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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26. 2021

내가 해야 하는 일

1-7


신혼은 월세로 시작했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월세를 봉투로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매달 우리 집에 찾아왔다. 월세 봉투를 주고받을 때마다 그와 나 사이의 어색함과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숨막힐 듯한 어색한 공기를 참기가 어려웠다.


“잘 지내셨어?”

“네, 안녕히 가세요”


우리 둘 사이의 오고가는 문장은 굉장히 짧았다. 단 두 마디로 끝나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집주인이 왔다 가면 난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한참 어린 나에게 “잘 지내셨어?”라는 경어 아닌 경어도 귀에 거슬리기 일쑤였다.


동년배 친구들은 자가 집으로 신혼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나는 그에게 봉투에 만 원짜리를 펴서 넣으며 언제까지고 월세살이를 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을까. 게다가 인터넷 뱅킹으로 받아도 될 월세를 굳이 왜 현금 봉투로 꼬박꼬박 받아가시는 지, 집주인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건 할아버지의 매달 월세를 받으러 오시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당시의 내 마음과 알 수 없을 결핍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열등감이 폭발하기 전 필수 과정처럼 다가오는 건 바로 어떤 감정이겠다.

월세 봉투를 주고 현관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오기 일쑤였다. 스스로 가장이 되기를 자처했으나,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었던 그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을 내면의 고통스러운 감정들.


난 결혼을 해도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남자는 일하는걸 잘 이해해주고 서포팅해주는 사람이었다. 부유하고 좋은 조건의 배우자상은 결혼 후 여성의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너그럽게 이해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결정한 결혼이라 하더라도 막상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부딪히면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라고.


오랜 시간이 지나 보니,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게 다소 예민하고 뾰족하게 굴 필요가 없단 것을, 시간이 꽤 지나서는 알게 되었다.

집주인 할아버지께는 미소띈 얼굴로 서글서글한 목소리톤을 유지한 채로, 계좌로 입금하겠다고 설득을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웃으며 넘길 수도 있는 추억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나, 30대 초반의 나는 그런 여유있고 너그러우며 서글서글한 마음을 애당초 가지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약간의 변명 어린 핑계를 대자면 정말이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그 당시의 나에겐 당연했다. 아이를 가졌지만 일을 유지해야 했고, 이미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 중압감과 무거움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이 퍽퍽해서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나에게는 그런 너그러운 자비를 펼칠만큼의 대화적 심정적 여유는 있을 턱이 없다.


불투명하지만 내가 헤쳐 나가야 할 현실적인 과업들이 쌓여만갔기에 애당초 너그러운 여유를 가질 마음을 통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월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으니까. 월세에서 전세살이가 되기 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말씀해 주셨다. 대단하다고. 그는 나를 치켜세워줬지만 나는 그에게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마음속으론 이런 말을 남겨둔채. ‘다음부턴 월세는 계좌로 입금 받으세요’ 라고.



모든 사건은 돌이켜보면 다 이유가 있어서 발생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월세집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더욱 절절히 느꼈던 건 현실의 노동소득만으로는 일상생활을 풍족히 유지하는 게 여간 힘에 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을 향했던 나름의 갈망과 갈증이 나를, 공부방이라는 사업을 하도록 이끌어 준 계기가 되었다. 내가 해야만 했던 것, 내가 하고 싶었던 것, 그것은 모두 다름아닌 돈을 버는 일이었고 나는 그 ‘돈’ 이라는 것을 더 많이 벌고자 했다. 그런 돈을 향한 뜨거운 일념을 가진 나는 내면 깊은 곳을 자극하고야 마는, 불같이 타오르고 있었던 무언의 열등감마저도 없애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돈은 그만큼 내게 소중하고 중요했다.



삶의 후반전에 들어섰다.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조금 더 아끼고 보살피며 살고자 한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그림이나 혹은 글쓰기를 이제서야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삶의 전반전은 나로 하여금 해야 하는 필수적인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삶의 후반전만큼은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가고도 싶어진다. 그건 열심히 노력한 나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한편 스스로에게는 새롭게 펼쳐진 또 다른 도전이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얻는 것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하얀 모니터를 보고 있자면 막막함과 답답함을 참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뭐든 어려움은 찾아오기 나름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더 쉽게 그리고 즐겁게 잘 이겨내려 하는 마음은 다름 아닌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들이라면 훨씬 덜 힘들다. 오히려 그런 고통들이 선뜻 기쁨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은 서툴지만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뜨겁게.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끈기이고 꾸준함이라면 나는 이제 인생 후반전에서 글쓰기를 꾸준하게 하면서 삶을 좀 더 풍성하게 가꿔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 글쓰기는 느리지만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잘 써지게 되는 그런 신기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모니터 앞에서의 어색함과 막막함을 이겨내려 한다. 그리고 타박타박 키보드를 열심히 누르고 있다. 그런 나를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이 흘러 나오곤 한다. 기특하다.



삶의 후반전 앞에서 느끼고 있는 지금 이러한 기쁨은 사실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닐 것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했던 과업들에서 도망치지 않고 충실하게 해 왔던 것의 결과로 인한 현재의 풍요와 여유를 가진 자의 기쁨일테고, 한편 이제는 미루지 않고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향해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기쁨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무언가를 이뤄 나가려는 나의 이 시간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의 한 시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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