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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환초

귀향2

by 류재민

을씨년스러운 바닷바람이 스치는 갑판 위, 담양 댁은 기진맥진하며 난간을 꼭 붙들고 있었다. 언제나 당찼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이마에 주름골이 깊숙이 패였다. 머리카락은 바람에 산발해 어지럽게 흩날렸다. 선체가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어깨도 따라 움찔했다. 손등은 식은땀에 잔뜩 젖었고, 눈은 멀리 수평선을 향한 채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슴속 깊이 요동치는 울렁거림을 짓누르려는 듯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지만, 짠 내 섞인 비린내가 폐로 들어오자 얼굴은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배가 기우뚱거릴 때마다 이리저리 휘둘렸다. 작은 파동 하나에도 중심을 잃고,

금방이라도 기력이 빠져 주저앉을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라도 흔들림이 멈추기를, 어서 빨리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기를, 매우 간절히 바라는 표정이었다.

“을매나 더 가야하는가? 배도 디집어지고, 내 속도 디집어지겄네, 참말로.”

담양 댁은 뱃멀미를 자주 했다. 파도가 거세지면 메스꺼움과 두통이 몰려왔다. 누워도 앉아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마른 구역질을 연신 했지만, 먹은 게 없어서인지 걸쭉한 침만 나올 뿐이었다. 동영은 담양 댁이 멀미할 때마다 생강 달인 물을 먹였다. 그걸 먹고 나면 잠시 속이 가라앉았지만, 물결이 높아지면 담양 댁은 다시 눈이 시뻘겋도록 게욱질을 했다. 그렇게 담양 댁이 멀미와 싸우고 있을 무렵, 동영은 고향에 돌아가면 할 일을 생각했다.

“조선이 독립했다고 하니, 뭘 해도 입에 풀칠은 하지 않겄어?”

순팔이 마른 멸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동영은 뱃속 편하게 귀향을 즐기는 순팔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하지만, 해방된 조선과 그의 고향 땅에서 시작할 새로운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다.

“땅이 있어야지. 그래야 농사를 짓고 밥을 굶지 않지.”

동영의 말에 순팔은 천진난만 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야야. 심들게 무슨 농사를 짓는다냐. 나랑 제빵기술 배워 빵 공장을 채리 보자. 뭐니 뭐니해도 먹는장사가 남는 겨.”

동영은 순팔의 빵 공장 얘기에 솔깃했다. 먹는 게 남는다는 말도 그럴싸하게 들렸다.

“빵기술은 워디서 배운댜?”

“어디서 배우긴, 빵집 가서 배우지. 종업원으로 들어가서 이삼 년 일하면 곰보빵 맹길 줄은 알 거 아닌감? 그간 모은 돈으로 자네랑 나랑 동업을 해 보자는 말이지, 워뗘?”

동영은 순팔이 하는 말이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순팔 정도면 성격도 화통하고, 영업 수완도 좋아 동업을 해도 망할 염려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흠, 빵공장이라.”

동영은 해지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바닥이 훤히 드러날 만큼 맑았다. 그날따라 바다 위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듬성듬성 뜬 새털구름은 바람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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