 저녁 술자리에 가거나 드라마에 꽂혀 사는 인생도 무의미하다고 느낀 그였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지방간과 콜레스테롤, 혈압 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 쾌한은 다운의 전화를 끊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벽에 걸린 달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근육질의 남성과 늘씬한 여성이 육체미를 자랑하며 쾌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당신도 이런 몸매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순간 그의 얼굴 근육이 살짝 실룩거렸고,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감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까짓것!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해보죠, 뭐!’ 

쾌한은 곧바로 다운에게 카톡을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30년 만에 달리기를 맘먹은 그의 표정에는 설렘과 동시에 비장한 각오가 서렸다. 쾌한은 다음 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스포츠 매장에 들러 운동화와 반바지, 티셔츠를 구입했다. 달리기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쾌한은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이따금 폴짝폴짝 뛰기도 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운과 달래는 쾌한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자신감을 북돋아 줬다. 다운과 쾌한은 다음 날부터 사무실 근처 운동장을 달리기로 했다. 쾌한의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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