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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20. 2021

데스크 직원과 샌드위치

나의 서툴었던 처음


텅 빈 학원에 혼자 앉아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붙박이로 학원 데스크에 앉아있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좁은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것도 안타깝고, 주위 이웃들을 불편하도록 만든 게 싫어서 선택한 확장이었다. 어머니들은 학원으로 확장한다고 했을 때, 정말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고 응원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막상, 학원으로 옮기니 아이들은 반도 따라오지 않았다. 온전한 내 잘못인데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위한 결정이었는데라는 생각. 설문조사까지 끝난 이후 확장을 결정한 것이기에 자신 있고, 의기양양했다. 막상 학원으로 옮기니 거리도 멀어졌고 소수 위주 수업이 강의식 수업으로 바뀐 부분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반기지 않았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지지해준 어머니들과 학생들 먼저 빠지기 시작했다. 처참한 결과였다.



배가 너무 고프자 학원 문을 닫고, 샌드위치를 사러 가자는 생각을 했다. 안이 훤히 보이는 비닐봉지에 우유 한팩과 샌드위치를 넣고 학원으로 향하는데, 이러려고 사업을 시작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문 앞에 다다랐다.

학원 문 앞에는 상담을 하러 오신 어머니께서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면서 메모도 남기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갔던 것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개념 조차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도 모르게 비닐을 등 뒤로 숨겼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어디 다녀오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을 안 했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서 상담을 진행하는데 매끄럽게 말이 안 나왔다. 어머니 얼굴 표정을 자꾸 살피게 되고, 눈치를 자연스레 보게 되었다.



그날 난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사업의 무거움에 대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공부방을 하다가 너무 잘되었고, 도저히 수용을 할 수 없어 확장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내 마음가짐이 사업을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준비도 안된  상태로 덜컥 시작한 사업의 끝은 누가 봐도 어두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업에 대한 공부도 하고, 사람도 구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아이들이 줄어서 매출이 빠졌으니 사실 인건비도 아끼고 내가 일당백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장된 공부방을 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고, 같이 하며 시너지를 내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아니던가?



구인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마인드부터 바꾸는 게 가장 중요했다. 나 혼자 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원장 역할을 하자’라는 생각을 했고, 즉시 행동에 옮겼다. 여러 명을 면접을 보았다. 난 많은 사람을 면접 본 후에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인 26세의 그녀를 채용했다. 그녀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때까지 12년 동안 나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채용하고 나서  원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사업을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데스크를 맡고 있으니 일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지고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렇게 다시 공부방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세팅을 했다. 이제 시작한다는 결심을 새롭게 다지고 또 다졌다. 아이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는 시기였다. 아이들이 반으로 줄어  손익분기점 아래로 매출이 떨어졌다. 성과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었으나, 학원에서 12시간 넘게 주둔하며 그 시간을 견디어 냈다. 다시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학원을 정리하며 찾아낸 내 노트의 메모다.

내 책상의 서랍 안에 고이 모셔있었다. 그때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아직도 생생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는 게 기억이 난다. 손 뒤에 숨겨져 있던 샌드위치, 그때 당혹스럽던 느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남아있다. 가끔 내가 느슨해질 때 읽어보아야겠단 생각에 간직해두었던 노트다. 오랜 시간 사업을 하다 보면 처음을 잊기 쉽고, 그로 인해 길을 잃기 쉽다. 그때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처음을 되새기는 것이다. 서툴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나의 처음. 처음을 되새기는 것은 지난날의 나와  마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12년 전 함께 했던 그녀에게서 아기 사진이 왔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냈다. 나의 처음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처음을 잊지 않고 사업 잘 꾸려나가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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