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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Dec 31. 2023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천방지축 나미진

행복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안에 담임교사와 한 남성이 들어섰다. 낯선 남성의 정체를 모르는 학생들은 담임교사만 바라봤다. 

“자, 오늘부터 진로 직업 교육을 할 거야.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이고, 겨울 방학이 끝나는 한 달 동안 진행할 거예요. 오늘은 첫 시간으로 탐정이란 직업을 알아볼 건데요. 옆에 계신 멋진 분이 강의해 줄 탐정님이세요. 직접 소개하실래요?”

담임교사 눈짓에 다운은 가볍게 목례한 뒤 학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정다운 흥신소 소장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운이 짧게 자기소개를 마치자 담임교사가 말을 받았다. 

“정다운 소장님은 오늘하고 다음 주, 2주간 탐정이란 직업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실 거예요. 어렵게 모신 분이니까 말씀 잘 듣고,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라요.”

담임교사는 다운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교실을 떠났다. 

“자, 반장 일어나서 인사해 볼까요?”

다운은 서른 명 안팎인 학생들을 훑어보며 반장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한 여학생이 의자를 뒤로 쑥 밀고 일어났다. 작은 체구에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모범생 모습이었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세요.”

“그래요. 제 소개는 좀 전에 간단히 했으니 출석부터 불러 볼게요. 얼굴도 읽힐 겸.” 

다운이 방과 후 수업 파일 사이에 끼어있는 출석부를 들어 올렸다. 

“쳇. 자기가 무슨 선생인 줄 아나 봐?”

맨 뒷줄에 앉은 덩치 큰 녀석이 다운에게까지 들리도록 빈정거리며 말했다. 녀석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몇 명이 우습다는 듯 키득거렸다.

“거기, 학생! 자네 이름이 뭔가?”

“저요? 제 이름이요? 탐정님이니까 한 번 알아맞혀 보세요?”

이번에는 더 많은 학생이 까르르 웃었다. 어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또 어떤 아이들은 책상을 치면서 요란법석을 떨었다. 

“탐정이 학생들 이름 맞히는 사람은 아닌데. 자, 그럼 다시 출석 부르겠습니다.”

다운은 가미령, 김나운, 노은경, 도진훈...가나다 순으로 적힌 명부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린 이름 ‘천태산’. 아까 다운에게 빈정거렸던 남학생이었다. 다운은 대답 없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태산을 쏘아보았다. 태산도 물러서지 않고 능글맞게 이죽거렸다. 

“천태산은 결석했나? 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거지?”

“그거야, 제 맘이죠. 왜요? 자존심 상해요? 수업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

순간 교실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태산은 행복중학교 일진인 듯 보였다. 학생들은 태산과 다운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안 되겠군. 천태산, 너 이 녀석. 앞으로 나와.”

태산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껄렁거리며 다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힘을 돋우는 병사들처럼. 

“이 녀석 참 무례하구나. 그래도 수업하러 온 선생님께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지?”

“선생님? 강의 한 번 하러 온 주제에 왜 꼰대처럼 구실까? 대충 한 두 시간 떠들다 강사료나 받고 조용히 가세요.”

“너희들을 가르치러 온 이상, 그 시간만큼은 나는 선생이고, 너희는 제자야. 그러니 듣기 싫은 수업이라도 방해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누가 그 잘난 수업을 듣고 싶어 한다고. 야, 너희들 중에 탐정 되고 싶은 사람 있어? 있으면 어디 손 들어봐!”

태산은 뒤로 돌아 학생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따져 물었다. 태산의 위압감에 눌린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주뼛거리며 손을 올렸다. 

“저기...난, 탐정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수업은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태산은 화들짝 놀라 홱 돌아섰다. 아이들의 시선도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현재였다. 

“아 후, 저게 또 분위기 파악 못하고 깝 치네. 얼마나 두드려맞아야 정신 차릴래, 엉?”

“자, 자 조용. 그만해. 내 수업을 듣고 싶다는 저 학생을 위해서라도 난 강의를 해야겠다. 천태산, 넌 그만 자리로 돌아가.”

