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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Apr 07.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백장미

다운은 제주도 성산 일출봉 주차장에 있었다. 남편의 불륜 증거 수집을 의뢰받고 현장 조사를 나온 참이었다. 초봄의 제주 날씨는 찼다. 그래서인지 유명 관광지로 소문이 났어도 비교적 한산했다. 주차장 주변에 노란 유채가 흐드러졌다. 다운은 차 안에서 성산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제주에 가지고 있는 추억이란 건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왔던 기억이 유일했다. 며칠 전 바람을 쐬러 휴가차 온 게 그의 두 번째 제주 여행이었다. 휴가 동안에는 푹 쉬고 싶다고 마음먹고 내려온 제주행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걸려 온 의뢰 전화는 공교롭게도 발신지가 제주였다. 육지에서 온 의뢰였다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마침 와 있는 제주에서 일거리가 들어왔으니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제주는 섬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면 2시간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만큼 지리를 잘 몰라도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그도 어려우면 렌터카에 달린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면 된다. 관광지라서 차량 속도도 높일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미행하기 편하다는 얘기다. 다운이 성산까지 온 과정도 그런 지리적 이점이 얼마간 작용했으리라. 다운이 미행한 차량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남자는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머리숱이 적었다. 검은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여자는 20대 초반처럼 보였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원피스 위에 파카를 걸쳤고,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커플은 손을 잡고 주변을 거닐었다. 다운은 조수석에 있던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여자의 손을 꼭 쥔 남자의 손목이 꽤 굵었다. 왕년에 주먹깨나 썼나 싶을 정도로. 


‘벌건 대낮에 딸뻘 되는 여자랑 손잡고 한가롭게 놀러나 다니다니!’


다운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입을 실룩거렸다. 주변을 걷던 다정한 커플은 유채꽃밭으로 향했다. 활짝 핀 유채밭에 들어간 그들은 환하게 어느 관광객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남자와 여자는 활짝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했다. 사진을 찍은 그들은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운도 카메라를 집어넣고 그 뒤를 조심히 따랐다. 바다에선 파도가 일렁였고, 차가 지나지 않는 길 위에는 적막이 흘렀다. 하얀 구름이 밀물에 떠밀리듯 바다에서 육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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