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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un 30.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달려라, 유쾌한

집으로 돌아온 다운은 쾌한의 꿈이 이루어질 방법을 궁리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꿈바꼭질 재단이 주최하는 전국 마라톤 대회를 열기로 했다. 다음 날 재단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다운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대회 명칭은 ‘제1회 꿈길 마라톤 대회’입니다. 달리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종목은 5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 하프 코스로 하겠습니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내년 대회부터는 풀코스도 도입하겠습니다. 참가비는 받지 않습니다. 재단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다운의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은 모두 박수로 호응했다. 가장 들떠 있는 사람은 단연 유쾌한이었다. 쾌한은 벌써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쾌한을 바라보던 다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그래, 이거야. 이제 됐어.’

그로부터 3개월 후. 흥신소 인근 종합운동장에 1천 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운동장 위에는 대회 이름이 적힌 커다란 애드벌룬이 둥실 떠 있었다. 대회 취지를 접한 기업과 단체에서 행사 기념품과 간식을 제공했다. 대회 안내와 지원을 돕고 싶다는 자원봉사자 50여 명이 노란 조끼를 입고 나왔다. 행사장 한쪽에선 꿈바꼭질 재단과 어르신 문해교실을 운영 중인 대학의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이 스포츠 마사지로 참가자들의 몸을 풀어줬고, 인근 병원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의료진과 앰뷸런스를 보냈다. 

오전 8시. 운동장 중앙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밸리댄스 공연이 시작됐다. 상철의 딸 달래가 또래 아이들 사이에 끼어 날렵하게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상철은 흥신소 식구들과 함께 딸의 공연을 넋 놓고 바라봤다. 

“선배, 달래는 언제부터 밸리댄스를 배운 거야? 실력이 장난 아닌데?”

“따로 배운 건 아니고. 유치원에서 가르쳐 준 건데 곧잘 하더라고. 집에서 유튜브 영상보고 따라 하는 건 봤는데, 저렇게 잘할 줄은 몰랐네.”

상철은 싱글벙글하며 딸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참에 제대로 가르쳐 봐요. 혹시 알아, 대한민국 최고 밸리댄서가 될지?”

달래의 격려에 상철은 흥에 겨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무대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밸리댄스 공연이 끝난 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대회 시작을 알렸다. 

“상쾌한 아침입니다. 전국에서 오신 참가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 이곳에선 ‘제1회 꿈길 마라톤 대회’가 곧 시작됩니다. 대회 시작에 앞서 뜻깊은 대회를 마련해 주신 꿈바꼭질 재단 정다운 이사장님의 축사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힘찬 박수로 맞아 주기 바랍니다.”

러닝 복을 입은 다운이 무대로 올라가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시선이 모두 다운에게 쏠렸다.

다운은 살짝 헛기침을 한번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방금 소개받은 정다운입니다.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시민입니다. 살다 보니 자신의 꿈이 무언지도 모르고 사는 분도 만났고, 이루고 싶은 꿈은 있지만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분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하나씩의 꿈은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대개는 하루아침에 이루기 힘든 꿈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이루기 힘드니까 ‘꿈’이 아닐까요? 오늘 하루 맑은 공기 마시면서 신나게 뛰어보세요. 그 길 위에서 뛰면서 여러분의 꿈이 뭔지, 그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도 세워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합니다. 다치지 않게 조심히 뛰고, 모두 행복한 꿈을 찾아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파이팅!”

다운의 말에 참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드디어 대회를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하프 코스부터 출발했고, 10킬로미터와 5킬로미터 순으로 이어졌다. 쾌한과 다운은 10킬로미터에 출전했고, 상철은 모친과 딸 달래와 함께 5킬로미터에 참가했다. 장미래와 장현재 자매를 비롯해 행복중 ‘천방지축 나미진’ 모두가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달렸다. 천수만 회장도 직원들과 함께 회사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힘차게 뛰었다. 

호수를 끼고 도는 코스는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쾌청한 날씨는 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백발의 어르신부터 젊은 연인, 청소년들로 보이는 학생들,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뛰는 가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도로를 누볐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뛰기보다 걷기가 편한지 담소를 나누며 대회를 만끽했다. 중간중간 물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보였고, 사물놀이패는 북과 꽹과리를 치며 힘을 실었다. 건각들의 힘찬 레이스 속에 다운과 쾌한도 힘차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쾌한은 다운과 함께 한 지난 몇 달 동안의 훈련과 연습이 큰 힘이 된 듯싶었다. 5킬로미터 구간을 지날 무렵, 다운은 쾌한의 상태를 물었고, 쾌한은 엄지를 들어 보이며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1시간여 만에 쾌한은 난생 첫 마라톤 1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다. 쾌한은 넓은 운동장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그래도 행복했다. 다운이 그에게 완주 메달을 걸어주었을 때, 흥신소 직원들이 박수를 보내줄 때, 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모두 고맙습니다. 제가 드디어 마라톤 완주라는 꿈을 이루었네요. 소장님, 저 내년에는 풀 코스 도전할 겁니다. 아, 정말 기분 짱입니다, 짱!”

쾌한은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먼저 도착한 상철 가족, 행복중 학생들, 천수만 회장과 직원들도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포토 존에서 다양한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린 달래의 미소 사이로 보드라운 햇살이 수천수만 갈래로 스르르 부서져 내렸다. 처음 열린 마라톤 대회는 단 한 명의 낙오자나 부상자 없이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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