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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현 Feb 14. 2024

큰딸 시아에게 들려주고 싶은 와인 이야기 6

‘와인 맛을 완성하는 서사’

‘와인 맛을 완성하는 서사’


사람마다 입 맛이 다르고, 심지어 같은 사람이 같은 것을 먹는데도 때에 따라서 덜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어.

오늘 아빠는 ‘와인의 맛’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해.


하루를 살아가면서 먹는 것만큼 중요하고 반복적인 행위는 드물어. 그 만큼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인데도 의외로 우리가 하는 맛의 표현은 제한적이고 상투적인 경우가 많아.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아마 ‘맛있다’, ‘맛없다’일 정도로.




아빠가 실제 겪었던 일이야.

한 백화점 와인 매장이었고,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싶어서 평소에 자주 먹던 와인을 제쳐 두고 다른 와인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

“어떤 와인 찾으세요?”

“평소에 안 먹어본 와인이라 생소한데 이 와인은 맛이 어때요?”

“맛있어요.”

“.....???”

“이 와인 정말 맛있어요!”


매우 간결하고 확실한 답변이었어.

너무 간결하고 확실해서 정작 맛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힘든 답변이랄까.

그 직원은 분명 맛있게 마신 와인이었을 텐데 어떤 요소들 때문에 맛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아빠는 그만 맥이 풀려 버렸지.

만약에 맛에도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가 있다면, 점진적인 전개없이 곧바로 결론으로 넘어가 버려서 전혀 몰입이 안되는 상황이랄까.




그럼 와인 맛을 맛있게 느끼게 하는 ‘맛 외의’ 요소들은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빠처럼 서사 구조에 익숙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와인을 소개할 때 최대한 돋보이려고 여러가지 기승전결의 서사 장치를 사용해.

이런 저런 요소들로 인해서 그 와인 고유의 맛이 난다는 설명이야.

그 중 두 가지만 얘기해볼게.


먼저,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품종.

사과의 맛이 품종에 따라 다른 것처럼, 포도의 품종을 달리하면 와인 맛도 달라져.

레드 와인을 만드는 여러 품종들 중에서 까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이라는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주로 진한 검붉은 색을 내고 검은색 과일, 민트, 피망 (충분히 익지 않은 포도를 사용한 경우) 등 묵직한 맛이 나고, 반면에 피노 누아 (Pinot Noir)라는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밝고 투명한 붉은 색을 내고 산딸기, 체리, 새콤달콤, 꽃 등 화사하고 경쾌한 맛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또 다른 요소는, ‘떼루아 (terroir)’라는 개념인데, 이 프랑스어 개념을 극도로 단순하게 표현하면 ‘포도가 자라는 환경이 다르면 결과물도 달라진다.’ 정도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어.

이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특히 강조되는 곳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Bourgogne)라는 유명 와인 산지인데, 이 곳의 특징은 와인을 만들 때 여러 포도 품종을 섞지 않고 단일한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드는 거야.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 한 품종,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 (Chardonnay) 한 품종.

비록 같은 포도 품종으로 만들었지만, 포도가 자라는 땅이나 주변 기후, 포도를 기르는 사람들의 전통에 따라서 다른 맛을 가진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개념이야. 실제로 이 개념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아주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져서 같은 피노 누아 품종의 부르고뉴 레드 와인이라 하더라도 떼루아에 따라서 몇 만원부터 몇 천만원까지 값이 달라져.




아빠는 단순하게 두 가지의 ‘와인 맛의 서사’ 요소를 들었지만, 이외에도 와인 생산자, 역사, 숙성하는 방식, 와인과 음식의 어울림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무궁무진해.


이런 요소들을 알고 적절히 녹여내면 와인을 마실 때, 무한 반복되는 ‘이 와인 맛있어요’를 넘어서 자신만의 고유한 ‘와인 맛의 서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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