태산이 고개를 푹 숙였다가 턱을 양옆으로 돌리며 현재를 노려봤다. 태산과 눈이 마주친 현재는 겁에 질린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다운은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어진 돌발상황에 살짝 당황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수업을 진행했다.

“여러분, 혹시 ‘흥신소’라는 이름 들어본 사람 있나요?”

아이들은 생경하다는 듯 저희끼리 ‘흥신소? 그게 뭐래?’라며 수군거렸다.

“익숙하진 않을 거예요. 여러분 일상과는 그리 밀접한 일을 하는 곳은 아니니까. 흥신소는 쉽게 말해 탐정업을 하는 곳이에요.” 

“그럼 선생님이 명탐정 코난이예요?”

한 여학생의 농담에 조용했던 교실이 또 한 번 떠들썩했다. 

“그래요. 그렇게 이해하는 게 쉽고 빠를 수도 있겠네요.”

다운은 USB를 교실 안 컴퓨터에 꽂고, 전자 칠판에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띄웠다. 첫 장에는 ‘탐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경찰서에 가면 형사님이 계시죠? 형사가 사법 조사원이라면 탐정은 민간 조사원이에요. 형사는 의뢰자의 요청을 받아 사건 사고를 조사하고, 관련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합니다. 유명한 탐정이라면 아까 어떤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코난 도일이나, 셜록 홈즈가 있죠.”

그러자 다운에게 코난이냐고 물었던 여학생이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럼 탐정님은 코난이나 셜록홈즈처럼 유명하세요?”

“음…제가 유명했다면 여러분들이 저를 못 알아볼 리 없었겠죠? 저는 유명한 탐정이라기보단,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하하하. 야, 들었냐? 잃어버린 꿈을 찾아 준댄다. 탐정이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안 그러냐?”

교실 안은 또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조용. 조용히! 이래선 진도를 나갈 수가 없잖아.”

“진도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어차피 여기 있는 애들 탐정이란 직업에 전혀 관심 없으니까요. 저 또라이 계집애만 빼고.”

투명 매니큐어를 칠한 한 여학생이 다운 대신 손거울을 쳐다보며 이죽거렸다. 

“넌 또 누구니?”

그녀 역시 태산처럼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운은 출석부를 꺼내 학생의 이름을 떠올렸다. 

“너, 이름이 혹시 나애리니?”

애리 대신 다른 학생들이 눈짓으로 ‘맞다’라고 일러줬다. 

“나애리, 너도 참교육이 필요한 아이 같구나.”

애리는 다운의 말에 삐친 듯 눈을 치켜떴다. 

“참교육? 참교육 같은 소리하시네. 기가 막혀서. 기껏해야 방과 후 강사 주제에!”

“뭐라고? 주제?”

“그래요. 주제! 얼마나 일거리가 없으면 학교까지 와서 재미없는 탐정 얘기나 떠들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듣기 싫은 사람들은 냅두고 그냥 혼자서 떠들라고요.”

“너, 이 녀석!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특강 하러 온 강사한테도 이런데, 학교 선생님들한테는 오죽할까.”

“쌤들한테는 안 그래요. 쌤들도 우릴 안 건드리니까.”

“정말, 구제 불능이군.”

다운은 건방지게 구는 애리에게 혀를 내둘렀다. 그러자 애리와 단짝인 정미란과 최예진이 거들고 나섰다. 

“강사 쌤. 적당히 하고 가셔요. 정말 우리는 그쪽 분야에 1도 관심 없으니까요. 심심하면 나가서 우리랑 담배라도 하나 꼬실리던가.”

“뭐라고? 담배? 정말 이 녀석들이!”

애리와 미란, 예진은 학교에서 ‘나미진 트리오’로 유명했다. 천태산 역시 방기남과 지용산, 추종만과 함께 교내 ‘천방지축 클럽’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이들 일곱 명은 ‘천방지축 나미진’이라고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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