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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06. 2021

어느 영어학원 원장의 상담



3월부터 새 학기 시작이다.

1년 중 가장 신입생이 많은 달이다. 오늘도 한 어머니께서 학원 상담을 오셨다. 학원을 쇼핑하시는 어머니였다. 오랜 기간 영어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어머니와 10분 정도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떤 유형인지 알 수 있다. 직업병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른 학원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와 뒷담화부터 시작된다.

다른 학원에 대해 궁금해하는 원장이야 너무나 도움이 되는 정보이겠지만, 난 사실 궁금한 게 없다. 경쟁학원의 커리큘럼을 안다 해도 그대로 따라 할 수 없다. 강사와 학원 전체의 조직력도 달라서 겉으로 보이기에 좋아 보이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정작 도입하면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학원의 경쟁력은 매일 우리 아이들이 조금씩이라도 늘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는데서 출발한다. 어머니가 믿고 보내셨으니 학원비가 아깝지 않게 해야 한다.



어머니의 말씀이 계속된다.

예전엔 우리 학원의 프로그램이나 장점을 어필하느라 바빴는데, 10년 차가 넘어가고 나서는 바쁜 게 없다. 어머니 얘기부터 듣는 여유가 이제야 생긴 것이다.



“다른 영어학원을 갔더니, 원장이 우리 아이가 늦었대요. 영유도 보내고 했는데, 뭐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그동안 뭐하셨나요 하고 묻는데 가슴이 철렁해요”

사람이 간사하다. 다른 학원의 욕을 들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어머니는 나와 상담이 끝나면 다시 나에 대한 평가를 다른 학원에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늦긴 뭐가 늦어요?”



학원은, 특히 영어학원은 이런 조언으로 보이는 협박이 통하기도 한다. 특히 영어교육에 대해서는 “늦었다, 서둘러야 한다”라고 얘기하며 어머니의 조급함을 자극하면 학원 등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직 4학년인데, 차근차근하면 돼요”
어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지금까지 중 가장 밝은 얼굴이다.
“아 그래요?”
“원장님 고마워요. 안심이 돼요”



어머니가 고맙다니 나도 고마울 노릇이다.

학원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어머니가 등원에 대해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 상담은 1시간으로 마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원장님, 근데 제가 정말 괜찮은지 다른 학원에 가서 물어봐야겠어요”
“어머니, 그러세요~ 한번 더 물어보시고, 우리 학원이 생각나시면 편할 때 오시면 돼요”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학원 상담을 여기저기 다니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늦지 않았다는 위안을 들으며, 다른 학원의 정보를 흘리면서 돌아다녔다. 어머니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묵묵히 나의 일을 한다. 학원을 오래 하며 좋은 점은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거다.



상담을 하다 보니, 다양한 어머니들을 만난다.

자녀들의 교육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예민한 어머니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멈추지 않은 어머니, 아이의 실력에 대한 무한 확신을 가진 어머니 등 다양한 가정의 모습과 어머니와 아이들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오늘 상담을 한 어머니는 불안해서 아이에게 계속 ‘지금도 늦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그 아이에게 어머니의 불안감이 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이가 영어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높은 자기 효능감이 필요하다. ‘자기 효능감’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며 공부 정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심리적 특성이다. 언어이기 때문에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위축되고, 입 밖으로 내기를 꺼려서 실력 향상이 더딘 경우가 있다.



오늘도 그런 케이스가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어머니의 손에 붙잡혀서 학원 문을 나서는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번 안아주고 등을 두들겨주고 말했다.



“지금부터 해도 늦은 거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마”

아이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마음이 아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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