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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r 10.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리어카 끄는 노파

쾌한은 혼자 공원을 거닐었다. 바람이 차서인지, 공원에 사람이라곤 그 혼자였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쾌한은 잠시 쉴 겸 미끄럼틀 옆 벤치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지만, 집에 두고 나왔는지 아무리 뒤적거려도 잡히지 않았다. 

“몸에도 안 좋은 거, 이참에 끊어야지.”

쾌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끄적거렸다. 그가 좋아하는 웹툰 연재의 업데이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사이 저 멀리에서 공원 쪽으로 리어카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노파가 리어카를 끌고 공원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힘에 부쳐 보였다. 리어카는 잔뜩 실린 파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 바르르 떨었다. 그때마다 노파는 비틀거렸다. 쾌한은 본능적으로 노파 쪽으로 뛰어갔다. 

“아휴, 하마터면 다 쏟아질 뻔했네.”

쾌한이 한쪽으로 넘어가려는 리어카를 애써 붙잡으며 말했다. 

“으이그. 고맙습니다.”

머리가 새하얀 노파는 쾌한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할머니는. 지난번에 뵀던.”

노파는 쾌한이 며칠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적이 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아침, 노파는 우산도 없이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었다. 출근길에 그 모습을 본 쾌한은 자기 우산을 노파 손에 쥐여줬다. 그리고 아파트 언덕길까지 직접 끌고 올라가 주차를 해 놓은 다음, 우산도 돌려받지 않은 채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이구, 젊은 총각을 여기서 보네. 또 신세를 지고….”

“신세는요. 아무튼 큰일 날 뻔하셨어요. 조금만 실으시지.”

노파는 쾌한의 말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쾌한은 리어카를 공원 한쪽에다 세워놓고 노파를 데리고 자판기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밀크커피를 한잔 빼서 건넸다. 

“아휴. 이게 뭐래요. 이렇게 안 해도 되는구먼….”

“괜찮아요. 할머니, 저랑 저 의자에 가서 조금만 쉬었다가 가세요.”

쾌한도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더 뽑은 뒤 노파를 데리고 그가 앉아 있던 벤치로 모셨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어때요? 맛있죠?”

“그렇네, 젊은 총각이 빼 주니까 더 맛나네. 흐흐흐.”

“할머니, 제가 총각은 맞는데요, 젊은 총각은 아니에요. 저도 낼모레면 오십이에요.”

“아이고야, 그래? 내 눈에는 서른 살밖에 안 돼 보이는구만.”

“농담인 거 다 알아요. 그래도 듣기는 좋네요. 근데, 할머니. 오늘 같은 휴일에는 댁에서 좀 쉬시지요.”

“에이그. 그런 말 말아요. 난…편히 쉴 수가 없는 늙은이라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댁에 자제분들 안 계세요?”

“응, 음써…손녀딸이랑 둘이 살아요.”

순간 쾌한은 실언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아, 그러셨군요. 죄송해요.”

“아냐, 아냐. 알지도 못했는데, 왜 죄송할 일이야. 내 처지가 좀 그렇다는 거지.”

노파는 쾌한은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려고 했다. 쾌한은 그런 노파의 손목을 잡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날씨가 추워요. 이거하고 가세요.”

쾌한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빼 노파의 목에 둘렀다. 

“아냐, 아냐. 이렇게 안 해도 돼. 괜찮아. 암시랑도 않다고.”

노파는 쾌한의 성의를 애써 마다하려고 애를 썼지만, 쾌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안 괜찮아요. 우리 엄마 같아서 그래요. 우리 엄마도 혼자 저를 키우셨거든요.” 

그 말에 노파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한 채 얌전해졌다. 그 틈에 쾌한은 자신의 어머니가 손수 짜 만든 목도리를 노파의 목에 단단히 맸다. 

“자, 예쁩니다. 그렇게 하고 다니면,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거예요.”

노파의 눈가에 눈물이 가릉거렸다. 

“고마우이. 젊은이는 참 착한 사람이야. 참 고마우이.”

노파는 쾌한에게 허리를 몇 번이나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쾌한은 공원 한 귀퉁이에 세운 리어카를 끌었다. 그리고 노파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리어카를 몰았다. 쾌한와 노파의 이마와 입가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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